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땅

김춘자 회화展   2005_0824 ▶ 2005_0830

김춘자_자라는 땅 부분_캔버스에 유채_160×36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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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824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생명은 고유하고 자신만만하며 노골적이고 거침없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화려하고 무한하여 시작과 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은밀하여 쉽사리 눈에 띄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 동물, 식물이라는 이름으로 구획 지어져 얼핏 서로 대치되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롭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민첩하게 교류한다. 노래하는 꽃으로, 꽃을 말하는 입으로, 두뇌의 애벌레로, 발아하는 송곳니로, 손가락 끝에 자라는 꽃눈으로, 뿌리의 분만생산으로, 겨드랑이에 뿌리박은 민들레 홀씨로, 갖가지로 표정 짖는 식물의 몸짓으로, 인간에 기생하여 자라는 꽃봉오리로.....

김춘자_날아오르다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05
김춘자_씨앗의 꿈_캔버스에 유채_50×60.6cm_2005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음모하는 어리석은 이들을 단호히 경고한다.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을 처음 그대로 있게 하기를 명령한다. 그리하여 이 땅은 자람을 거듭하고 '생명'이라는 절대의 단언으로 모든 개념 앞에 서서 "쿵쿵쿵" 우리의 삶을 진동하여 일깨운다. ■ 김춘자

김춘자_꽃으로 일어서다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5
김춘자_살아있는것들의 즐거움_캔버스에 유채_38×45.5cm_2005

어두운 숲의 공기 속에서 혹은 늪의 물속에서 태어난 듯한 원형적인 동물들. 서로 얽혀 뻗어나가고 접목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 꿈틀대고 움직이는 이름모를 생물들. 작가의 작업 속에 늘 등장하는 이 생명체들이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던져주는 단어는 문명의 창백한 장막 넘어에서 작동하는 생명의 힘이다. 그러나 이 속에는 단지 한방향의 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화면 위를 부드럽게 떠돌아다니는 이 생명들과 그들을 감싸는 공기사이에는 신경의 떨림과 같은 미묘한 긴장이 감돈다. 이곳에는 단지 푸근한 어머니 - 대지와 같은 생명의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다소 그로테스크한 원색이미지들에 비해 최근의 작업들은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보여주지만, 이 긴장의 느낌은 여전히 살아있다. 화면을 꽉채우고 서로 얽혀있는 나무들, 깊이와 표면을 구별할 수 없게끔 형성되어있는 공간. 그리고 날아가는듯 기어가는듯, 알수없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뿌리와 가지들, 머리와 몸통을 구별할수없는 형태들. 또 그녀의 작업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식물이 합체된 형상들. 자신의 몸 일부를 싹틔우는 동물과 동물을 자양분으로 자라나는 식물들. 이곳에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자각과 더불어 미분화와 원초적인 카오스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의지와 동시에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사이의 긴장에서 오는 경계선의 모호함이 스며있다.

김춘자_자라는 땅_캔버스에 유채_200×260cm_2004
김춘자_그들의 수다_캔버스에 유채_33.4×45.5cm_2005

원근법적인 구성대신 서로 다른 시점이 섞여있거나 평면적인 나열을 보여는 구성방식에서도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화면구성은 이성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이브한 세계관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조금씩 카오스로 돌아가고자하는 원시적인 힘의 움직임과 그로부터 긍정적인 것을 걸러내려는 작가의 노력이 중첩되어있는 공간은 아닐까. 그 정중동의 느낌.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신비적인 색채들간의 흐름은 고요한 숲과 늪을 감돌고있는 안개처럼 보인다. ■ 조선령

Vol.20050824c | 김춘자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