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 공간-미시적 공간

배수관 조각展   2005_0907 ▶︎ 2005_0919

배수관_CONTEXT Ⅰ_스텐리스 스틸_50×40×4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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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_0907 ▶︎ 2005_0913 초대일시_2005_0907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2005_0914 ▶︎ 2005_0919 초대일시_2005_0914_수요일_06:00pm

수원시미술전시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409-2번지 제2전시실 Tel. 031_228_3647 www.suwonartgallery.com

사이트(site)의 특정성을 위한 컨셉추얼(conceptual) 조각 - 배수관의 환경인식과 공간, 그리고 조각 프로젝트 ● 배수관은 2002년 안성 너리굴 문화마을의 어느 산봉우리에 「재인식된 공간과 실존적 자아」라는 작품을 영구 설치한다. 8×10×2.5m(h)로 설치된 이 작품은 오랫동안 환경 · 공간 디자인 영역에서 교량과 모뉴멘트 조형물 제작에 참여해 온 작가의 환경조각론을 잘 대변한다. 이는 권영걸이 지적한 공간의 특성 세 가지 지향점과 비교해서 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중심과 장소이며, 두 번째는 방향과 통로, 세 번째는 구역과 영역이다. 특히 그는 인간이 공간에 관하여 유의하는 것은 실존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인간의 '공간의식'이 사물의 체험에 의해 단계적으로 형성된다고 볼 때, 실존적 공간이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배수관이 작품의 제목을 통해 말하고 있는 '재인식된 공간과 실존적 자아'는 권영걸이 말하는 그것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즉, 배수관의 작품은 일종의 '실존적 공간'의 재맥락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세 가지 지향점을 부연하면, 첫 번째의 중심과 장소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이때 장소는 물리적 공간과 주체간의 상호작용의 결과 주체에 의해 인식되고 질서가 부여된 내향적 공간으로 체험되는 상징적 · 심리적 공간이다. 두 번째 방향과 통로는, 모든 장소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방향성에 의해 공간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또한 방향과 통로는 장소라는 이름의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을 '선(線)'의 개념으로 연결하여 구조화하는 것으로 공간간의 관계성 형성에 기초가 된다고 한다. 세 번째 구역과 영역이다. 사람들의 모든 행태(behavior)자체가 영역이며, 이러한 영역도 공간의 일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활동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는 장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공간이란 어떤 형태로든 작용하여 넓어지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배수관의 「재인식된 공간과 실존적 자아」를 보면, 봉우리에 8×10m라는 면적의 ALC블록을 바닥 면으로 깔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특정한 활동을 유도하는 장소로 확정된다. 어느 누구든 자연 상태 일 때의 봉우리와 그 봉우리에 특정 공간을 확보한 블록의 상황을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넓이의 '중심성'이다. 이 위에 올라선 어느 주체든 이 물리적 공간이 만들어 내는 목적성에 의해 행동되어 진다. 그럼으로 이 장소는 실존적 공간의 기본형태가 되는 셈이다. 작품의 한쪽 귀퉁이에 똑 떨어진 계단(3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계단도 ALC블록으로 쌓아 놓았다. 그리고 이 계단은 밖을 향해 높아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장소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작가는 일부러 특정 방향을 향해 계단을 설치해 두었다. 방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방향과 통로의 개념에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적 공간이나 방향과 방향간의 경계는 '통로'로 규정된다는 것은 이때 적절한 표현방식이 된다. 즉, 배수관은 계단 위에서 먼 풍경을 바라보는 관자에게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는 두 개의 기둥을 별도로 설치했기 때문이다. 모종의 시선 통로일 텐데, 조금은 강압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배수관_CONTEXT Ⅱ_스텐리스 스틸_50×40×5cm_2005

