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아트하우스를 기억하시는 여러분에게

The Show Must Go On   2005_0620 ▶ 2005_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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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620_월요일

일주아트하우스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226번지 흥국생명빌딩 Tel. 02_2002_7777 iljuarthouse.org

(더쇼머스트고온) Adieu! 일주 ● 큰일이다. 요사이 내가 굉장히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머릿속에 전시 일정을 줄줄이 꿰찬 채 미술관을 헤집고 다니던 과거의 열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래도 밥을 벌어먹고 살기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에 열중한 탓인 듯하다. 얼마 전, 어느 평론가는 내게 전화를 걸어 한 작가의 전시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난 알았다. 그의 말속에 오랜만에 '좋은' 전시를 본 흥분이 배어 있다는 것을. 물론 난 언제나 그랬듯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정중히 전화를 끊었다. "아, 당연히 가야죠. 그 작가의 전시는 꼭 챙겨 봐야죠."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전시가 끝나는 날까지 찾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굳이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낼 것임을 알고 있었다. ● 이렇게 변해버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전시가 열릴 때면 전화로, 메일로 그리고 정성이 깃든 우편으로 소식을 전하는 곳이 있었다. 일주아트하우스였다. 물론 '적어도 이류 기자는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던 나조차 그들의 시야에 들어간 걸 보면, 다른 미술인들을 향한 일주의 정성은 익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근래 들어 나는 이곳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에 『조득수展』(2005_0311 ▶ 2005_0412)이 끝이 났고,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즉시색(空卽是色)』전(2005_0518 ▶ 2005_0614)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동안 내 눈에 빛의 세례를 안겨준, 0과 1로 이루어진 일주의 전시를 돌아본다. 미디어의,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를 위한 작가들이 던졌던 문제의식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되새겨본다. 세련된 자태로 치장한 도시 공간에 내동댕이쳐진 우리의 모습을 마치 꿈을 꾸는 영상으로 보여준 『유비호展』(2001_0808 ▶ 2001_0830)에서 나는 씁쓸한 고독을 맛보았다. 『김세진 cinematovideo展』(2001_0901 ▶ 2005_0930)은 소외된 일상을 살아가는 내 자신의 끊어진 인간관계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흥얼거리던 '유행가'가 과거를 되새김질하고, 지금의 내 모습과 내가 속한 사회의 정체성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가르쳐준 『배영환展』(2002_0222 ▶ 2002_0326)도 잊을 수 없다. 우리 시대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이 되어버린 TV를 비평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떻겠느냐고 운을 뗀 『Remediating TV - 우리시대 TV 다시 보기展』(2002_1018 ▶ 2002_1126)과 90년대 이후 이 땅의 비디오 아트의 한 축을 형성한 다큐멘터리 비디오의 오늘을 점검한 『비디오 다큐멘트展』(2003_1024 ▶ 2003_1202)까지, 이곳의 전시는우리가 왜 일주를 찾아야 하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아무런 편견 없이 그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써 내려갔을 뿐인데, 고작 2003년에 열렸던 전시 언저리를 헤매고 있다. 그러니 이 짧은 지면에 무슨 방법으로 지금의 일주를 만든 44개의 전시와 84회에 달하는 학술 행사를 기억해낼지 난처할 따름이다.

일주아트하우스_2005

일주는 언제부턴가 미술계를 감아 도는 미디어라는 유령을 제대로 볼 것을 권하던 장소였다. 어느덧 거대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묶인 채 허우적대기 시작한 미술계와 달리, 이곳에서는 여전히 미술의 공공적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런데 이곳이 사라진단다. 2005년 6월 30일, 일주아트하우스를 운영했던 ACS가 육체적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보로프스키의 작품을 곁에 둔 흥국생명 빌딩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 세상일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내 머리로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일이 그저 계약서 한 장으로 열리고, 닫힌다. 우리와 언제까지 함께 동고동락할 것으로 믿었던 한 전시 공간의 사라짐은 단지 갑과 을 사이의 계약 만료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뿐이다. 이러니, 굵고 빨간 글씨로 '일주 부활'이 새겨진 머리띠를 두른 채 '1인 시위'조차 할 수 없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생기고 만 것이다. 이제는 그라운드를 떠난 어느 노 감독의 말처럼 "웅... 아트선재도 없고, 일주도 없는..."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궁금해진다. 과연 앞으로 미술과 미디어 사이를 맛깔스럽게 이어주었던 일주와 같은 중매쟁이를 만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 본다. 일주의 전시는 거대한 빌딩 1층 구석을 간신히 채우던 전시 공간이 말해주듯 지극히 소박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을 거친 전시는 언제나 보는 이의 마음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들은 미술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는 미디어를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게 받아 주었다. 어디 이뿐인가. 마치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작정한 듯, 미술의 '공공성'을 소리 없이 외치는 그들의 전시는 또 어떠했는가? 순간 덜컥 겁이 난다. 시대정신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그저 그런 전시에, 멀쩡하기 짝이 없는 전시 공간에 큐레이터의 정신이 스며들지 못하는 수많은 전시에 마음을 다칠 때마다 즐겨 찾던 이곳이 사라진 후에는 과연 어디로 발걸음을 돌려야 할까?

