Images after Action

정광식展   2005_0611 ▶ 2005_0630

정광식_Images after Action Ⅰ_1800×520×52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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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11_토요일_05:00pm

갤러리 온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지하1층 Tel. 02_733_8295 www.galleryon.co.kr

넌지시 자신을 발견하는 행위의 미학 ● 정갈하게 다듬어낸 잘빠진 돌조각의 정제된 언어. 정광식 조각 작업의 요체이다. 작가 주체로서 나름의 개념을 설정하고 그것에 따라 조형방법을 세워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이름을 붙여 의미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시각 예술의 재현 절차는 엄격하게 절제된 언어를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광식 조각을 '표현의 미학'으로 규정하게 하는 근간을 이루었다. 자연 혹은 인간이라는 개념을 조각 작품에 불어 넣으려고 했던 것이 그의 초기 작업들이다. 이후의 바닥에 깔린 낮은 조각들 또한 무언가 감추면서도 드러내고자 하는 표현 욕망의 산물 그 자체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광식의 최근작들은 물질과 정신, 형태와 개념의 작위적인 결합을 탈피하기 위해 예술가의 가장 원초적인 존재 방식인 예술적 행위 그 자체로 돌아가려는 '행위의 미학'의 산물이다. ●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조형방식으로 자연과 인간에 관한 명상적인 이야기 구조를 표현해낸 정광식의 첫 개인전 출품작들은 자연과 인간의 분열 상황을 넘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조용한 몸짓'이었다. 자연과 인간이라는 대립 쌍의 관계부터가 그러하거니와 수직과 수평의 단단한 석조 입체들이 한 쌍을 이루고, 매끈하게 다듬고 섬세하게 연마한 반질반질한 표면과 툭툭 쳐낸 거친 표면이 교차하고, 둥근 것과 모난 것이 서로 마주보며, 무언가 새겨진 인공적인 흔적과 본래의 모습이 공존하고, 선적인 요소와 면적인 요소가 한 덩어리 안에 들어있으며, 빛을 반사해내는 면과 빛을 빨아들이는 돌 표면이 서로 엇갈리고, 밝은 것과 짙은 것이 맞붙어있는 서로 다른 구조들의 결합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화해'를 암시한다는 설정이다. 이렇듯 이항대립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있는 그의 구작들은 작가 주체가 특정한 개념에 입각해서 돌이라는 질료에 인공적인 변형 작업을 가해서 만들어낸 '개념과 물질의 결합체'였다.

정광식_Images after Action Ⅱ_2700×2700×30cm_2005

'현존, 無心의 틈새, 수평적 경계' 등의 제목을 달고 수직 상승하는 입체보다는 낮고 넓게 바닥에 깔리는 물질 덩어리들을 선보였던 두 번째 개인전 '수평적 경계'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불쑥 도드라지고 움푹 파인, 가득 차 있거나 텅 비어있는 돌이라는 물질의 서로 다른 있음을 통해 '있음'이라는 개념을 가시적인 물질 덩어리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개념도 개념이지만, 특히 입체조형 작업은 물질 자체의 고유한 속성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게 마련인지라 정갈하게 다듬은 절제된 조형언어 자체만으로도 정광식의 돌조각은 가히 묵직한 울림을 가진 '있음 그 자체'였다. 이렇듯 개념과 물질의 가시적 결합을 토대로 하는 그의 구작들은 세월의 흔적 속에서 더욱 따뜻하고 묵직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 정광식은 근작에서 물질의 울림이 가져다주는 그 어떠한 속박으로부터도 훌쩍 떠나 가급적 개념과 물질의 결합체 구조를 파기하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금 그는 아련하게 잡힐 듯 말 듯 한 예술을 향한 욕망을 '행위 그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길을 찾고 있다. 자유롭게 떠다니는 예술가의 영혼을 구현하고자 하는 정광식의 행위는 베기, 썰기, 긁기, 긋기 등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된 모래가 굳어진 붉은 돌 세 덩어리를 긁어서 가지런하지 않지만 한 방향으로 반복된 선들을 남긴 것, 스무 장의 오석을 썰어서 반질반질하게 갈아낸 표면 위에 가지런한 수평선을 그은 것, 소나무를 베고 썰어서 만든 나무판재 아홉 개를 이어붙인 거대한 평면 위에 대각선을 축선으로 해서 타원형의 흔적을 남긴 것. 이것이 정광석이 돌과 나무에 조각가 주체로서 남긴 흔적의 전부이다. 글라인더로 돌이나 나무의 표면을 썰어 내는 '숙련노동예술행위'는 물질성과 작가 신체 간의 살뜰한 교감이 있어야 일이 제대로 되는 법이다. 정광식의 글라인터 톱날은 거의 칼날에 가깝다. 목판화에서 칼맛을 이야기 하듯이 돌판과 송판을 썰어내는 정광식의 행위는 가히 조각에 있어서의 칼맛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 날카롭게 또는 둔탁하게 겉을 다듬어 내고, 부드럽게 이러지면서 유려한 곡선을 만드는가하면, 짧은 파편들을 남기는 선과 면들의 연쇄를 이루어 내며, 움푹 파여 쑥 들어간 속과 아슬아슬하게 돌출한 겉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운율은 표면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재현의 추억을 이끌어 내기까지 한다. 행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정광식 칼 맛은 단단한 물질을 썰어놓은 입체작품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종이를 대고 색연필을 그은 일종의 탁본 작업에서도 잘 드러난다. 모종의 개념적 형상을 염두에 두지 않은 무작위적인 글라인더질을 통해서 얻어낸 비정형의 형태(informal form) 속에서 또 다른 우연성의 평면을 얻어내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느 것 하나의 완결된 형식적 틀에 안착하지 않으려는 예술가 본연의 실험 정신을 위해 고정된 의미에 귀속하는 기호의 지시작용을 과감하게 걷어낸 것이다.

