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찾기

김형기 회화展   2005_0910 ▶︎ 2005_0930

김형기_형상찾기-강아지 모양의 벌레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오일스틱_23×28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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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10_토요일_05:00pm

구올담 갤러리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185-1 구올담 치과병원 7층 갤러리 Tel. 032_528_6030 www.kooalldam.com

80년대 말 우리는 대학생과 시민이 하나가 되어 독재체제에 맞서 민주화의 물고를 열었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엘도라도의 세상이 도래할 것 같은 부픈 마음으로 열광하던 순간들... 그러한 사회는 열망만으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보낸 젊은 세대들에게 그 시간들의 열정은 앞으로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눈이 되었다.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을 건너고 몇 년이 흘러서야 첫 개인전을 여는 김형기의 일련의 작업 행위는 이러한 시대적인 의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졸업을 하고 93년과 94년에 '타입캡슐'과 '다사리'라는 신생 그룹을 만드는 데에 동참을 하고 활동하였다. 김기용, 백종옥, 송문갑, 한용권 등이 참여한 '다사리'와 고승욱, 김형석, 여승렬, 이기수, 남일, 김기용, 김기홍, 정혜승등이 참여한 '타임캡슐'은 그룹들의 취지에서 보듯이 극소수에 의해 우리 미술의 흐름이 여전히 주도되는 것에 강한 반발을 하며, 회원들의 작품에서 보듯이 다원화해가는 세계 문화의 유입 속에서 그 갈피를 잃은 듯한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다.

김형기_형상찾기-강아지 모양의 벌레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오일스틱_23×28cm_2005_부분
김형기_형상찾기-상상의 동물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오일스틱_23×28cm_2005
김형기_형상찾기-사랑_종이에 아크릴 채색, 오일파스텔_28×45cm_2005

현재 일어나는 일련의 모든 행위들을 그대로 간직하여 미래로 가져간다는 '타임캡슐'의 취지와 신라의 화백제도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운영된 회칙에서 보듯이 한명의 천재가 시대정신을 이끈다는 생각은 이들에게는 낡은 이념에 불과할 뿐이었다. 94년의 '다사리'의 첫 개인전인 '문명의 전환과 그 신화에의 열망-근쪾현대성 그 진정한 의미의 인식'과 95년의 타입캡슐의 '기우제'에서 보듯이 이들은 그 미술의 정신을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곳에서 그 기원을 두었다. ● 이미 대학 시절에 학술그룹인 이길터로(이한수, 길현수, 노재영, 최정은 외)에서 처음으로 '옴(Oum)'을 주제로 퍼포먼스(회원 전원 참여, 물구나무 그룹 찬조 출연)를 가진 바 있는 김형기의 회화 작업은 이러한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93~97년까지의 그의 작업과 94년 타임캡슐 'Terror'전의 자연을 파괴하는 물신(物神)과 싸우는 전사의 퍼포먼스 행위에서 보듯이 그는 미술의 정신을 태고 적의 이념을 간직한 원시미술과 신화에서 찾고자 하였다. 신화 속에 등장할법한 켄타우로스의 형상과 동물을 사냥하는 회화 속의 인물들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이 자유분방하고 마구 휘갈긴 듯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으나 필선(線)의 숙련된 유연함과 정제된 색채의 질감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이성(문명)을 넘어 원초적인 의식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의 갈망을 느낄 수 있다.

김형기_형상찾기-아홉동물들_캔버스에 혼합재료, 오일파스텔, 유채_2005
김형기_형상찾기-사랑,유희,기쁨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유채_23×28cm_2005
김형기_형상찾기-둥근 자연형상 동물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유채_23×28cm_2005

이들 그룹들이 해체되고 그는 97년까지 인천에 연고지를 둔 그룹 '인천미술인협의회'에도 활발히 참여하였지만, 생활은 그에게 잠시 창작의 열정을 주춤하게 했다. 2000년의 독립미술제에서 그는 설치 작업으로 다시 실험적인 작가들과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몇 년에 걸쳐 여러 기획전에 출품하고 영은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한 이 작품은 뼈대만 남은 나무의 형태를 형상화한 듯 하나 그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면 물구나무를 선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삶이 그를 내적으로 성숙시켰는가. 설치 형상물은 이전의 회화작업들의 연장선상으로 보이지만 자연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과의 유기적인 조화를 먹이사슬의 관계에서 주로 표현하고 있던 이전의 회화 작업들과는 달리 설치 형상물은 자연의 제 사물들이 인간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며, 인간은 자연의 제 사물과 다를 바 없다는 그의 생각을 나무의 형태를 띤 인간의 형상으로 내재화하였다. ● 하지만 자연의 제 사물들은 어째서 인간과 그 의식이 다른 것인가. 2004년 광주 비엔날레 클럽공연의 '자연장군(김형기)과 아이들'이라는 퍼포먼스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나무를 관찰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시각을 정반대로 향하게 한다. "나무는 평생 생물에게 맑고 푸른 공기를 제공해주고, 인간에게는 자신을 희생하여 쉼터인 벤치나 정자...를 제공하지만 결국에는 버림을 받아 길가에 나뒹군다. 하지만 버림받은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미와 여러 곤충의 보금자리가 되어 자신의 몸을 한줌의 재가 될 때까지 남김없이 희생한다."_작가 노트 ● 즉 그것은 나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인식이 자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의식의 고리를 막고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전시에서 우리의 인식을 넘어서는 하나의 매개로서 일종의 오토마티즘(자동기술법)을 이용하여 회화작업으로 구체화한다.

