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ss

황호석 회화展   2005_0906 ▶︎ 2005_0927

황호석_pride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1×7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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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06_목요일_05:00pm

갤러리 드맹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2-17번지 Tel. 02_543_8485 http://www.demain.co.kr

황호석의 두 번째 개인전, 『드레스(dress)』 ●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너무 단순해도 안 된다(everything should be mad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 simpler)"고 했던 아인슈타인의 말을 예술에 적용시킨다면, 아마도 황호석의 작품에 가장 잘 부합할 것이다. 옷을 입는다는 뜻 말고도 상처를 보듬는다는 뜻을 지닌 '드레스(dress)'라는 타이틀에 포섭되는 모든 작품들은 몇 개 되지 않는 색채와 구성요소들로 보는 이를 압도해내는 불가사의한 매력을 지닌다. ● 각각 뒤틀린 소녀와 우리를 힘없이 바라보는 청년, 온갖 날짐승과 들짐승, 그리고 지배자를 상정하는 듯이 의관정제한 귀족들이 화면의 주를 이루며 등장한다. 그리고 화면에는 어김없이 병원이나 의학을 연상시키는 무서운 상징들이 오히려 테마에 짜임새를 더해준다. 더구나 단조로면서도 강렬한 채색 방법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시각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알 수 없는 매력의 원천을, 그러나 그림의 화면에서보다는 그 내용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황호석_죽으면 안돼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61×112cm_2005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2005
황호석_마법사의 힘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30×190cm_2005
황호석_pride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1×72cm_2005

우리는 서로 관계하며 살아간다. 그 관계란 가까이는 부모형제부터 동식물, 흙, 공기,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더욱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우주 너머의 그 무엇에게마저 펼쳐져 있다. 그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이 태어나며 소멸한다. 그 감정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 속에서 너와 내가 태어났고, 너와 나는 다시 만나고 해어지고 속이고 사랑하며 시기하고 억압하는가 하면 신을 찾기도 하고 희망 역시 갈구한다. 그러나 이 관계의 애초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불안한 현존재로서의 자기에게 불안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줄 무언가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 그 무언가를 어떤 이는 자본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권세라고 외치며, 또 어떤 이는 자기만족이라고 체념한다.

황호석_dress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5×50cm_2005
황호석_need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5×53cm_2005

황호석은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알 수 없는 이 관계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 묻는 예술가이다. 그리고 그가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이 관계의 본질은 착취함과 도움의 순환이다. 이제껏 관계의 물음에 대해 부단히 항해한 예술가는 부지기로 많다. 하지만 추상적인 물음에 그쳤고, 더구나 자기만의 의식세계에서 문을 닫은 채 많은 이의 이해를 도모시킨 예술가는 극히 드물었다. 이에 반해 황호석은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확고한 답변을 갖고 예술세계를 펼쳐낸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것은 바로 섭생(regimen)이다. 생명을 지탱해주며 또한 즐겁기까지 한 이 섭생은, 그러나 가장 커다란 욕망과 불의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에 생식(reproduction)이 있다. 이 생식은 사랑으로 승화되는 기적도 있지만, 비뚤어진 왜곡에 의해 상흔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매매마저 자행되는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다. 또 수면욕(desire to sleep)이 있다. 이 세가지는 우리가 모든 것에 관계를 맺어야 하는 원천적이고도 필연적인 이유가 된다. 이 즐겁기 그지없는 세가지는 없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예 없앨 수도, 충분히 채울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만일 채우려고 한다면, 얼기설기 얽혀있는 관계에서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한다.

황호석_need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1×91cm_2005
황호석_실언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53×45cm_2005
황호석_dress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41×32cm_2005
황호석_dress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41×32cm_2005

황호석은 '드레스(dress)'라는 의미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따뜻한 시각을 갖자고 제안한다. '드레스(dress)'는 '의복을 입는다'는 일차적 의미를 지닌다. 이 '의복'에 의해 우리의 지위의 고하가 결정된다. 그러면서도 '드레스(dress)'는 상처를 보듬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때 황호석은 근사한 의복을 갖춰 입은 귀족들 뒤에는 지쳐버린 군마(war horse)와 그 군마의 안장 위에서 사라져버린 수많은 병사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또한 황호석은 넋 잃은 청년을 우리 스스로 마치 고양이마냥 방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넋을 잃은 채 무기력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그 청년은 사실상 너와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의 편안한 잠자리도, 소녀의 사소한 치장도 이러한 관계의 희생이 따름을 황호석은 단 몇 가지 색깔과 형상만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황호석의 '드레스(dress)'가 우리에게 지시하는 바에 대해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구절이 있다. ● "무릇 잿더미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비탄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기름을, 그리고 짐 지어 버거운 영혼에게는 상찬의 의복을 주시고(이사야 61:3)" ■ 이진명

Vol.20050913c | 황호석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