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의 동판화

2005 경기문화재단 특별展   2005_0720 ▶︎ 2005_0910

Claude Mellan_아그리피나_그레이버_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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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20_수요일_06:00pm

부대행사_오프닝이벤트 '엽서만들기', 워크샵프로그램 '판화체험학습'

주최_경기문화재단, 의정부예술의전당 후원_루브르박물관, 주한프랑스대사관, AFAA/RMN

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 1, 2 전시실 경기 수원 팔달구 인계동 1116-1 2층 Tel. 031_231_7228

의정부 예술의전당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2동 326-2번지 Tel. 031_828_2585

루브르의 동판화-고전 유산에 대한 당대의 해석 ● 본 전시는 외무성의 문화창구를 통해 순회전시되기 위해 기획되었다. 창작과 그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예술적 창작 사이에서 서로 상충되는 것은 예술작품으로서 판화가 지닌 필연적인 속성이다. 오늘날 그래픽 예술의 다른 모든 기법들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됨에 따라, 판화도 작가들이 천을 택하듯이 선택한 기법의 기반이 되는 전통의 뿌리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Agathe May_하부초상_에칭, 그레이버_1999
Georg Baselitz_자파_드라이포인트, 아쿼틴트_1995

판화는 19세기 아카데미 화가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하나의 기능이고 숙련기술이다. 그래서 그것의 모범적인 속성은 필연적으로 위대한 거장의 전통과 연결된다. 그러나 루브르의 동판화들을 제작하기 위해 고전 유산과 각기 나름대로 대화를 한 당대의 예술가들은 판화의 전통 기법만큼이나 영속성(특이한 형태의 구문에 꼭 들어맞는 알파벳이 갖는 영속성처럼)을 지닌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고전 전통을 바탕으로 그릴 때 이러한 당대의 창작물(판화작품)이 지닌 담론은 모방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루브르의 동판화작품들을 가지고 현대적인 예술 창작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이러한 정책은 17세기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고 1989년부터는 현존 작가들에게도 의뢰하여 그들의 새로운 작품도 함께 전시해오고 있다.

Arnulf Rainer_입구에서 바라본 Tuileries 궁의 경치_드라이포인트,에칭,그레이버_1992
Charles Daubigny_관목_에칭_1855
Louise Bourgeois_산속의 호수_드라이포인트, 그레이버, 에칭, 아쿼틴트_1997

이번 전시의 목적은 관람자가 원래의 모델을 알아볼 수 있도록 과거 작품에 대한 당대의 해석이 가해진 판화들을 주제, 기법, 인용 또는 비평 등을 통해 중요한 그룹을 이루게 하는데 있다. ● 아르눌프 라이너에서부터 테리 윈터스까지의 작가들이 다룬 풍경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주제이다. 게오르그 바젤리츠나 필립 파비에의 작품은 펫 스타나 피에르 뷔르갈리오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작품들과 견주어진다. 어떤 특정한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판화의 미래에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다. 에두아르 발뒤부터 샤를르 네그르나 발타사르 부르크하르트에 이르는 포토그레이브 작품들은 즉시성을 위해 기존의 기법들에서 자연스럽게 일탈한 사진 이미지 기법-당연히 판화의 역사를 우회해 나타는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경향들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Diminique Vivant-Denon_병상의 Phallus 왕_에칭_1793~1794
Gilles Demarteau l'Aine_폭동중에 상처입은 Lycurgus_크레용 인그레이빙_1760
Pierre Alechinsky_붓으로 떠나는 여행_ 에칭, 아쿼틴트_1998

판화가가 모방의 환영을 포기하기 전까지 보이는 실재에 대한 완벽한 모방의 수단으로서 이미지의 사용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줄 지극히 현대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기법적으로 과거 전통과의 단절이 결코 기술적으로 현대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랭보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절대적으로 모던하다"는 것은 여전히 최근이지만 이미 너무 멀어져버린 과거-그 시대에는 판화가가 '이미지의 연금술'(이미지를 이용한 연금술적 표현) 때문에 지속적으로 습득한 새로운 수공예적 능력을 포기했었던-에 대한 해석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새삼스럽게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 파스칼 토레스

Vol.20050722c | 루브르의 동판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