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화(戱畵)화된 회화(繪畵)

임춘희展 / IMCHUNHEE / 林春熙 / painting   2005_0830 ▶ 2005_0911

임춘희_바보스러운 머리들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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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5_0830_화요일_06:00pm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82.(0)2.725.9520 www.brainfactory.org

세상이 어찌되었건 회화가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다시금 임춘희의 화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임춘희가 꺼낸 이번 전시의 제목은 '희화화된 회화'였다. 잠시 당혹스러웠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단순한 말장난 같지는 않은 전시의 제목은 나태했던 형상회화에 관한 애증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 임춘희의 회화는 그리 밝지만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뭔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무척 서글퍼 보이기도 하는 이유도 모른 채 세상사의 한쪽 구석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들이다. 그 일상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인간들의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 태양의 각도 또는 시계바늘의 쳇바퀴에 맞춰 변해가는 사람들과 그 무리들 속에서 거리두기를 하고 덩그마니 놓여진 개인이라는 나약한 존재. 분명 사회의 최소 단위로서 움직이고 있지만 사회가 복잡하고 거대해질수록 미미해 보이는 개인이라는 존재는 임춘희의 화폭에서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요상하고 해괴망측한 소문들을 조잘거리고 있다.

임춘희_고독_종이에 유채_21×21cm_2004
임춘희_의문의 인물_캔버스에 유채_90×90cm_2004

의심스럽고 이상한 세상 ● 그려진 것들의 면면을 보자면 21×21cm의 작은 유화 「고독」에서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어딘가로부터 떨어져 나와 다시 그곳을 응시하는 장면이 있다. 여인이 딛고 있는 칙칙한 땅과 대비되는 눈부신 하늘 그리고 시커먼 융기들이 그녀의 순탄치 않은 역정을 암시케 한다. 그리고 땅에 거칠게 그어진 붉은 머리카락의 기다란 흔적은 그녀의 커다란 눈과 함께 은밀해 보이는 과거를 지칭하고 있다. ● 90×90cm 캔버스에 그려진「의문의 인물」에서는 3명의 부유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벌거벗은 여인과 주변의 인물들. 다들 무슨 생각인지 머리에는 가발처럼 나름의 커다란 상징을 덮어쓰고 있다. 어디에선가 날아와서 옹색하게 화폭에 끼어든 가면을 쓴 인물은 서로에게 갑자기 어색한 긴장감을 유도한다. ● 99.5×129.5cm의 「이상한 소문」에서는 메마른 대지에서 솟아난 가변크기의 남자가 커다란 말풍선을 품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말풍선에 갇혀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멀리보이는 수상한 물체와 꾸질꾸질한 하늘에서 그리 좋지 않은 관계들이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 148×215cm의 커다란 유화작품 「세상을 안다」는 무너져 내리는 붉은 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첩되어 칠해진 물감들 사이로 벽이 완강하게 버티던 시절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무겁고 둔탁한 벽을 헐렁한 외투삼아 걸치고 있는 커다란 인물이 두팔을 벌리고 있다. 아직도 붉은 대지에는 낮지만 벽에 의해 구축된 영역들이 엄연히 존재하며 벽의 곳곳에선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있다. 그 구멍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며 붉은 대지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상념에 잠겨있다.

임춘희_이상한 소문_캔버스에 유채_129.5×99.5cm_2004~2005
임춘희_세상을 안다_종이에 유채_148×215cm_2005

임춘희의 수고로움 ● 형상회화를 접하면서 내레이션을 경계해야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다시금 친절한 그림읽기를 주절주절 대는 실수를 또 범하고 말았다. 이는 임춘희가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진 까닭이다. 그 함정은 바로 '희화화된 회화'라고 하는 전시제목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눈앞에 보이는 일상의 욕심에 찌들어 넉넉한 사유의 시간을 좀체 갖기 힘든 요사이의 각박한 삶을 탓해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저러나 임춘희가 던진 '희화화된 회화'라는 그물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임춘희의 회화가 희화화된 것인지 희화화된 삶의 얘기들을 임춘희의 회화로 보여주고 있는지는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도상으로 보아 임춘희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다소 거친 표현적 드로잉이거나 원색의 색면으로 테두리를 나누는 가벼운 삽화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배경들은 두텁게 중첩되어 칠해지거나 자유롭지만 기하학적 패턴들이 잔존하는 무대와 같은 공간이다. 이럴 경우 주인공이 되는 것은 당연히 인물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상황이 줄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희화화된 회화'라고 했을 때 임춘희의 회화가 희화화되었음은 분명하다. 임춘희의 회화라는 것이 회화 속 이야기에 가려졌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임춘희의 회화를 형식의 가벼움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녀가 감당했던 화폭 앞에서의 수고로움이 만만치 않다. ● 물성을 중시하는 추상회화와 못지않게 두텁게 혼색되어 칠해지는 바탕과 밀도 있게 중첩되어 오톨도톨하게 일어나는 붓자국들. 분명 회화만의 형식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일정의 완결성을 임춘희는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해 회화의 내용과 형식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화가의 욕심이 어렵지 않게 읽혀진다는 것이다.

임춘희_남자_종이에 과슈와 색종이_40×30cm_2004
임춘희_내안의 나_캔버스에 유채_100×130cm_2001~2005

희화(戱畵)화된 회화(繪畵) ● 그렇다면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희화화된 회화'이다. 좀더 적합하게 말하자면 회화와 인간사유의 효용성의 관계에 대한 의심이다. 희화(戱畵)화되었다는 말은 익살맞거나 우스꽝스럽다는 것으로 내용과 형식의 불균형을 꾀하거나 엉뚱한 상황으로 이끌 때 쓰인다. 그리고 때로는 해학과 풍자처럼 불합리한 것을 과장하거나 왜곡시켜 빗대거나 비판할 때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회화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 중의 하나로 엄연한 회화의 한 장르인 희화(戱畵)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임춘희의 회화작품들은 부조리한 인간의 삶을 희화(戱畵)하고 있다. 형식으로는 희화(戱畵)라는 회화의 한 장르를 취하고 있으며 내용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상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관계들을 희화시켜 보여주려 한 것이다. 회화가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그려낼 수 있다는 확신과 개별 창작자로서 자신의 생각들을 회화라는 '내용담지체적 형식'으로 보여주겠다는 임춘희 욕심이 결국에는 '희화(戱畵)화된 회화(繪畵)'를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 최금수

Vol.20050831c | 임춘희展 / IMCHUNHEE / 林春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