작가는 이 특정한 영역이 만들어 내는 혹은 유도해 내는 인간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간이 어떤 형태로든 넓어지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역설은 배수관의 작품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사유 체계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화마을 산봉우리에 설치되었을 때 현실공간으로 안착하여 '인간의 삶이 배어 있는'공간으로 작동하는 것은 환경조각의 새로운 면모일 터이다. 그가 컨셉추얼 조각으로 전시 공간에 설치할 이번 작품들은 2002년작 「재인식된 공간...」에서 좀 더 미니멀해졌고, 공간적으로는 부감에 의한 '선'의 대지적 흐름을 기호화하는 매우 옵티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각적 일루전의 착시라 하기엔 과장된 느낌이 있지만, 면적의 특정한 중심에 자리 잡은 오브제로부터 물결처럼 파장해 가는 '확장선'은 분명 대지의 껍질이 형성해 내는 일루전에 다름 아닐 것이다. 반면,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바 "선의 개념으로 연결하고 구조화하는 것으로 공간간의 관계성 형성에 기초"하는 장소의 방향성과 통로에 대한 부각이 아닐는지. 생태심리학은 '활동-공간'(activity-space)의 관계로서 행태장치(behavior setting)의 기초개념을 제공하는데, 로저바커가 제시한 이 개념은 특정한 시간, 공간에 있어서 반복되는 행동이 일어나는 사회적 · 물리적 모든 상황을 의미한다. 이때 행태장치는 '행태장면'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장치 즉 세팅은 연극의 무대 세트와 유사한 의미이며, 중요한 것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까지를 포함한 '상황'이란 점이다. 우리는 배수관의 컨셉추얼 조각에서 이러한 활동공간으로서 행태장치를 바로 일루전의 반복적 선들에서 찾을 수 있다. 동일한 선들의 '지그 재그식'반복이거나 외곽선의 '파동식'이 만들어 내는 '반복적 행동'양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러한 반복 세팅을 통해 어떤 '상황'을 만들어 내려는 것일까? 우리는 먼저 그의 전시장 조각들이 필자가 지칭하고 있는 것처럼 '컨셉추얼 조각'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짓는 조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꿈꾸는 거대한 환경조각 프로젝트의 꿈이다. 하나하나가 사이트의 특정성을 습합시켜 실재화 되려는 의지의 실현체인 셈이다. 그렇기에 이 조각들은 공간에 대한, 환경에 대한, 그리고 환경조각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최대한 결집시키고 있다. 그 사유는 「미시적 공간-거시적 공간」으로 불리는 이번 전시의 테제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지난 개인전에서 이경모가 지적한 것은 유효하게 작동했을지 모른다.

배수관_CONTEXT Ⅵ_스텐리스 스틸_50×30×56cm_2005

이경모는 "예술가로서의 배수관의 면모는 물론 가쁘게 호흡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개인적 고뇌와 관심사가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며 공간을 확보하는 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점차 비중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나 인간과 자연(환경)이라는 거시적 패러다임에 관한 작가의 시각과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풀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라며, 첫째 작가의 개인적 고뇌가 현실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며 공간을 확보할 것인가 묻고, 둘째 인간과 자연(환경)이라는 거시적 패러다임에 관한 작가의 시각을 화두로 놓는다. 배수관은 바로 그 지점에서 미시적 공간과 거시적 공간에 대한 사유로 확장해 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반복적 삶을 살아야 하는 반복의 일루전이야말로 미시적 공간의 핵심이며, 그러한 미시공간이 구축해서 형성해 내는 거대한 질서의 덩어리(setting)가 거시적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컨셉추얼 조각이 실재화 되지 않고, 컨셉에 머물렀을 때이다. 물론 스테인리스 상태의 이 조각들이 완결성을 획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재료적 속성까지 파악해가며 공을 들였다. 작품의 도면은 고대인들의 기호문양처럼 정교하고 섬세하다. 그럼에도 그의 공간들이 인간의 활동을 유발시키지 못하고, 또한 인간의 삶이 배어 있는 공간으로 생동시키지 못한 다면, 이 공간은 인간의 행동과는 무관한 하나의 '아이디어'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이것은 긴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개별 조각들에 맞는 장소성을 찾아 공간을 재해석하고 이 프로젝트를 실행시켜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조형물'논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한국적 현실의 환경조각을 기억한다면, 긴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환경조각을 세우고 담론을 구축해 나가는 것은 우리 조각계에 진정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터이다.

배수관_CONTEXT Ⅶ_스텐리스 스틸_30×50×15cm_2005

요약 ● 배수관은 「미시적 공간-거시적 공간」이란 이번 전시의 테제를 통해 환경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현장설치 프로젝트를 위한 이번 작품들은 그동안 논의되어 온 한국적 환경조각의 모순점을 재인식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우리는 먼저 그의 전시장 조각들이 필자가 지칭하고 있는 것처럼 '컨셉추얼 조각'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짓는 조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꿈꾸는 거대한 환경조각 프로젝트의 꿈이다. 하나하나가 사이트의 특정성을 습합시켜 실재화 되려는 의지의 실현체인 셈이다. 그렇기에 이 조각들은 공간에 대한, 환경에 대한, 그리고 환경조각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최대한 결집시키고 있다. ■ 김종길

Vol.20050907a | 배수관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