김형기_모래놀이,형상찾기-물소와 원숭이_모래, 혼합재료에 아크릴 채색, 오일스틱_23×28cm_2005
김형기_형상찾기-과연 어떤형상이 숨겨져 있을까요_종이에 아크릴 채색, 오일파스텔_28×45cm_2005
김형기_형상찾기-붉은 여우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유채_23×28cm_2005

작품에 사용된 기법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는 하얀 캔버스 위에 손이나 붓으로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잭슨 폴록이나 에른스트가 사용한 드리핑(흘리거나 붓든지 또는 튀겨서 제작하는 방법)과 유사한 방법(때로는 붓을 사용)으로 밑그림을 하고, 물감이 마른 후에 울룩불룩한 마티에르(요철)를 따라 오일스틱이나 오일 파스텔(드로잉을 할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이든)로 자연의 형상들을 잡아낸다. 그리고 때로는 아크릴이나 그 밖의 다른 물감을 이용한 밑그림위에 다시 밑그림을 할 수도 있는 데, 이 때에는 바위나 산맥의 효과를 내기 위해 캔버스 천을 구기고 그 위에 드리핑을 하기도 한다. ● 두 번째는 자신의 의도를 배제한 상태(무의식적)에서 모래에 라바를 섞어 마티에르를 내고 아크릴(때로는 먹과 함께)로 밑 작업을 한 후에 오일 파스텔이나 오일 스틱으로 울룩불룩한 마티에르를 따라 자연의 형상을 잡아낸다. '모래놀이,형상찾기-물소'와 같이 표현된 작품들은 주로 이 기법을 이용하여 그림에서 보듯이 작업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세 번째로 밑그림 작업 후에 위의 두 기법을 이용하여 형상을 잡아낸 후, 그 형상들을 라텍스로 칠하여 잘 보호한 후에 밑바탕을 물감으로 다시 덮어씌우고 다시 라텍스를 벗겨내며 형상을 찾아내는 것이다. 라텍스를 벗겨내는 과정은 그에게 마치 고고학자가 시간의 흐름에 의해 퇴적된 지층 밑을 파헤치며 그 안에 묻힌 화석들을 먼지를 털어가며 하나하나 발굴하는 심정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라텍스를 떼어낸 순간 형상과 바탕색과의 윤곽선은 다른 기법을 이용한 것보다 선명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형기_형상찾기-붉은 여우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유채_23×28cm_2005_부분
김형기_모래놀이,형상찾기-성자의 얼굴_캔버스에 모래, 혼합재료, 아크릴 채색_23×17cm_2005
김형기_형상찾기-그가 나를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시는도다_캔버스천에 혼합재료_144×134cm_2005

즉 위에서 사용한 그의 기법들은 초현실주의자인 에른스트가 사용한 무의식적인 효과를 존중하고 비합리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데에 이용한 데칼코마니와 같은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련의 회화작업에서의 오토마티즘적인 과정은 그에게 일상의 의식적인 행위를 벗어나 자연의 근원현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하나의 통로인 것이다. 제의적인 퍼포먼스 행위를 동반하는 위에서 언급한 밑 작업들은 일상의 의식들을 벗겨내는 정화작용이며, 형상들은 그 과정에서 포착한 흔적들을 더듬으며 드로잉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다. 형상들이 구체화되는 과정도 짧게는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한 달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행위도 일종의 제의의 과정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밑 작업 과정에서의 소재들과 드로잉의 소재들은 위에서 언급한 재료들 이외에도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의식의 여러 장치를 통과한 이번 전시의 작품은 어린아이가 그린 듯이 동경적인 세계를 꿈꾸는 90년대의 작품들과 유사한 듯이 보이지만 형상들은 뚜렷하고, 색채들은 이전보다 다양하게 사용되었음에도 서로 충돌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선들도 그가 지닌 심성을 닮은 듯이 유연함과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장면도 원시미술과 신화적인 세계를 상상케 하는 풍경들에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말, 뱀, 호랑이, 사슴, 소, 원숭이...)과 만화 속의 상상적인 동물들, 성경 속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그림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해 우리의 핏줄을 통해 전해지는 조화로운 내면의 자연을 찾아내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문명의 이기를 쫓아 자신을 잊고 자연과 유리되어 고립되어가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번 전시의 그림의 소재들은 그가 실험정신을 갖고 열정적으로 그 의식 세계를 탐험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 조관용

Vol.20050913b | 김형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