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신론적 세계관의 동양적 표현주의

박종해 회화展   2005_0725 ▶︎ 2005_0807

박종해展_일본 쿄토 마로니에 갤러리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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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25_월요일_06:00pm

일본 쿄토 마로니에 갤러리 604-8027 京都市 中京區 河原町通 四條上ル ?屋町 332 Tel. 81-75-221-0117

범신론적 세계관의 동양적 표현주의 ● 자연과 인간 ○ 박종해는 작가로서의 위치에서도 특별하고,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서도 특이하다. 다시 말해 그는 한국화단의 주류에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있다. 그는 1970년대 초반에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70년대 후반에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작가경력을 쌓아간다. 한국 미술계에서 70년대는 이른바 '모노크롬 회화'가 태풍처럼 몰아닥치던 시기였다. 미국의 후기 회화적 추상(post painterly abstraction)과 미니멀리즘이 몇 화가와 이론가에 의해 한국에 수용되면서 마치 당시의 독재 권력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의 회화를 단색화 했다. 클리멘트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회복'과 '본질로의 환원'이라는 명제는 이른바 '동양적'이거나 '한국적' 정신과 결합했고, 그 결과 젊은 화가라면 모두가 사각의 캔버스 위에 매우 금욕적인 색채라 할 수 있는 흰색이나 검은색, 혹은 회색 등을 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들은 거기에 오직 최소한의 손질을 가하고 있을 뿐이었다. ● 한동안 이런 추세가 계속되자 마치 이러한 추상화에 반발하는 것처럼 사물을 극단적으로 재현하는 극사실주의(hyper-realism)가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화가들이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면서 화면 위에 거의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있을 때, 이들은 일루젼을 동원하면서 현미경이나 확대경으로 보는 듯한 사물의 형상을 그렸다. 극사실주의자들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화가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70년대의 한국 미술계는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미니멀리즘, 또 하나는 극사실주의이었다. 젊은 미술인들은 이러한 미술계의 바람에서 자유스럽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였다.

박종해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70×100cm_2005
박종해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70×100cm_2005

그런데 박종해는 이러한 한국 미술계의 흐름과 무관하게 홀로 떨어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회화의 본질을 추구하여 결국에는 캔버스의 표면(surface)과 그 지지대(support)로 해체하는 철학적 이론에 공감하지 않았다. 또한 사물의 외피를 거의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극사실주의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체질과 경험, 거기서 결과한 인식에 따라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 그의 작업은 '그림이란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심상의 표현'이라는 오래된 회화의 전통과 잇닿아 있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주변 풍경이나 사물들을 거의 자동기술적으로 그렸다. 거기에는 작가의 시점에 의한 원근법이나 지평선, 깊이와 거리를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나 배경 등, 흔한 형상회화의 약속들이 전혀 동원되지 않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꿈처럼, 혹은 우리의 머리에 있는 기억이나 상상처럼 그저 펼쳐져 있다. 그의 회화는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의 콜라지이다. 그 단편들이 모여 어떤 이야기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 1991년에 가진 4회 개인전(금호미술관)에서 박종해는 크기 240x1200cm의 「바람, 무한을 향한 손짓」과 240x750cm 크기의 「바람, 영혼의 소리」 등 대작 여러 편을 보였다. 이 대작들은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 그 풍경화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회화에서 나는 작가가 그 풍경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와의 평소 대화에서 나는 그가 이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힘"을 강조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화가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박종해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58×21cm_2005
박종해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70×100cm_2005

