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화첩

남학현 회화展   2005_0713 ▶︎ 2005_0719

남학현_인연_장지에 염색, 채색, 아코디언북_40×45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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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13_수요일_05:00pm

갤러리 VOOK'S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2번지 3층 Tel. 02_737_3283 www.gallery.co.kr

남학현의 작업은 천연염색과 동양화의 채색기법으로 장지에 그려진 상상의 서사가 담긴 아트북들이다. 염색기법을 이용한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고 화려한 색 위에 다소 추상적인(형상이 확연히 보이는 것도 있지만) 형상이 떠올라 있어 명상의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는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생동적인 소재와 기법으로 그려져 유쾌한 생기를 발산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보이지만 무수히 변형되는 형태와 화면 속에 겹겹이 쌓여있는 층들이 시각적인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밑에 깔려있는 층과 위에 올려져 있는 층이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첩된 층들의 역동성은 활달하고 유연한 붓질과 함께 동적인 요소를 부각시킴으로써 화면을 율동하게 한다 . "산속의 불빛"과 "새끼 새 비극"같은 작품들에서도 알 수 있듯, 포근하고 부드럽지만 힘 있는 리듬은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음악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풍기는 음악적인 요소는, 평소 작가와 음악과의 밀접한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남학현_산 속의 불빛_장지에 염색, 채색, 아코디언북_22×42cm_2005

그림에 등장하는 죽어있는 새끼 새나 비둘기 등의 소재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있던 것들이다. 이 저장소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작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뮤즈여신이 기억의 딸들인 것처럼, 기억들은 연상과 상상에 의해 예술이 된다. 코올리지에 의하면 주체와 외부세계라는 두 세계를 연결시키는 힘이 바로 상상력 이며, 바로 이 상상을 통해서 가공되기 이전의 체험자료에 형태와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지각하는 세계를 창조한다.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미적 판단의 보편성을 가능하게 하는 선천적 조건을 주관의 "인식능력의 자유로운 놀이" 속에서 밝혀 낸다.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놀이속의 조화"가 보편적인 동의가 가능한 미적인 쾌감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비둘기 나라", "그 소녀가 웃던 까닭은?" 등등의 작품에서 보여 지듯이 작가의 상상력은 엉뚱하고 천진난만하게 그를 둘러싼 세계에 반응하고 있다. 그는 작년 개인전에서 극명하게 보여주었듯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시각을 가지려 한다. "그 소녀가 웃던 까닭은?"에서 보여주는 해학은 그의 상상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남학현_그 소녀가 웃던 까닭은?_장지에 염색, 채색, 아코디언북_37×64cm_부분

그는 일상적 이미지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직관적 연상을 통한 이미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하나의 텍스트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 상상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그의 내밀한 존재감까지도 투사하게 된다.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과정 또한 그의 삶과 밀착되어 진행된다. 그는 과정을 즐기며 여유있고 차분하게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작품에서 느낄 수 는 넓은 포용력과 쾌감은 그의 상상과 놀이가 자연스럽고 본능적인데서 기인한다. 관객을 억지로 끌고 가지도, 자기를 숨기지도 않으면서도 자기의 존재를 자연스레 드러내기 때문이다.

남학현_새끼새 비극_장지에 염색, 채색, 스컬피, 아코디언북_290×142cm_2005

남학현은 이번 "이야기 화첩"전에서 관객들에게 자기의 책을 읽으라고 주문한다. 삽화만 남아있는 이 그림책은 최소한의 이야기만을 제시한다. 상상력을 언어가 해명할 수 없다는 칸트의 말처럼, 텍스트를 뺀 이 책들은 언어가 닿지 않는 지평에 놓여있다. 언어의 한계를 벗어난 이 수평선상에서, 보는 이들은 자기 나름의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가가 풀어놓은 실마리를 따라 자기만의 연상 속으로,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이 모호한 공간은 여유로우며 재미와 활기로 가득차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놀 수 있을 것이다. ■ 김선휘

Vol.20050713b | 남학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