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다시 만나다

5.18항쟁 25주년기념미술展   2005_0727 ▶︎ 2005_0809

길에서 다시 만나다展_공평아트센터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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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727_수요일_05:00pm

공동추진위원장_이종률_김윤기 책임기획_박응주 / 객원큐레이터_김태현 부산큐레이터_배인석 / 광주큐레이터_조정태

주관_(사)민족미술인협회 항쟁미술전추진위원회 주최_(사)민족미술인협회_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_부산민주공원_광주5.18재단_태백민예총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길에서 다시 만나다 ● 四月革命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 잿님이 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 /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 夕陽에 비쳐 눈부신 / 일년 열두달 쉬는 법이 없는 / 걸찍한 강변밭 같기도 할 것이니 (김수영,「가다오 나가다오」) ● 대개의 혁명은 길 위에서 꽃을 피우곤 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감옥을 향한 길 위의 행진이 그러하며, 러시아 2월 혁명의 발단이 된 페트로그라드시의 중심부 대로에서의 여성노동자들의 행진이 그러하다.

길에서 다시 만나다_부산展
길에서 다시 만나다_광주展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4ㆍ19의 경무대 앞은 독재무능정치를 끌어내린 시민혁명의 발원지였고, 부산 마산의 거리 거리는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단두대였으며 광주의 모든 거리는 해방구, 6ㆍ10의 전국토는 평등의 물결로 넘쳐났다. 그런데 혹자는 그 길이 끝났다고 한다. 또 누구는 이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고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길엔 어느새 잡초도 무성해있고 가로를 행진하는 대오를 밝히던 횃불의 흔적마저 가믓하고 지난날의 회오와 의심의 시간만이 쨍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을 뿐이다.

길에서 다시 만나다_태백展
길에서 다시 만나다_청주展

길이 끝났는가? 이 전시는 끝난 그 길 위에서의 사유이다. 우리는 혹시 조급증으로 모든 것을 추억으로 돌리는 자조의 쓴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은지, 선거 때 야당에 던진 투표 한 번으로 위대한 의회주의 혁명을 이룩한 것으로 스스로도 놀라며 도취되어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는 그 둘 다를 역사의 상상력에 대한 포기로 규정하리라. 이를 '달력의 상상력'이라 명명해본다. 이는 하나를 줬으니 하나를 받는, 실로 옹색하기 그지없는 차용증서의 상거래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혁명이 안 되면 민중도 필요 없는' 지식인이다. ● 김수영에 의하면 근대씨가 뿌려진 그 대지위에는 이제 호박씨 배추씨 무씨가 뿌려질 차례이다. 근대의 그 빛나는 빌딩, 그걸 허물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려라!... ● 문제는 이 허무를 감내할 수 있겠는가, 그 무명의 세월을 견딜 수 있겠는가이다.

박재열_망령_2005
박진화_두사람에 의한 벽, 꽃, 새, 얼굴_2005

항쟁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이 전시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었다. 그것은 한 때 수구적인 민족정신의 앙양을 위해 대거의 작가들을 동원했던 '민족기록화'처럼 죽은 항쟁을 살아있는 듯 묘사할 수도, 아비의 아비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오는 살아있는 항쟁사를 죽은 듯이 추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각인된 기억'으로 남겨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태초의 공동체에의 꿈, 수 백년된 나무 아래에서 할미와 손자가 나누는 대화 속에, 아비가 상상했던 나라가 손자의 꿈이 되는 상상력의 전승이었어야 했다. 이는 두 가지의 입지점을 가능케 했다. 말하자면 이는 가까이는 내가 딛고 선 땅의 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근간일 뿐만 아니라, 멀리는 예술의 기초마저도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확보될 수 없다는 도덕적 명령에 가까운 논리의 기초를 구성했다.

김서경_바로잡지 못한 역사 속에서_2005
천현노_5월_2005

그 첫째란, 한 자연인의 삶 속에는 불변의 진리가 있어 그것은 태고로부터 메트릭스의 세계에까지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는 예컨대 사랑이나, 우정, 평등, 평화와 같은 가치들로서 이들은 새로움이나 참신함과 같은 기준에 의해 다퉈질 수 없는 정체성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각인된 기억은 신체에 육화된 정신의 영역으로 이것이 정체성의 근간, 주체의 주체되기를 독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것이 예술의 기초인 것은, 예술의 형식성을 주장하는 논의와 대척의 지점에서 그러하다. 흔히 모더니즘이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형식성은 모든 예술이 비의성이나 밀폐성, 즉 독자적인 자율적 형태를 지닌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만 효력을 미쳐야할 규정으로서, 모든 '가상'들은 결국 재귀적으로 이 세계의 고통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또한 예술의 사회적 기초라는 것이다. 결국 이는 예술을 한 사람의 천재적 작가의 일필휘지의 영감으로 여기는 예술론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렇기에 작품들은 하나의 유기체적인 완결, 곧 형식과 내용의 통일성을 제 일의로 두지는 않고 있다. 각인된 기억이 끊임없이 형식을 교란하는 지점, 그 교란에 허심탄회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즉 예술이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니라면, 그곳은 태초의 공동체에의 꿈, 주인된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주장을 넘을 수 없으며, 그 이상과 이하는 사절하는 독자성을 확보하는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이 땅을 떠날 수 없었다.

이명복_도살-황제를 위하여_영상설치_00:03:00_2005

이 전시는 하나의 제안이다. 책임을 거론하면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법, 자유를 말하면 책임을 수반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책임에게 위임해왔던 통치의 신념, 그 60년의 공과를 이제는 자유의 스펙트럼에게 위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동엽과 김수영의 차이,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을 외치던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잿님이 할아버지와 경복이 할아버지, 두붓집 할아버지같은 이에게 역사의 바톤을 넘겨보자는 제안이다. 민족이나 민주주의나 민중 그 어느 것도 말하는 일 없이, 물질적이고 생물학적인 집단으로서의 민중, 그 살(肉)적인 부대낌들이 만나 부르는 합창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것은 김수영이 묘사한 바 서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찬 '풀'들의 역사다. 풀들이 나고 지고 또 그 자리에서 잎을 맺고 열매지며 바람과 비와 이슬과 서리와 섞이는 길 위에서의 만남이다. 일년 열 두 달 쉬는 법 없는 강변 밭 대지 위에 초목이 생멸을 거듭하듯 우리의 죽음은 그 삶으로부터 길어온다. 그 죽음으로부터 삶을 길어온다. ■ 민족미술인협회

Vol.20050731a | 길에서 다시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