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 ? ]

한국화 동인 묵향展   2005_0903 ▶︎ 2005_0913

김연_ing .._천에 먹, 분채_130×160cm_2005

전시오픈_2005_0903_토요일

참여작가 강지만_구승희_김귀은_김연_김정헌_박현희 신우식_이해영_임채훈_장연경_전은아

롯데갤러리 안양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88-1번지 롯데백화점 7층 Tel. 031_463_2716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현대 사회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욕구들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욕구들이 순전히 외부로부터 나 자신에게 부여된 욕구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잠재적으로 있던'근본적 욕구'가 어떠한 상황을 맞아 구체적으로 발현된 것인지의 여부를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 가정에서 원하는 나의 모습,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욕구 등등. 우리는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쫓아가기에 바쁘다. 이렇게 끊임없이 욕구는 많아지는 반면에 이러한 욕구들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따른 욕구 불만이 생긴다. 따라서 결국엔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욕구 불만은 쌓여가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내가 바라는 ? 라는 주제의 ? 은 그것 그대로 ? 이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어느 것 하나 정의 내리기 힘든 카오스의 상태이다. 현재 우리의 가치관은 혼란스럽고,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이 사라진지 오래다. 즉, 지금 현재 내가 바라는 것이 미래에는 바라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네가 바라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바라는 것이 네가 바라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이 변해가듯, 우리의 가치관도 변하고 역사도 변해간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 가치를 갈망한다. 내가 바라는 ? 은 어쩌면 그런 절대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이 것은 현대 한국화의 흐름 속에서 고민하고 연구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진지한 모색과도 일치 할 수 있으며, 이번 기획으로 각자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 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또한 그 작품들을 통해 보여 지는 메시지가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갈망과 기호에 대하여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도 나름의 의의를 가져보고자 한다. 당신이 바라는 ? 은 무엇인가? ■ 한국화 동인 묵향

강지만_untitle_한지에 먹_130×130cm_2005

강지만 ● 내가 바라는 쉼-작업실 의자에 주저앉아 화면 안에 무수한 반복으로 형상을 엮어 갈 때, 들이 마시고 내뱉는 호흡과 붓질의 리듬이 같이하는 순간, 어느새 내안의 나는 무중력상태가 된다. 그러한 공간이 혹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구승희_影(영)_한지에 먹, 꼴라쥬_130×160cm_2005

구승희 ● 물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물은 삶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담고 있다. 물은 나에게 고통, 슬픔, 아픔까지 정화시켜 준다. 나에게 편안한 안식처다.

김귀은_사랑_광목천에 먹, 채색_149×78cm_2005

김귀은 ● 내가 바라는 사랑-사랑은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할 때는 제일 먼저 순수하고 원초적인 감정의 씨앗이 마음 밭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감정의 씨앗이 싹터서 태양과 비바람을 맞으며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그 후에는 몸과 마음과 생각이 하나가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긴다. 그 꽃과 열매를 보며 사람들은 행복해 하며,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이 싹튼다. 김연 ● "유난히 돋보이는 하얀 바탕위에 까만 먹으로 그을 때의 그 느낌, 숨 막힐 정도의 그 떨림에 나를 느끼고 선의 생명을 느낀다. " -작업 노트 중에서- 내가 바라는 (나) 존재-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대부분은 더 나은 나를 원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살아 온 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 나는 살아 온 날들의 감정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이라는 작은 공간을 이용하고 바로 이 공간 속에 선을 긋는 시간이 나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지워버리는 순간이다. 그 공간에 나의 속내를 표현한다. '아주 무심한 선을 그으면서도 나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그 행위를 반복한다. 선을 그으며 인간적인 감정과 나를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추구 한다'내가 바라는 난 나의 새로운 존재를, 그 전에 내가 아닌 좀더 나은 나를 바란다. 그림 속에서 나의 존재를 찾는다.

김정헌_현실속의 삶_패널에 먹_182×122cm_2005

김정헌 ● 현실속의 마음을 [ ? ] 속으로 생각한다면 다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의 형태로 삶을 함께 누리며 살고 싶다면 그 누가 얼마만큼 남아있을까? [ ? ]를 아쉬워 하지말자.