박종해의 모든 작품에는 그 대상에 대한 깊은 '바라봄'이 있다. 그 '바라봄'은 결코 인물이나 사물의 외양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이해하고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 두루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모든 것들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대작 풍경화에서도 모든 인물과 사물들을 등가로 배치한다. 거기에 있는 것은, 그것이 인물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소한 사물이든, 혹은 산과 바다 같은 거대한 자연이든, 그 존재가치에서 차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모두가 동등한 존재감을 지닌 채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그림들을 자세히 볼 것 같으면 작가의 특별한 인식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 우주와 자연 속에 인간이 속해 있고, 인간은 자연의 한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자연이 가진 순환 속에 인간이 있다는 것, 나아가서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듯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수많은 그림들로 보여준다(「삶」 씨리즈, 「자연관류」씨리즈 등). 다시 말해 그것은 작가의 범신론적인 인식이다. 그의 작품에서 대지와 바다, 구름과 바람, 나무와 흙 등 모든 자연물에는 각각 그 영이 있고, 그것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 하나의 예로서 비교적 초기 작품인 「소나기가 끝나고」(1987)를 보자. 비 내리는 구름, 바람을 맞고 있는 나무, 누웠거나 엎드려 있는 사람들, 불안한 느낌을 주는 사다리, 그리고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여러 물건과 대지가 한 공간에 병치돼 있다. 이것은 한 순간의 풍경을 정지시켜 그린 것이 아니다. 그림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는 어떤 상황과 그 기억을 담고 있다. 이는 어쩌면 작가가 한 때 즐겨 하던 야영생활에서 체험한 한 기억일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는 인간들이 있고, 그들은 모두 의상을 걸치지 않은 생물 본연의 모습이다. 인물은 자연 속에, 자연과 함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이처럼 그가 그리는 인간이 모두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작게 그려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모두 의상을 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볼만한 부분이다. 이는 언제나 인간과 인간의 행위를 회화의 중심에 놓고 있는 서양의 그림과 대조되는 면이다. 박종해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처럼 '회화의 본질'을 추구해간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추구해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군복무 시절 고립된 섬에서 14개월을 지낸 적이 있고, 80년대의 대부분을 청주 근교에서 농부처럼 생활한 일이 있다. 이러한 그의 바다체험, 흙체험은 그의 삶의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그 체험 속에서 그린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그의 자연관을 이해하게 된다.

박종해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29×21cm_2005
박종해_untitled_종이에 혼합재료_58×21cm_2005

종이와 수묵화적 전통 ● 박종해 회화의 특징을 밝히는데 있어 그 재료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의 특이함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회화가 갖는 자유분방함과 우연의 효과는 특히 그 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방식에 의해서 나타난다. 박종해는 그림을 종이에 그리고 있다. 캔버스를 피하고 그가 종이에 그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종이만이 가지는 회화적 효과를 그가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수성(水性) 물감을 좋아해요. 그것이 종이에 베어드는 느낌이 좋고, 종이 위에 그어졌을 때, 그 단 한번으로 나타나는 효과에 매료됩니다. 그래서 나는 종이와 수성물감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효과를 캔버스와 유성물감에서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종이와 수성물감이 만났을 때 나타나는 여러가지 크거나 작은 효과를 즐기고 있고, 그것을 위해 갖가지 방법을 개발하기도 한다. 갈필의 사용은 물론, 나뭇가지를 깎아 쓰기도 하고 부드러운 종이를 말아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먹을 비롯한 각종 잉크, 판화용 잉크, 수채화 물감, 동양화 물감 등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에는 먹의 농담과 번짐, 거칠거나 부드러운-속도와 감정이 나타나는 획, 감춰지며 동시에 드러나는 형태와 색채들이 펼쳐진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면 작가는 전통 수묵화의 표현방법과 감각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회화적 맛은 그의 소품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의 작품에서 드로잉적 요소가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재료와 방식 때문이다. 가벼움, 일회적, 우연의 효과 등 드로잉적 요소는 그 표현방식의 출발점이자 완성에 이르는 길이다. ● 이처럼 종이와 수성물감이 만나 어우러진 단 1회성의 효과들에 의해 그 심상의 풍경들이 형상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표현주의적으로 나타난다. 풍부한 회화성, 거침없는 감성의 표현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박종해 회화는 7-8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던 '신표현주의(new expressionism)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주제에 있어서나 표현 방식에 있어 유럽이나 미국의 신표현주의 회화와 사뭇 다름은 이미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 박종해 회화의 방식상의 특징은 단촐함에 있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종이 위에 짧은 단상처럼, 일기를 쓰듯이 그것들을 그려나간다. 그는 방법적으로 손질이 되풀이되는 무거운 회화를 피한다. 그러나 그 가벼운 형식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작가의 직관에 의한 세계관이 담겨있다. 그것은 인간이 정복해가야 할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 일부분으로서, 더불어 기를 나누며 함께 숨을 쉬는 이 세계에 대한 긍정이다. ■ 이태호

Vol.20050727b | 박종해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