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더불어

이유진 금속展   2005_0817 ▶ 2005_0823

이유진_희인유천_한지에 실크스크린, 황동-브로치_60×18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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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17_수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www.artside.net

세계를 향한 고독한 외침 ● 작년 봄이었던가? 이유진의 「흉기들」을 보고 와서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녀의 작품들은 내게 이상한 고독의 냄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 정교하고 세련된 조형미는 당돌하고, 명료하며, 더할 나위 없는 균형감에 빛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나 겨울 해변에 흩어져 있는 차가운 유리조각들처럼 쓸쓸하다. 연대감보다는 고립감을, 그리움보다는 외로움을 내뿜는 기운이 반드시 금속성의 재료에서 전해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형상적 완성도가 높을수록 발언의 힘 또한 커지는 법이다. 이번에도 나는 그것을 느낀다. 쥐 그리고 파리…. 더럽고, 귀찮고, 불결하며, 이 쪽 저 쪽 들어붙어 병균을 옮기는, 이 정들기 어려운 생명체들을 이다지도 정성스럽게 장식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유진_파리 목걸이_은_11×6×8cm_2005

작품전 「파리와 더불어」는 시종 강렬하고 불온한 도발의 힘으로 넘친다. 명필 「戱人遊天」(사람을 희롱하고 하늘에서 논다)을 깔아뭉개는 파리들과 풍문의 「聞」자를 붓글씨처럼 써내려가는 쉬파리의 탐욕은 보는 이의 뇌리에 각인되어 잠자리까지 따라오고, 핏발이 선 눈알을 축구공처럼 껴안고 뒹구는 쥐,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빛의 세계를 엿보는 생쥐의 호기심은 우리의 상식과 정서적 안정을 흔든다. 하찮은 미물을 괄시해온 인간의 관습적 사유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고나 할까? 여기서 연상되는 첫 번째 이미지가 14세기의 어떤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결코 빼먹을 수가 없겠다. 쥐와 파리의 음습함 속에는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페스트의 기억이 도사려 있다. 학자들은 말한다. 1340년에서 1400년에 이르는 60년 동안 아프리카 인구는 8천만 명에서 6천 8백만 명으로 줄었고, 아시아의 인구는 2억 3천8백만 명에서 2억 백만 명으로, 또 세계 전체 인구는 약 4억 5천만 명에서 3억 5천만 명으로 감소되었다. 1년에 100만 명씩 사라져버리는 현실 앞에서 문명세계는 긴장하고, 중세의 정신들은 경악의 늪에 빠졌다. 유럽의 몇몇 도시와 마을에서는 주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는 바람에 사제는 장례식을 다 치러주지 못했고, 장의사는 주검을 다 묻어주지 못했다. 문화 귀족의 위용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파리 앞에서, 또 쥐가 무서워서 남편은 부인을 떠나고 어머니는 자식을 버렸다. 더 이상 기존의 역사가 이어질 수 없었다.

이유진_식사_은-반지_21×12×1cm_2005

그러나 내게는 한편으로 이유진의 눈길이 페스트를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얼마간 예측되는 경로를 밟을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다. 장신구 혹은 장식품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은 '기념하려는 욕구'와 '과시하려는 욕구'이다. 인류가 전리품을 자랑하듯 자아를 치장하는 과정에서 엽기적인 발상을 드러냈던 사례는 흔하다. 딱히 그 때문이랄 수는 없지만 그로테스크 미학의 출생지 자체가 장식 예술이었다. 그래서 기괴한 것, 익살스러운 것, 뒤틀린 것, 비범한 것을 모티브로 한 불가해한 매혹을 우리는 보았고, 또 이해하고 있다. 전쟁터의 병사가 적들의 귀를 잘라서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는 것도, 축구장의 서포터스들이 자신들을 '붉은 악마'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일 것이다.

이유진_꿈_황동, 혼합재료_25×25×25cm_2005

그렇다면 14세기의 페스트 이미지가 장식물로 등장했을 때 도드라지는 능력은 미학적 가치가 아니라 역사의식의 명석함이 된다. 지상의 역사 위에 '근대'라는 휘황찬란한 연대기를 불러온 것이 페스트라는 주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로마 이후 유럽을 지배했던 사회질서가 순식간에 파괴되고, 대륙에 위험한 무질서가 남았던 이 무서운 전염병의 책임을 유럽의 역사는 칭기스칸과 그 유목민들에게 뒤집어 씌었다. 새로운 연대기가 시작되는, 창조를 위한 폐허의 자리에서 유럽은 미래의 희망에 속하는 것과 과거의 잔재에 속하는 것들을 심판하면서 과감하게 황색 콤플렉스를 은닉하고 역이용했다. 하여, 14세기 이후 대략 여섯 세기에 걸쳐 이성과 과학을 앞세운 근대인들에 의해 유목민의 역사가 먹칠을 당했다. 이만하면 쥐와 파리들은 페스트의 기호로서 유목민에 대한 편견의 역사를 전복하는 효과를 충분히 가진다 할 것이다.