정광식_Images after Action Ⅲ_220×6000×200cm_2005
정광식_Images after Action Ⅲ_220×6000×200cm_2005_부분
정광식_Images after Action Ⅲ_220×6000×200cm_2005_부분

엄격하게 서사 언어를 덜어내고자 하는 정광식은 '일상 속에서 일상을 넘어서는 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개인사적인 이야기에 함몰되는 일상 담론의 허구적인 진지함에 대한 염증과 동시에 내러티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작업들에 관한 회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예술이 개인사적인 독백으로 흐르는 데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거대담론에 휩싸여 제 갈 길을 잃고 마는 예술 또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 주체를 뒤흔드는 외적인 요소들과 작품 생산과 실존을 잇는 내면의 독백 양자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긴장과 갈등에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균형감각에 따른 작업 태도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때로는 '삶이 담긴' 작업이며, '넉넉한 아름다움이 베어 있는 소박한' 작업이기도 하고,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작업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긴장과 갈등 관계를 조각가로서의 행위를 통해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 반추상의 형상으로 자연과 인간 등의 주제에 접근하는 '형태로 이야기하기'가 정광식 구작의 요체였다면, 일체의 개념을 배제한 그의 신작들은 '행위 자체를 보여주기'로 집약된다. 근간에 그가 추구하고 있는 행위란 돌이나 나무에 인위적인 흔적을 남기는 원초적인 조각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정광식 에게 있어 단단한 물질과의 대결 구도에서 조각가로서의 행위를 통해서 인위적인 흔적을 남기는 일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통해 '넌지시' 자신을 깨닫는 과정 그 자체이다. 여기서 말하는 '넌지시'라는 것은 구체적인 언명을 통한 지시적 해명이 아니라 존재의 흔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을 말한다. 정광식은 행위과정을 거쳐서 만들어낸 작품을 통해서 역으로 행위 과정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 행위과정은 필연적으로 행위주체인 작가와 물질의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듯 피할 수 없는 전제와 마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료의 물성을 초월하기 위해 '다듬지 말 것, 가슴 속 움직임을 쏟아낼 것'을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다. ● 정광식이 탈 형상의 마음을 품고 있는 이유는 형상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행위의 과정을 통해서 발생한 결과물로서의 작품 자체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작업의 결과물인 작품 자체만을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석조 작업과 같이 견고한 물질과 조각가 신체의 팽팽한 갈등과 긴장을 통해서 나오는 작업에 적용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형으로 현존하는 것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깊은 철학이든, 생활의 작은 경험이든 말이다." 그가 이렇듯 극단적인 자기부정을 감행하는 이유는 자신이 추구하는 '있음'에 비해 자신이 만든 작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있음'의 실체감이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광식_Images after Action Ⅳ_1500×3000×30cm_2005
정광식_Images after Action Ⅳ_1500×3000×30cm_2005_제작과정

예술가는 스스로 생장하고 변이하는 생명의 메신저이다. 더불어 예술작품 또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독자적인 텍스트임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업실 앞마당 잔디밭 군데군데에서 몇 년의 세월 동안 흙과 풀들과 마주하고 있는 그의 묵직한 돌조각 사이로 보랏빛 제비꽃이 곱게 피어났다. 정광식이 표현의 미학에서 행위의 미학으로 전이한 과정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정광식의 손길을 거친 입체 덩어리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한 가지 더 헤아려 볼 것이 있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정갈하게 단단한 물질 덩어리를 썰어내는 작가의 마음에 관한 얘기다. 치열하게 작업하며 시대의 기쁨과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절실하게 대중과 함께 하길 바라는 것. 정광식의 작업노트에 적힌 독백이다. 절제된 표현, 혹은 그 표현마저도 접고 행위 자체의 흔적만을 보여주려는 차가운 작업 태도 이면에 존재하는 뜨거운 마음이다. 그것이 표현의 미학에 따라 완벽한 재현 시스템에 귀속하는 작업이든 아니면 행위의 미학에 뿌리 내린 재현과 서사의 부정에서 나온 작업이든 간에 예술가의 몸과 마음은 한결같이 진지하게 이 시대의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를 이루고 있음을 새삼 되새긴다. ■ 김준기

Vol.20050623b | 정광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