분명한 건 일주아트하우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물론 이 땅에 받을 딛고 서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주의 '증발'은 뉴스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 소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직 미디어로 모든 예술적 소통을 꾀하며 버텨낸 1825일에 이르는 일주의 시간은 퍽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 물론 일주의 지난날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캔버스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도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대중 앞에서 일주가 차지한 자리는 좀처럼 넓어질 줄 몰랐다. 국내 미디어 작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주의 전시를 향한 미술계 내부의 의심 역시 쉽사리 떨치기 힘든 짐이었다. 그러나 일주는 묵묵히 감당해 나갔다. 이곳을 거친 우리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업은 왜 이 나라가 미디어에 호들갑을 떠는 지 그 이유를 시원스레 밝혀주었다. 무엇보다 일주에겐 책임감이 있었다. 한국 미디어 아트가 해외의 그것에 비해 나은 지, 아닌 지와 관계없이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디어 아트를 정성껏 돌봐야 한다는 선한 부담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에겐 자신감이 있었다. 단지 미디어 아트를 눈요깃거리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 미학적 결과물의 문맥을 해석할 수 있다는 용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 한편으론 다행한 일이다.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는 유수의 미술관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진 지금, 힘에 겨워 떠날 수밖에 없는 일주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지난 5년 간, 일주에게 톡톡히 신세를 졌던 작가들이다. 괜찮다 싶은 작가들이 자신을 길러준 미술관의 명멸을 마치 남의 일인 양 바라보았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을 선택하고, 지켜봐주었던 일주가 자신들과 기꺼이 호흡할 수 있는 드문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비록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볼 뿐이지만, 한국 미디어 아트의 미래가 이곳에서 잉태했음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 말을 맺고자 한다. 적어도 일주는 알고 있었다. 우리 작가들이 좋은 조건에서 작업을 한다고 해서, 세계 미술계에서 우리 작가들이 그 지평을 넓혀간다고 해서 우리 미술계가 잘 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문화는 그 풍성한 수확만큼이나 '다양성'이라는 호흡으로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보아야만 하고, 생각해야만 하는 미술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일주의 빈 자리는 이래서 더욱 커 보인다. 그래서이다. 날이 갈수록 대중과 자본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이 땅의 미술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을 감당해온 일주를 위해 향을 지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물론 이섭, 신일순, 전성희, 이영자 그리고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이곳을 스쳐간 이름은 일주와 함께 이내 잊혀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대부분의 미술인들에게 일주가 사라지고, 이들이 물러나는 일은 일상다반사에 불과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땅의 미술계는 날이 갈수록 그 덩치를 키워갈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비엔날레마저도 시시하다며 투덜거리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미술기자 초엽의 가슴 벅찬 흥분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관성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의 모습은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러나 한국 미디어 아트, 그리고 이 땅의 미술계를 생각한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이들을 쉽사리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나는 이곳에서 미디어와 얽히고설켜 숱한 이야기를 쏟아낸 작가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말끔하게 갖춰진 화이트 큐브에 가지런히 걸린 작품이 결코 발산하지 못하는 날 것 그대로의 감동은 아무 데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을 테지만, 일주의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5년 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미술기자의 명함을 처음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일주와 처음 만나던 그때의 흥분을 다시 수혈 받아 미술판을 누비겠노라고 가슴에 손을 얹어 본다. ● '미디어 아트와 영상 예술 전용 공간'. 일주가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언제부턴가 일주는 여기에 '미디어 레이더스(Media Raiders)'라는 수식어를 추가했다. 같은 제목의 신진작가 지원 공모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된 작가들을 소개하는 모습은 새롭게 태어나기 원하던 일주만의 다짐과 같은 것이었다. '미디어 레이더스'는 '미디어 아트'의 '미디어(Media)'와 '수색자, 탐험자, 교란자'라는 의미를 지닌 '레이더스(Raiders)'를 결합한 명칭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신선한 감각과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보여줄 미디어 아트의 뉴 페이스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공허해진다. 이제 그 누가, 그 어떤 곳이 이 땅의 미디어 아트의 레이더스가 될 수 있을까? ■ 윤동희

일주아트하우스를 기억하시는 여러분에게 2000년 개관이후, 실험적이고 보다 퍼블릭한 미디어로서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 온 일주아트하우스와 이를 지원하던 흥국생명은 2005년 6월 30일 계약을 완료합니다. 그리고 공공미술과 미디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던 ACS는 계약 완료일인 30일 일주아트하우스에서 철수합니다. 이에 이곳과 인연을 맺은 많은 작가와 영상 관련자분들 모두 일주아트하우스의 수고와 노력에 깊은 감사드리고 일주아트하우스가 해오던 긍정적인 기능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될지 우려와 걱정을 하면서 마지막 피날레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행사명_ The Show Must Go On 행사기간 및 장소_ 2005_0620_월요일 ▶ 2005_0630_목요일_일주아트하우스 주최 및 진행_ 일주아트하우스 작가 및 기획자들

일주 투어 프로그램 일주아트하우스와 관련을 맺었던 작가, 기획자, 평론가, 기자 등이 행사기간 동안 미디어갤러리와 스튜디오를 돌아보며 각자의 카메라로 곳곳을 기록하는 투어에 참여함으로서 일주아트하우스의 지나간 시간을 기념함과 동시에 새롭게 변모될 일주아트하우스의 새로운 비젼을 기대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행사기간_ 2005_0620_월요일 ▶ 2005_0630_목요일 / 진행_ 김세진 준비물_ 즐거운 마음, 디카, 폰카, 보이스 레코더 등. 참고_ 투어에 참여하신 분들의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를 홈페이지에 올려주세요.

문의_ 홈페이지_theshowmustgoon.org 김준_017_213_9692 / 양아치_017_553_1243 / 김세진_016_352_3496 / 유비호_017_242_4371 원승환_011_9121_7759 / 송승민_010_3009_9470

Vol.20050629c | the Show Must 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