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pia 공상적 초상

신선주 사진설치展   2005_0831 ▶ 2005_0906

신선주_Coaster_컵받침 플레이트에 폴라로이드 이미지_3.5×3.5×0.12inch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토포하우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831_수요일_06: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4_7555 www.topohaus.com

아티스트 신선주의 매혹적인 사진들에는 인간성에 관한 토포그래피(topography) 그 이상이 담겨 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성격, 문화, 인종, 연령의 외면이 내포되어 있다. 신작가는 새들이나 하늘에게는 대체로 익숙한 그런 관점으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사색적 시선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들 사진의 이미지는 매우 순수한 시각적 운문이다. 개별적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신작가가 전시회에서 창조해 낸 정교한 망(grids)속에서 하나로 통합해서 볼 때에도, 그 이미지들은 머릿결, 즉 우리의 머리를 꾸며주는 머리카락의 대조적 상태, 다시 말해 꼬이거나 부드럽거나, 아니면 일직선이거나 곱슬거리거나, 혹은 숱이 많거나 적거나 하는 그러한 대조적인 면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베트남전 시대를 다룬 뮤지컬 '헤어(Hair)'의 주제곡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역시 '헤어(Hair)'라는 제목의 그 노랫말은 머리카락이 순응의 자유요, 표현의 근원이며 정체성이 존재하는 생기발랄한 장소임을 나타내고 있다. 정말 흔한 부분이면서도 이토록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이 같은 거대함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시선을 별로 사로잡지 않았던 머리라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곳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신작가는 예리하게 접근하여 포착했다. 이러한 탐구를 통해 신작가는 자신의 주제가 매우 강렬한 것임을 상기시켜준다.

신선주_Dr. Kroah_컬러인화_90×100inch_2002
신선주_Grid Pattern Installation_컬러인화_각 30×30inch

우리의 머리칼이 오래 전부터 정체성의 팔레트로 인식되어옴에 따라, 여러 집단들은 표시 스타일, 즉 패턴을 만들어냈다. 현대 미국 흑인들이 머리칼을 꼬고 땋는 스타일은 1800년대에 도망친 노예들을 인도하기 위한 표시 및 패턴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에 대한 의식, 즉 개인주의적 의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머리칼의 부재인 것 같다. 군대에서 신병들이 머리를 미는 관습이나 승려들이 개인적 표현을 일체 삼가고자 했던 삭발, 또는 역사적으로 전쟁 시 나치나 이와 비슷한 집단이 적군의 인간성을 말살하기 위해 단행했던 삭발 등을 떠올려 볼 때, 머리를 민다는 것은 개개인 및 그 정체성을 나타내고 개인의 유일감을 결정하는 많은 것들을 밀어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여기 나온 것은 전부 머리로 채워진, 대부분은 머리칼에 관한 수 십장의 사진이요, 이미지이다. 그래서 신선주 작가의 사진을 보면, 아이러니한 경험을 갖게 된다. 즉 이 사진들은 진실을 밝히는 사진의 (무)능력함에 대해 나타내는 것만큼이나 외양에 대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신작가가 찍은 인물들은 우리의 시선과 가정, 우리 나름대로 갖고 있는 주관적 예측에 무방비 상태로 열려있다.

신선주_Jacob_컬러인화_30×60inch_2002
신선주_Grace_컬러인화_8×8inch_2003

우리는 이들이 누구며, 어떻게 생겼고,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으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상상하게 된다. 우리는 이들의 키가 작은지 큰지, 말랐는지 뚱뚱한지,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나이가 어린지 들었는지 결정한다. 하지만 신작가가 찍은 각 인물의 이름은 우리가 알 수 없다. 간혹 사진을 보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어쩌다 알아보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이들의 정체성, 즉 이들이 누구인지는 사실상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Ethan, Nicole, Jasmine, Colin, Grace 및 기타 인물에 관하여,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우리가 알게 된 것들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편견이다. 동시에 신작가는 우리를 유혹하고 조소하는 듯 하다. 그녀는 우리를 유인한 후 면전에서 문을 꽝 닫아 버리고 있다. 안 그런가? 그녀의 사진 이미지들은 통합적으로 보거나 하나의 집합체로 볼 때, 어떤 선언 공동체, 즉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지만 잘 알려진 하나의 배에 함께 타고 있으므로, 각자 다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같은 차원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하나의 성명서인 것이다.

신선주_Sarah_컬러인화_8×8inch_2003
신선주_전시관경

나이가 든 백인 남성 Conner는 뉴 에이지 라스터파리안(Rastafarian)인 Jasmine 옆에 앉아 있다. Jasmine은 Emma의 땋은, 전형적인 젊은 머릿결 위에서 쉬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Bailey의 불타는 듯한 머리에서 발견되는 젊음의 고뇌 오른 쪽에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저런 가정이 맞는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으나, Conner, Jasmine, Emma, Bailey 및 기타 인물들은 현재 한 집단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 있다. 신선주의 사진 이미지들은 Emmett Gowin나 David Maisel 같은 작가들의 현대 토포그래피 탐구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우리의 책무 및 세상에 대한 우리 생활 관계가 지닌 다양한 양상을 확인함으로써, 또 그리하여 하늘에서 우리가 자신의 소유감을 투사할 대지를 반영함으로써 세상과의 친밀함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반면, 신작가는 우리에게 가장 개인적이고 우리와 가장 밀접한 '잔디풀밭'에 주목하여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 풀밭을 통해 신작가는 다양한 세계 및 우리의 욕망이 지닌 모습을 하나의 통합된 개체의 일부로서, 또 동시에 따로 떨어진 개별체로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오늘날 주목을 받고 있는 신작가의 추상성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진실한 의미에서 편견, 선입관을 버리도록 하고 있으며, 우리의 시선이 머릿결의 사각거림과 출렁임, 인간의 머리칼이라는 무성하게 우거진 덤불과 건조하고 메마른 단면을 타고 이동하도록 해 준다. ■ 아리엘 샨버그

Vol.20050831a | 신선주 사진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