이유진_파리대왕_은, 혼합재료_13×3×3cm_2005

하지만, 이유진의 작품들에는 칭기스칸 이후 사장돼 온 몽골사를 상기시키는 광야의 흔적이 없다. 이 점은 그녀의 스케일을 작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새롭게 하는 요소도 된다. 예술행위가 굳이 무엇을 구원하는 일에 속한다면 그녀의 노력은 필시 또 다른 무엇인가를 겨냥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장신구들은 분명히 상품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의 자리에 놓여 있다. 하나의 물건이 공장에서 나와서 백화점으로 가는 경우와 전시장을 향하는 경우는 크게 다르다. 똑같은 천재도 제 발로 걸음을 뗄 때는 창작의 밀실을 찾지만 남에게 끌려갈 때는 정신병원으로 가는 법이다. 여기서 그녀에게 누구를 계몽하려는 의지와 무엇을 기념하려는 주최자 의식이 없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유진_꿀단지_은, 청동-브로치_45×50×45cm_2005

예술의 본질은 작품의 발언을 듣는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자에게서 나온다. 예술이 '세계를 향한 고독한 외침'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수용자가 창작자에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작품을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파리 부로찌'는 뒤샹의 변기와 같은 것일 뿐 액세서리가 아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녀가 왜 항상 그런 형식을 취하는가 하는 점인데, 케테 콜비츠가 판화 형식을 사랑했던 것처럼 장신구 형식에 대한 그녀의 애착도 집요해 보인다. 물론 한 사람의 예술가가 선택한 모티브를 이런 식으로 개념화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도 아니려니와 결코 옳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유진이 애써 쥐와 파리 따위를 장신구 형식으로 제출하는 정확한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고의였다는 점은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고의성에서 자유로운 사유를 구가하기 위한 탈선과, 현실의 잔해를 자신의 척도로 변형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그렇다. 그녀는 아마도 이 작품들을 통해서 안정보다는 불안정을 향하는 긴장을 야기하고 싶었고, 세상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관습적 이미지를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낯설게 만들며 변형시켜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나누고 있는 필수적인 구분들, 미와 추, 향기로운 것과 역겨운 것, 빛과 그림자, 고통과 기쁨, 지상과 천상 등 지당한 것으로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분별력을 전복시켜 혼란스러우면서 매혹적인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있다. 아마도 세상의 뒤쪽에, 또 인습의 그늘에 가려진 생명들을 구원하려는 몸짓이 아니었던가.

이유진_죽은 쥐_캔버스에 실크스크린, 은-브로치_45.5×53cm_2005

생각해보면 지상의 생명체 중 어떤 것이 그 생태 현상만으로 절대적인 악으로 추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알에서 태어나고, 어떤 것은 흙에서, 또 어떤 것은 썩은 웅덩이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유독 인간만이 왜 존엄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상에 있는 사물들의 가치를 왜 인간을 척도로 규정해야 하는가? 생명체들에 대한 이 같은 감정은 미학적 분별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의 작용을 한다. 꽃과 나비, 봄바람과 햇살은 '쾌'여야 하고, 먹구름과 흐린 날씨는 '불쾌'여야 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미학도 제도화되거늘, 인류가 자연 현상을 이기지 못하던 시절에는 태풍이나 태양, 홍수의 이미지가 부정의 감정을 자아냈지만 지금은 태풍 같은 사나이, 태양처럼 정열적인 사람, 홍수처럼 정이 넘치는 여인은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그녀의 전도된 의미체계는 전혀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쨌든, 그녀가 이토록 인식의 문제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긴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시 그 모든 편견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지울 수 없는 감정의 하나로 남아 있는 그녀의 예술행위에 깃든 '완강한 고독'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굳이 그에 대한 답을 묻고 싶지는 않다. 내 스스로의 삶 안에도 공감의 여지가 많은 까닭이다. 「사람은 하늘의 것을 훔치고, 쥐는 사람의 것을 훔쳤다!」 이렇게 인용하는 그녀의 삶은 상식과 편견과 문명의 틀 속에서 고통스러웠으며, 고독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상에서 선택된 소수가 누릴 만한 훌륭한 것들을 가진 그녀의 내면에 저장된 슬픔을 본다. 그녀가 '세계를 향해 외치고 싶은' 예술적 초발심의 근거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쥐와 파리로 된 장신구를 가슴에 달고 지상의 쓸쓸함이 뼈아플 때마다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여! 그 나머지는 창작의 신명 때문에 수확을 얻게 된, 하늘이 내린 부수적 선물일 것이며… ■ 김형수

Vol.20050819c | 이유진 금속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