박현희_玄-내면_한지에 혼합재료, 먹_80×130cm_2005

박현희 ● 내가 바라는 숲-고요함.. 적막....숲속의 습한 공기 사이를 비집고 천천히 낙하한다. 살~~랑.. 탁 ! ..나는 그렇게 나뭇잎이 되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전율을 시작한다...숲을 통하여 나를 그려낸다. 마치 공기를 들이마시듯 숲과 나는 하나가 된다...내가 바라는 숲은 '있는 그대로'의 숲이다. 변화하고 소멸되고 다시 생성되어 존재하는 모습을 받아들이는....있는 그대로의 숲을 간절히 바라며, 그런 숲의 마음으로 나를 그린다.

신우식_untitled_한지, 혼합재료_265×45cm_2005

신우식 ● 내가 바라본 Fractal(Self-similarity)-어떠한 조형 요소의 반복적인 행위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 부분이든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조형원리 중 반복적인 특징으로 인해 화면의 통일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하나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성이란 프렉탈이 갖고 있는 조형 요소들 속에 어떤 조화나 일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그 요소들은 마치 서로가 함께 속해 있으며 그것들이 한 공간에 있도록 야기 시킨 단순한 우연이상의 시각적 연관이며, 어떠한 기본적인 법칙과 형태적 특징을 갖는다. 이는 내가 스스로 계획하고 조절하는 요소이며 선택한 구성요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때론 부자연스럽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선택된 요소들로부터 통일된 패턴을 만들고자하는 나의 의도를 더 반영한다.

이해영_무제_혼합재료_70×120cm_2005

이해영 ● 내가 바라는 드로잉-그린다는 의미의 드로잉은, 회화의 본질을 여는 것이며, 출발인 동시에 목표이다. 획의 반복과 집합, 또는 확산된 조형요소는 본질적인 생명력과 관념, 감정, 상상력 등을 표출한다. 이것을 가지고 나만의 조형 언어를 얻고자 나는 드로잉 한다.

임채훈_고향이야기_한지에 수묵담채_28×40cm_2005

임채훈 ● 우리들의 마음 속에"고향"이란 단어가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의 단어로 남아 있듯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고향의 풍경을 수묵과 담채를 이용해 수묵의 포근한 발묵의 깊이와 담채를 이용한 자연의 색채를 표현한다.

장연경_내가 바라는-경계선 장애_장지위에 먹, 분채_120호_2005

장연경 ●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일과 나의 관계 속에 뒤범벅이 된 하루가 지나가고 홀로 될 무렵에 낯 설지 않은 형상을 읽어내는 이유는 이미 지나가 버린 하루가 투사되고 있음이다. 지친 퇴근길에 밤거리를 디디며 거닐 때는 어느새 나의 그림자는 자라나서 타인들의 발목을 스치고 또 포옹하면서 또는 그들의 머리를 밟으며 지나간다. 표현이라는 것의 한계이상을 바라면서 표현이라는 범위 바깥에 현실 속에 서있다. 현실속의 삶과 작품 안에 삶의 표현들은 이미 경계가 모호해졌다. 삶과 예술의 경계 혹은 삶과 작가와의 관계 작가와 사람의 관계가 얽혀버린 세계, 경계선 장애인 그 세계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세계이다. 사유라는 세계 속에 머무는 나에게는 없는 세계, 공존인지 공유인지 모르는 세상......

전은아_바로 그 길_장지에 토분, 채색, 먹_70×140cm_2005

전은아 ● 내가 바라는 길-나의 그림은 아직 정해지지 않고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그건 바로 분명하게 자리 매김하지 못하고 정해지지 않은 현재의 내 모습과 같은지 모르겠다. 언제든지 나는 자유롭게 떠날 수 있지만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한 내 자아. 몸은 자유로워 보인 듯 둥둥 떠다니지만 결국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진공 상태 속의 내 모습. 그래서 나는 길을 그린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길에게 나의 길을 묻고 찾고 바란다.

Vol.20050907b | 한국화 동인 묵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