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공의 경계선에서……

김용호 영상설치展   2005_0824 ▶ 2005_0830

김용호_약육강식(The Law of the Jungle Never Gone)_싱글채널비디오_00:04:40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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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24_수요일_06:00pm

갤러리 한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4번지 Tel. 02_737_6825 www.han-gallery.com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는 본래 틈이 없는 연속체인 곳에 우리 인간들은 인공적 경계를 여기저기에 만들어내고 있다"는 에드먼드 리치(Edmund Leach)의 말에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자연/인공뿐만 아니라, 순수/비 순수, 중심/주변, 예술/기술, 진짜/가짜, 현실/가상 등을 비롯한 대립적 세계는 경계-구분을 통해서 성립되며, 그 경계-구분 사이에는 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 경계-구분은 분명하고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애매하고 유동적인 것이다.

김용호_콘스터블 연구(Study for The Hay-Wain by John Constable)_싱글채널비디오_2005
김용호_콘스터블 연구(Study for The Hay-Wain by John Constable)_싱글채널비디오_2005

이제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구축되고 절대로 허물어뜨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온 다양한 분야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대립적 세계를 구성하는 각 영역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그와 동시에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대립적 세계의 각 영역은 이제 확고부동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제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인식의 틀이 짜이고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진짜 혹은 가짜로 인식 할 때, 그 진/위(眞/僞)의 경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나는 역사의 강을 따라 과거의 먼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본래 세계의 어디에도 경계는 없었으며, 세계는 하나의 무경계의 연속체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의 문화라는 것은 그 무경계의 세계에 우리가 강제적으로 경계선을 설정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경계선을 그음으로써 문화를 만들어가지만, 그 경계의 시초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본래 세계의 어디에도 경계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시도하는 순간,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질서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시도는 '관습을 타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며, 관습을 옹호하는 사람들로부터 완강히 저지 당하게 된다. 관습이나 이념의 경직성에 우리 스스로 얽매여 고정되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게 되면, 이는 각자의 자유와 창조성을 억압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용호_대식가(I have a big appetite)_싱글채널비디오_00:03:30_2005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테크놀로지는 경계에 대한 나의 고민의 발단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경계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아날로그 문명에서 디지털 혁명으로의 대전환이 대중들에게 널리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이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상상적인 감각 세계에 현실적인 지각 세계가 개입되기도 하고, 혹은 반대의 경우에 놓이기도 했다. 이것은 상상적인 이미지의 세계가 현실로 변환됨으로써 현실적인 지각 세계가 더욱 확장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이것은 비 실재성/실재성을 가르는 경계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이며,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는 이제 상호 관계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 서로 호환이 가능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김용호_자연-인간-기술(Nature-Human-Technology)_야외 네온 설치_2004

인간의 표현 방법에 있어서 자연의 빛이 절대적 위치에 군림하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이제 기계적인 부호의 조합 체계와 그것들을 프로그램화하는 알고리즘인 인터페이스의 영역이 점차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그 동안의 전통 예술 양식들이 생산해 낸 이미지들은 공간에 기반을 두고 구성되어 왔으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술적 의미의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공간/시간이 중요한 구성적 주제였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매체들에 의해 생산되는 영상 이미지들이 의존하는 시간은 그 자체의 독립적인 시간 안에서 전개되는 것으로, 실제 우리들의 삶을 구성하는 과거, 현재, 미래와는 관련성이 없는 아주 새로운 의미의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 표현되는 이미지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이미지는 실재하지 않고 관념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실재성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 이미지는 당연히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나는 부재-비 실재를 통하지 않고서는 현전-실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

김용호_뒤러연구(Study for Self Portrait by Albrecht Durer)_싱글채널비디오_00:03:50_2005

우리가 부재 혹은 현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과거의 의미는 무엇이며, 현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으로 대체될 수 있다. 현재와 비교되는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며, 지금은 부재하는 것이다. 거대한 시간의 창고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이 축척 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창고에서 무엇인가를 꺼낼 때마다, 그것의 모습은 아주 다양하게 현전한다. 내가 학창 시절에 그림으로 그려보았던 컨스터블의 낭만적인 시골 풍경화나 다빈치 코드로 그려진 모나리자의 모습, 곱슬머리를 길게 풀어 헤친 보헤미안 풍의 뒤러의 자화상 등을 현재에 다시 되살리려 할 때,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실제로 보았던 그 그림들과는 다르게 변형된 데이터가 생성되어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현전한다. 그 명작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동일한 이미지로 존재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그저 거대한 시간의 창고에 축척 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에게 생생하게 되살아남으로써 비로소 과거가 된다. 현재는 과거의 끊임없는 생성 과정인 것이다. 과거가 다양한 변화들을 맞이하면서 지금 생성되는 그것이 바로 현재인 것이다. 결국 현재는 '창조되는 과거'인 동시에 미래는 '창조될 현재'인 것이다.

김용호_길들여진 웃음(Fake Smile)_싱글채널비디오_00:04:00_2005

비디오 설치 작업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지된 사진 이미지와 동영상 이미지를 오려내고 다시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는 디지털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동영상은 아무리 과거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는 현재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반면, 스틸이미지 사진은 아무리 최근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체험으로 다가오는 인간 인식의 수수께끼를 깊이 파헤쳐 보기 위해 나는 디지털 콜라주를 사용한다. 디지털 매체가 허용하는 이런 방법을 통해서 나는 근본적으로 순수/비 순수, 진짜/가짜, 현실/가상의 경계에 대해서 새로운 물음을 계속할 것이다. ■ 김용호

Vol.20050824a | 김용호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