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조화

배효남展 / BAEHYONAM / 裵孝男 / sculpture   2005_0831 ▶ 2005_0906

배효남_제3의선택(조화)_합성수지_가변크기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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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5_0831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이분법의 구조화와 공존의 세계 ● 사물과 인간, 구조체와 인체, 자연과 문명. 배효남의 작업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가득 찬 이항대립의 세계이다. 그는 인간을 다루되 그 인간이 위치해 있는 문명사적인 갈등과 화해의 국면을 다룬다. 또한 그는 인체를 다루되 인체 자체를 독자적인 조형적 요소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체를 둘러싼 구조체와의 결합 방식을 통해서 인체의 미학을 맥락화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분법적인 대립을 근간으로 그 대립을 둘러싼 제3의 시각들을 공존의 메시지아래에 포섭하고 있다. 배효남의 작품 세계는 따라서 이분법적인 대립물의 구조적인 결합을 통해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변증법의 세계이다. 배효남은 지난 10여년간 '인체와 구조체의 결합'이라는 조형적 구성방법을 기본으로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온 작가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그는 '잃어버린 신화', '정적', '구도자' 등의 초기작을 통해서 형상조소작가로서의 탄탄한 조형성을 선보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1995년에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한 '성연(星淵)의 세월'이다. '붉은 벽돌로 우주와 윤회를 상징하는 원을 만들고 그 앞에 고뇌하는 인간의 형상을 시멘트로 빚은' 이 작품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배효남의 조형적 특성을 규정 짖는 모티프이다.

배효남_제3의선택(조화)_합성수지_가변크기_2005
배효남_제3의선택(조화)_합성수지_가변크기_2005

초기 대표작인 이 작품은 원기둥 위에 접시모양의 반원형의 좌대를 올리고 그 위에 웅크리고 있는 인물상을 배치한 뒤 벽돌로 만든 원을 마치 불상 뒤의 광배처럼 배치하여 둠으로써 인체와 구조체의 결합이라는 배효남의 전형성을 만들어냈다. 20대 후반에 만든 이 작품 속에 그는 시멘트와 적벽돌의 만남을 통해 삶과 예술을 향해 꿈틀거렸던 진한 청춘과 노동의 향기를 남겨두었다. 당시 이 작품은 벽돌을 작품 소재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환기했는데, 간간이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그에게 있어 벽돌은 하나의 선택된 재료였다. 그 벽돌 하나하나는 인물상을 뒷받침하는 광배의 조형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재료선택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관심거리는 시멘트였다. 원이나 구체 이외에도 기하학적인 구조체 이외에도 문창살이나 장승과 같은 전통의 이미지들을 끌어들이면서 신화와 구도자 등의 서사적인 주제를 다루어온 그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정서적 유출', 혹은 '정서적 원류 등의 연작들은 구상 인체를 원과 반원, 사각형, 원뿔 등의 다양한 구조체들과 결합하고 있다. 그 결합은 필연적으로 인체 작업의 독보적인 드러남보다는 구조체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하나의 구조적 통일체로서의 드러남에 가깝다. 배효남의 인체와 구조체 결합 방식은 '천자락' 연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천의 주름들은 웅크린 인체를 감싸 안은 채 공간을 파고들어 하나의 구조물로 자리를 잡는다.

배효남_문명으로의 유영_합성수지, 오브제_가변크기_2005
배효남_문명으로의 유영 부분

인체와 구조체의 결합은 근작에서도 작업 전반의 근본적인 방법론을 이루고 있다. 문명과 자연의 이항대립적 요소를 양자간의 극적인 대면 형식으로 구조화한 일련의 연작들 또한 이전의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체와 구조물, 혹은 인체 속에 각인된 이미지 등의 짜임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문명과 자연을 이원적 요소로 파악하고 인체와 구조체의 이원적 요소로 작업을 풀어나가는 방법은 지난 10년간의 작업 속에서 쌓아온 배효남의 전형적인 구도이다. 크고 작은 규모의 흙작업을 폴리코트, 브론즈, 알루미늄 등으로 떠낸 그의 작업들은 하나 하나의 독자적인 구조로 기능하기보다는 전시장 전체를 통해서 유니크한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하나의 구조물로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좌대 위의 단일한 오브제보다는 벽이나 바닥 혹은 전청에 직접 맞닿아있는 설치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단순한 입체작업이 아니라 입체설치작업을 지향하고 있다. ● 배효남의 자연과 문명에 관한 극적인 이원구조는 낙관과 비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다. 그는 동일한 형태 속에 자연과 문명의 이미지를 교차해서 새겨 넣음으로써 명쾌하게 떨어지는 양자의 구도를 강조하고 있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애매하게 뒤섞여 있는 판에서 이처럼 딱부러지게 이항대립구도를 작품 속에 담아내는 작가도 드물다. 대체로 자연과 문명을 이야기하면 양자를 상호 원만하게 조우해야할 것으로 상정하고 그 이미지들을 섞어 놓기 마련이다. 그런데 배효남은 그러한 양자의 만남에 대한 일체의 긍정이나 부정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는 바가 자연과 문명의 화해일 것이라는 혹은 화해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말 그대로 위험한 상상이다. 배효남의 공존은 자연과 문명의 화해를 나열해놓는 '바른생활 사나이'의 토톨로지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화해를 강변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뻔한 일을 굳이 조소라는 견고한 물질성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계몽할 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뻔한 정답을 제시하는 예술에 대해 탁월한 상상력을 가졌다고 느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배효남의 이분법이 문제시 되는 것은 그가 자연과 문명의 대립에 관한 낙관과 비극적 해석을 동시에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배효남_회기를 꿈꾸며_합성수지_가변크기_2005
배효남_자연으로의 유영_부조 합성수지_¢200cm_2005

