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ss Forest

이예승 수묵展   2005_0803 ▶ 2005_0809

이예승_Glass Forest W05-1_한지에 혼합재료_설치_2005

초대일시_2005_0803_수요일_06:00pm

갤러리 올 서울 종로구 안국동 1번지 Tel. 02_720_0054

유리숲을 걷다 ● 도시, 나는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대로변을 따라 나열된 고층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 유리로 둘러싸인 구조가 장악한 이 곳, 도시를 유리숲이라고 이름붙인다. ● 한번쯤 울창한 숲 속을 걸어 본 적이 있는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나무 사이를 걷다보면 어느 순간 숲의 웅장함과 긴장감,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오는 불안감과 낯설음이 나를 엄습한다. 거대한 나무로 이루어진 숲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현기증나는 웅장함처럼, 스쳐가며 비치는 유리숲의 반복되는 이미지는 서로서로 부딪치고 깨어져 나를 둘러싸 숨막히고 어지럽게 한다. 그러나 나무들이 둘러싼 숲 속을 천천히 걸으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서서히 머리가 맑아지면서 신선한 느낌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오히려 숲의 풍경이 익숙해 지듯이, 거대한 유리숲을 자연삼아 사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공간에 길들여지고 도시생활의 익숙함과 풍요로움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집에서 작업실로 가는 길을 따라 무심히 걷다보면 유리창에 비쳐진 무수한 이미지가 맴돌면서 끝없이 반복된다. 도심의, 길게 사방으로 뻗은, 무수히도 많은 건물들이 펼쳐져 있는 대로,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일상의 한부분이 되어버렸다. 도시의 삶이 반복적이듯 유리숲에 비친 이미지는 내 주위를 맴돈다.

이예승_Glass Forest W05-2_한지에 혼합재료_설치_2005
이예승_Glass Forest W05-5_한지, 비단에 혼합재료_65×260cm_2005
이예승_Glass Forest G05-5_한지, 비단에 혼합재료_130×162cm_2005
이예승_Glass Forest G05-3_한지, 비단에 혼합재료_설치_2005

유리숲을 바라보다 ● 언제부터인가 삶의 터전이 바뀌면서 유리숲 속에서는 알지 못했던 그 자체의 모습을 먼발치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으로 도시의 복잡한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공허에 가득 찬 곳이다. 사람의 숨결도, 빛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미세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유리 구조체일 뿐이었다. 마치 거대한 숲을 빠져나와 그 숲의 모양을 알아버린 것처럼 나의 삶의 터전은 그저 유리덩어리가 되어 무거운 공기 속에서 떠돌고 있었다. 아침 안개인지 매연인지 모를 희뿌옇고 텁텁한 무거운 공기 속에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건물들은 개별의 형체를 잃어버리고 붕 떠서 맴도는 하나의 회색 덩어리로 다가왔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삶,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쳇바퀴 돌 듯 돌아가, 정작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리고 허우적거리는 내 자신의 삶을 말해주듯이, 도시의 구조는 존재이유를 상실한 듯 보였다.도시의 풍요로움과 익숙함이 가리고 있던 삶의 공허함은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유리숲은 마치 공허함에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나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유리숲은 떠돌다가 잡히지 않는 기억의 구름 저 아래로 숨어버린다. 오늘도 홀로 서서 묵묵히 삶의 터전인 유리숲을 바라본다.

이예승_Glass Forest G05-1_한지, 비단에 혼합재료_설치_2005
이예승_Glass Forest W04-5_한지, 비단에 혼합재료_173×131cm_2005
이예승_Glass Forest G05-2_한지, 비단에 혼합재료_233×193cm_2005

이전의 작업에서는 장지에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갤러리 공간을 직접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도시 이미지와 소통하려고 했다면, 이번 작업은 종이와 견이라는 조금은 상반된 두 재료를 이용해서 각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법들 간의 겹침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이 지층처럼 쌓여가는 이미지를 더욱 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이번 작업은 시간과 시간이 서로 스치며 축적되고, 또한 공간과 공간이 기억 속에서 짜여져 만들어지는 조합을 형상화한 것이다. 견과 종이의 미세한 틈 사이에서 흔들리고 겹치는 미묘한 느낌으로 도시의 삶 속에서 설 곳을 잃고 헤매는 현재의 심정을 나타내려 하였다. 장지 속에서 흐르는 수묵의 미세한 흔들림과 견의 차가움이 겹쳐져서 만들어내는 미묘한 공간은 유리숲에 익숙해져 버린 공허한 나의 심성과 맞물린다. ● 먹은 장지에서 응집되었다 물의 흐름에 따라 해체되어 시간성을 지닌 공간이 창출되고, 그 위로 겹쳐지는 견에서는 인위적으로 막히고 분할되어, 리듬감 넘치고 도시의 현대적인 구조를 담아내는 화면을 만든다. 이 두개의 이미지가 겹쳐서 부유하는 듯한 공간성을 창조한다. 이렇듯 장지 위에서 시간의 격차를 두어 발묵하여 생기는 우연적인 공간과 그 위에 얹히는 인위적인 화면의 겹침은 먹과 흰 여백 사이의 긴장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교차하는 여러 작업을 통하여 도시의 유리구조가 생산해내는 비치고 겹치는 무수한 이미지를 시간성을 지닌 공간으로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그 동안의 전시를 통하여 도시의 삶에서 오는 느낌을 표현하였다. 이제는 유리숲을 걸어 나올 때가 된 것 같다_작가노트에서 ■ 이예승

Vol.20050803b | 이예승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