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에 새긴 신체와 상처

정인희 개인展   2005_0823 ▶ 2005_0831

정인희_완벽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4

초대일시_2005_0823_화요일_05:00pm

다빈치 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5-23 카사플로라 빌딩 지하 Tel. 02_6409_1701 blog.naver.com/64091701

천에 새긴 신체와 상처 ●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캔버스는 이후 서구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질적인 화면으로서 기능해왔다. 당시 린넨 천의 대표적인 생산과 관련된 도시에서 벽화를 대체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 인위적인 화면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이 분리되고 적출되어 나온 결과이기도 했다. 수중도시에서 습기와 보존의 어려움을 이기기 위한 재료의 모색이 또 다른 화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서구회화사는 그 화면의 존재 자체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모색, 단절과 대안 등에 힘입어 존속해오고 있다는 인상이다. 원근법과 환영, 평면과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논의, 탈 평면과 탈 캔버스, 그리고 다시 회화의 복원 등등이 그런 논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도 여전히 천으로 뒤덮인 사각형의 화면은 모든 화가들에게 도전이자 시련이고 희망이자 절망일 것이다. 천이란 소재의 조건과 속성, 그리고 사각형의 평면 그 자체에 대한 일종의 유희를 통해 개인의 심리적 상처의 기억과 회복 등을 다루는 정인희는 캔버스 자체를 오브제화하고 있다. 그것은 그려진 그림이기 이전에 주어진 화면 그 자체에 대한 개인적이고 심리적이며 정신적인 해석에 의해 결과 된 흔적이 이미지가 되고 시각적 효과로 응고된 것이다.

정인희_him and her_혼합재료_21×21cm_2003
정인희_세 사람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4

작가가 다루는 사각형의 틀을 감싸고 있는 것은 삼베 천이며 천의 색상은 조금씩 다르다. 천 자체의 색상, 질감이 화면 전체를 그림처럼 덮고 있다. 물감이 발리고 붓질이 얹혀지기 이전에 천 그 자체가 새로운 화면, 피부로 성형되었다. 작가는 그 천에 다채로운 흠집을 냈다. 올이 풀리고 직조된 천이 밖으로 헤쳐지는가 하면 찢거나 중심에 구멍을 내거나 중심부에서 주변으로 벌려놓았다. 천의 올을 풀어헤치고 사방에 상처를 내다가 다시 실로 칭칭 동여매며 표면을 가리는 한편 굵은 실로 꿰매놓기도 했다. 일정한 규격의 사각형 프레임에 연출된 이 다양한 행위는 천이라는 표면, 지지대에 상처를 주고 이를 다시 봉합하거나 꿰매는 놀이를 보여준다. 자기 파괴적이며 동시에 자기 치유와 수습의 국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면(천)은 여러 시간의 경과와 그 동안이 감정 등을 고스란히 증거 한다! 아울러 그것은 바늘과 실이 붓과 물감을 대체한 듯 하며 의술과 여자들의 규방문화, 여자아이들의 놀이문화 등도 떠올려준다.

정인희_희망_혼합재료_21×21cm_2003
정인희_무제_혼합재료_21×21cm_2004

작가에게 삼베천은 개인적인 상처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상기의 고통, 개인의 아픈 과거가 이 삼베 천에 스며들어있다. 그것은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과 망자에 대한 원초적인 기억을 환생시키는 매개이자 추억과 관련되어 있다. 오랜 옛날부터 삼베는 방부와 관련된 천이라 미라나 시신과 연관된다. 동시에 그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재질과 색감은 매력적인 화면 자체를 스스로 지탱시킨다. 그것은 이미 물감이나 붓, 이미지의 도움을 받아 환생되어야 할 밋밋한 표면과는 다르다. 정인희에게 있어 일종의 트라우마의 상징적 오브제인 삼베 천은 과거의 기억과 원초적인 심리적 상흔을 자극하고 동시에 현재의 자신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거듭난다. 작가는 캔버스 천 자체를 혹독하게, 더러 공격적으로 다루었다. 여기서 천은 신체이자 지난 시간의 궤적들을 머금고 있는 매개이며 현재의 상황, 시. 공간을 대체한다. 특히나 여성적 신체관이 천의 경계에서 벌어지고 있음도 본다. 작가는 그 천에 모든 것을 토해놓는다. 여기서 화면. 천은 자신의 또 다른 대체이며 분신이자 현실적 삶의 장이고 공간이다.

정인희_I and they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4
정인희_희망_혼합재료_감자_21x21cm_2004

정인희는 캔버스와 천 자체를 탈회화적이거나 오브제화하려는 목적 아래 두기 보다는 개인적인 심리와 정신을 다루고 이를 통해 치유와 정화로 삼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리적이며 여성적인 차원에서 천과 캔버스를 다루는 편이다. 천이란 소재의 색감과 재질은 작가에게 근원적이고 문화적 원천으로서 향수와 관련되어 다가오고 이 천의 여러 설치적, 연출적 상황을 통해 자기 메시지를 구술하는 작업은 일종의 개인적인 서사의 소박하고 자발적인 고백으로 보인다. 결국 작가에게 작업이란 외부의 것을 지칭하고 표상하는 것 이전에 내부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상처와 기억을 탐사하고 이 상처를 외화 시키는 한편 보듬고 치유하고 정화하여 또 다른 희망으로 나가기 위한 시도임을 보여준다. ■ 박영택

Vol.20050823a | 정인희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