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가도 없다

이영화 설치드로잉展   2005_0806 ▶ 2005_0815

이영화_총두자루_아크릴 물감, 양면테이프_40×35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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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06_토요일_06:00pm

창동미술스튜디오 전시실 서울 도봉구 창동 601-107번지 Tel. 02_995_0995 www.artstudio.or.kr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 이영화는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잠시 귀국하여 2005년 6월부터 8월까지 창동스튜디오에 단기입주자로 머물고 있는 중이다. 이영화는 주로 '설치 드로잉'이라고 명명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선보일 작업 역시 '어떤' 설치 드로잉들이다. ■ 창동미술스튜디오

'어떤' 설치 드로잉 ● 내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 브루클린이라는 지역에 가면 '덤보(d.u.m.b.o.)'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구역이 있는데, 그곳은 예술가들의 스튜디오가 밀집되어 있는 작지만 거대한 예술 공간이다. 나는 그 곳에 갈 때면 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뿜어나가듯이 그 많은 작업실에서 생산되는 작업들 중에서 발표되지 못한 채 작업실 구석에서 쌓여만 가는 작업들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들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쓰레기처럼 보인다. 재활용 쓰레기처럼. 이 시대의 작가들은 단지 자본주의의 원칙에 의해서 철저하게 점수가 매겨진다. 그러나 높은 점수를 받은 소수의 작가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작가들이 그리거나 만드는 행위 자체는 이 사회의 시스템에 흡수되지 못한 채 경제적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뉴욕에서 작업하는 나는 기능을 상실한 채 버려진 '재활용 쓰레기'에 관심이 생겼다. 나의 관심은 주변에 널린 물건에 아크릴 물감을 굳힌 후 떼어내어 껍데기처럼 입히는 방식으로 오브제에 페인팅을 하는 작업으로 이미지화되었다. 집에 있는 히터기와 선풍기, 냉장고 등을 말린 아크릴로 감싸면, 그 히터기의 기능성이 제거됨으로써 비로소 '예술' 작품이 되었다. 한국에 잠시 머문 6,7,8월 동안 창동스튜디오에서 나는 뉴욕에서의 이 컨셉을 다시 작업화 했다. 한시적으로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여,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어떤' 설치 드로잉들이 이곳 스튜디오에 나타날 것이다. 내가 뉴욕으로 돌아가는 순간 사라질 테지만……. ● '어떤'이라는 것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대개 불명확하고 부정확한 것들을 '어떤'이라고 한다. 그럼 나의 작업은 '어떤' 것일까. 나의 작업이 내재하고 있는 '어떤'의 의미는 사전적인 의미보다 더 추상적이다. 드로잉이지만 그 속성이 불명확해서일까? 선으로 형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로잉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면 나의 작업들은 분명 드로잉에 속한다. 하지만 보통 알고 있는 드로잉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설치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페인팅으로 만들어진 선들, 그림으로 만들어진 빗자루, 전시장에 붙어 있던 문도 자연스럽게 내 작품의 일부가 된다. 드로잉 아닌 드로잉, 빗자루 아닌 빗자루, 문이지만 문이 아닌…… 이러한 부정확함, 불명확함을 지칭하는 대명사 '어떤'…… 이것들은 '어떤' 작가의 '어떤' 드로잉이다. ● 3개월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텅 빈 스튜디오에 머물렀다(물론 8월 나는 다시 이 방에서 나갈 것이다.). 그 방에는 작품이 없다. 나는 그 텅 빈 공간에 어떤 드로잉을 작품으로 만들었고 지금 '그 방에는 작품이 있다'.

이영화_그 방_빗자루, 의자, 그림, 아크릴 페인팅, 침대, 붕대, 양면 테이프_가변크기_2005
이영화_그 방_빗자루, 의자, 그림, 아크릴 페인팅, 침대, 붕대, 양면 테이프_가변크기_2005_부분

그 방 ● 스튜디오에 들어서 노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늘어지게 잠을 자면, 잠인지 생각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곧 잠인지 생각한 것들인지 그 어떤 것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어떤 드로잉이 된다. 내가 입주하기 전부터 그리고 이후 계속 있을 전시장의 문은 내 작업 안에서도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품의 어떤 부분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매일 반복되는 스튜디오에서의 생활, 오후 1시, 2시 각기 다른 DJ들의 오프닝멘트를 외울 정도로 줄기차게 듣던 라디오 소리가 어느새 페인팅이 된다. 나의 동작들이 드로잉으로 만들어진다.

이영화_만병 통치약_약병, 흙, 잡초_가변크기_2005

만병 통치약 ● 어딜 가든 스트레스는 늘 따라다닌다. 뉴욕이든 서울이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은 약에 의존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병에 담긴 모든 것들은 외로움과 괴로움, 생각의 번뇌, 육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보상이 된다. 약병에 담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치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대의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방법은 결국 자연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전시가 끝난 후에 버려지는 무수히 많은 작품들 대신에 자연을 잠시 빌려서 약병에 담았다. 전시 기간 동안에 설치되었던 그것들은 전시가 끝난 후 여느 작품들이 버려지는 것과는 달리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질 것이다. 진정한 치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이영화_벽 뒤에서는 무슨 일이_철사, 아크릴물감, 양면테이프_가변크기_2005
이영화_벽 뒤에서는 무슨 일이_철사, 아크릴물감, 양면테이프_가변크기_2005_부분

벽 뒤에서는 무슨 일이 ● 스튜디오에 앉아 생각에 잠기고 있노라면, 나의 상념은 벽을 뚫는다. 단단한 현실의 벽을 뚫고 상상의 공간으로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현실로 나온다. 뒤엉킨 선 같기도 하고 페인팅 같기도 한 그것들이 벽을 뚫고 솟아나온다. 그것이 망상인지 현실인지, 그 누가 규정할 수 있는가. 벽 속으로 사라진 선들이 어디로 사라졌다가 다시 우리 세계로 나타나는지 알 수 없다. 그 누구도. 내가 어딜 가든 그 선들은 '어떤' 드로잉으로 벽을 뚫고 나타날 것이다.

이영화_물병그림을 만들다_물병, 아크릴 물감, 접착제_가변크기_2005

물병 그림을 만들다 ● 더운 날 스튜디오에서 마시던 물병을 보면서 물병의 고유한 기능 이외에 또 다른 어떤 기능이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물병이라는 대량 생산되는 상품을 해체하여 생산과 소비라는 단순한 산업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기능을 부여하고 싶어진다. 물병을 잘라본다. 물병의 단면은 날카롭지만 예리하고 세련된 선을 가지고 있다. 그 라인과 라인을 연결하자 어떤 드로잉이 된다. 물병의 꼭지만이 이전의 해체되기 전 물병으로서의 기능을 짐작하게 할 뿐, 정작 물을 담았던 통은 기능을 상실되었다. 대신 그림이 되었다. 사회적 기능이 제거되었지만 미적 기능이 새롭게 부여된 것이다. ■ 이영화

Vol.20050806b | 이영화 설치드로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