최근작에서 배효남은 인체와 결합한 구조체들, 즉 구체와 반구, 원판 등의 구조물 표면에 문명과 자연을 대리하는 오브제들을 찍어 넣고 있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는 자연과 문명과 인간의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 몸에 담겨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과 문명은 양자택일의 가치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은색과 금색으로 색을 입힌 두 인체와 구조체는 형상과 색채, 배치 등에 있어서 완벽한 이항대립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전시의 중심축을 이룬 거대한 인체와 원의 만남은 자연과 문명의 만남을 주선하려는 배효남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얼굴과 한쪽 팔을 생략한 거대한 몸통은 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그 인체가 대면하고 있는 원의 가운데가 뚫린 원판에는 각각 문명과 자연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 각인되어있다. 그 오브제들은 매끈한 원의 표면층이 마치 각질 벗겨지듯이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내부에 새겨져있다. 그는 이 형상들을 실제의 오브제를 캐스팅해냄으로써 간접적인 방식으로 작품 속에 오브제를 담아냈다. 가운데가 뚫린 원판 두 개는 서로 겹쳐져 있는데, 관람객은 그 원판 가운데의 커다란 구멍 앞에 서서 팔을 뻗고 손을 편 거대한 인체를 바라보도록 짜여있다. ● 나뭇잎과 깃털 같은 자연의 형상을 각인해 놓은 인체이거나 기계부품을 찍어 넣은 인체이거나 간에 팔다리가 없는 부분적인 신체 이미지는 이미 이전의 작품에서 등장한 인간의 온전한 형상이 가지고 있는 실체로서의 인간이라기보다는 자연과 문명이라는 대결구도 속에 놓여진 인간의 소외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분절된 신체인 것이다. 이 경우에 부품 그 자체와 부품의 이미지를 새겨 넣은 작품 사이의 경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조소작가의 손은 여전히 유용한가? 배효남은 전시장 바닥에 부품 그 자체를 깔아 놓음으로써 이렇게 묻고 있다. 그의 이러한 물음은 관람객에게로 이어진다. 작가의 배치 방법에 이끌린 관객은 작가가 만들지 않은 부품 오브제들과 작가가 만들어낸 부품 이미지들 사이를 오가면서 실재와 기표 사이의 착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배효남의 문명과 자연에 관한 일루전 게임은 모종의 전환 국면을 맞이하는데, 그것은 실재하는 것과 예술적으로 표현된 기표들 사이에 서있는 예술의 포스트모던한 전략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배효남_90살의 춘몽_합성수지_210×20×57cm_1998
배효남_삶의 이야기_대리석_60×20×38cm_1999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는 형상으로서의 근육질의 남성의 몸은 그 표피 속에 자연과 문명의 이미지들을 새겨 넣는 하나의 창으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몸 그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이미지 자체가 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배효남에게 있어서 인체를 다루는 이러한 방식은 인체와 구조체의 결합이라는 방법론적인 근간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가 인체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구체의 내부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형상의 웅크린 인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원판에 웅크린 인간의 모습을 새겨넣고 주변에 문명과 자연의 이미지를 새겨 넣은 일련의 부조작업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그의 부조들은 오브제를 찍어 넣은 것과 형상을 새겨 넣은 것으로 나눠서 볼 수 있는데, 부조의 특성상 평면 위에 형상을 새겨넣듯이 파 들어가는 방법을 채택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얇은 판 위에서이지만 그 위에 형상을 덧붙여 나간 것으로 파악해도 무방할 것이다. 찍어넣은 오브제들과 빚거나 새겨넣은 이미지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 작품 안에 공존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배효남의 자연과 문명의 이원적 양상에 대한 파악은 점차 보다 직접적인 대립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 다른 대작은 부품으로 만든 좌대에 의지해 허공에 떠있는 것 같은 몸통 아래에 기계부품들을 배열해 놓고 있다. 타원형으로 늘어놓은 부품들은 인간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하나의 실체로서 보다 직접적으로 문명과 자연의 대결구도 속에 놓인 인간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기계부품들을 용접해서 이어붙인 작업들은 인체를 떠받치는 좌대로서 기능하면서 동시에 용접작업 그 자체로서 독특한 조형적 관심을 상기시킨다. 나열된 사물들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 이미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변화는 작은 변화인 듯하지만 배효남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초기작에서 근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들을 직접 만든 것들, 그러니까 조형 작업들을 통해서 만들어낸 것들로 채웠다. 사물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되 사물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그가 10년 전에 사용했던 벽돌은 광배의 원형을 이루는 하나의 조형기호로서 작용했다. 다시 말해서 벽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벽돌이 원이라고 하는 조형에 기여하는 시각적 요소가 중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기계부품을 나열한 것은 사물의 이미지를 보여주던 것에서 사물 그 자체를 보여준 것 정도의 변화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배효남 작업 자체의 변화, 그러니까 조형작업과 설치작업을 병행하는 작가로서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김준기

Vol.20050831d | 배효남展 / BAEHYONAM / 裵孝男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