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다... 나와

주연수 회화展   2005_0813 ▶ 2005_0819

주연수_파란 붕어빵_캔버스에 유채_190×112cm_2005

초대일시_2005_0813_토요일_05:00pm

갤러리 아카 서울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38번지 Tel. 02_739_4311

나의 작업은 "끝없는 해체이며...또한 조합이다" "사각의 제한된 틀을 지나...그 너머에서...꿈을 꾼다... 꿈을 꾸며...상상에 날 맡기며...나의 붓은...무한대의 공간...그 안에서 춤을 추고프다." 끝없이 왜...형상을 해체해내는가...그리고 그것을 왜 다시 조합해내는가를 나는 내게 끝없이 지금도 묻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지배받을 수 받게 없는 고립, 그리고 단절... 사람은 그러나...그 소외 안에서 사회를 변혁시키는 원동력이었던 역사의 주체. 그럼에도 물질화된 사회 안에서 부품처럼 소모된다.

주연수_아름다운 시간 1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5

바라보다...끝없이 바라보나...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모습이...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리고 느낀다고 믿는 외형은, 눈에 보이는 형상은, 보여 지는 아름다움은...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어디까지가 아름다움이라 말해낼 수 있는가? 내게 묻다 그리고, 길을 떠나다... 형상을 해체하고 또 해체하며...보여 진다고 믿는 아름다움을 거부하면서... 해체된 형상은 길 위에서 길을 헤매며, 때론 엉키며, 때론 흩어지며, 조합이란 또 다른 틀로 내게 다가선다. 그러기에 해체된 형상은 인간의 외피적 형상의 파괴를 의미하며 만연된 본질왜곡을 고발한다. 해체하고 해체하여 내부로 침투하여 인간의 본질에 침작하는 방법을 모색함이, 내가 붓을 들고 붓질을 하는 의미일 것이다.

주연수_아름다운 시간 2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5

사회 안에 존재하는 어두운 단면과 슬픈 뒷모습...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램프이며, 심한 고립감안에서도 소통을 갈망하는 우리들의 상처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무관심과 단절이기에... 무관심과 단절의 슬픔너머로 나의 작업은 소통의 길로 가고프다. 인간의 소외를 너머, 소외의 단절 너머, 슬픔은 빛을 발하며 갈망하는 소통. 그 바램이 나의 작업이다. 그 바램은 나의 작업을 끝없이 해체의 길로 이끈다. 그러기에... 떠나고 또 떠날뿐... 바라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끝없이...바라보다 암울함을 견뎌내고 있는 어둠은 화사함보다 밝을 수 있으며, 단절의 고립감을 견뎌내고 있는 소외감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희망이라고 믿기에...

주연수_교집합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5

미술가로써...말하다. 예술의 영역에서 자신의 작업을 투영시킴은 간결해야한다. 어떠한 군더더기의 허욕으로도 자신을 가두는 것은 그 순간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함과 같은 의미로 내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난 가장 아픈 고리를 찾아가서 그 아픔 속에서 같이 아파하고 그 속에서, 삶 속의 사람을 느껴내 그것을 작업으로 소통하고 싶다. 흉측함과 아름다움의 경계를 허물고 그 익숙함을 해체하다 보면 세상이 규정지은 아름다움과 추함, 밝음과 어둠의 경계는 없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틀을 너머...틀을 만들고...그 틀의 손잡이를 잡고...길을 떠나다. 언젠가...틀이란 단어조차 생경스러워지길 바라면서.... ■ 주연수

주연수_웃어...jujinski..._캔버스에 유채_76×47cm_2005
주연수_웃어...jujinski..._캔버스에 유채_76×47cm_2005

누구는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말하지만, 어떤 이는 눈을 감고서 더 많은 것을 본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시력視力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통찰에의 의지일 것이다. 지독한 고통의 기억이 나의 눈을 멀게 하여도 통찰의 의지 앞에서는 한갓 가벼운 장애물일 뿐일 것이다. ■ 최선

Vol.20050813a | 주연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