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o-Garden

임지예 회화展   2005_0907 ▶︎ 2005_0920

임지예_Litho-Garden_혼합재료_130×16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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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07_수요일_06:00pm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55 gallery.munhwa.co.kr

[Litho-Garden]과 행복한 정원사의 산책 ● 작가 임지예의 작업은 일정한 질감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작업의 기본 매재가 수묵임을 감안할 때 대상이 되는 사물의 질감 표현은 일반적인 동양 회화의 그것과는 분명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수묵은 그 자체가 일정한 관념적 내용을 전제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독특한 재료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념성의 근저에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가시적인 색채를 넘어선 근원의 색, 태초의 색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즉 모든 가시적인 색채는 빛과 같은 조건에 따라 그 색이 변하는 것으로, 수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단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근본의 색으로 먹색을 상정하고 이를 통하여 자연의 오묘한 변화와 기운을 포착하고 표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매재를 이용한 조형을 통하여 특정한 사물의 독특한 질감을 표현의 기본 얼개로 삼음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바로 근자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수묵에 대한 재료적 이해가 반영된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라 할 것이다. 즉 수묵이 지니는 관념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표현 매재로서의 기능성에 의미를 두고, 이를 통하여 수묵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표정을 발현함으로써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조형적 화면을 구축해 보고자 함이 바로 그것이다.

임지예_Litho-Garden_혼합재료_162×130cm_2005
임지예_Litho-Garden_혼합재료_130×162cm_2005

작가는 작업의 화두를 '쾌'(快)에 두고 있다. '쾌'는 문자 그대로 즐겁고 기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 설정한 '쾌'의 개념을 "단순한 기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한 탐색으로도 해석될 수 있고, 아름다움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나아가 완성의 기쁨이나 공감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의미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표출하는 조형적 대상을 '자연'에 두고 "자연계의 온갖 아름다움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상태를 표현적인 시각으로 조형화하고자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쾌'는 일종의 정신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정신 상태를 자연에 대한 감상과 교감을 통해 발현해 보고자 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연물에 대한 감정이입, 혹은 의인화 과정을 의미한다. "화면에 표현된 돌은 살아있는 유기체는 아니지만 생명력이 귀결된 상태로 해석되며, 식물의 이미지는 자연의 온갖 아름다움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상태로 순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라는 해설은 바로 이러한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작가가 설정한 자연에 대한 경계에는 생물, 무생물과 같은 인간 중심의 구분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마저 모호한 일종의 천인합일의 가치관, 범신론적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지예_Litho-Garden_전시장 전경_2005
임지예_Litho-Garden_전시장 전경_2005
임지예_Litho-Garden_전시장 전경_2005
임지예_Litho-Garden_전시장 전경_2005

사실 작가가 설정하고 제기한 이른바 '쾌'의 개념은 다분히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을 통하여 표출하고자 할 때 종종 범하게 되는 우는 형상 자체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여 경직되고 상투적인 이해를 유발하거나, 혹은 모호한 관계 설정으로 그 내면을 관류하고 있는 의식의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경우 일정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작업에 이르고 있다. 초기의 작업은 수용성 안료의 특성을 적절히 발휘한 사실주의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작업이었다. 객관적인 자연물의 상태를 색채와 명암 등 서구적인 합리성을 바탕으로 조형화하였던 이 시기의 작업은 대상이 되는 사물과의 일정한 대립 관계가 감지되는 것이었다. 즉 사실적인 묘사와 관념적인 사유가 여전히 상호 독립적인 것으로 존재한 경우이다. 이후 작가의 작업은 점차 절제된 형상과 정돈된 이미지로 환원되면서 자연물에 대한 관념화를 구체적으로 시도하게 된다. 이른바 '쾌'의 개념은 이 시기에 점차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시기의 작업들은 비록 바위와 같은 자연물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이미 자연계의 그것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관념화된 상징물로 화면에 등장하였다. 둔중한 중량감과 흑백으로 처리된 정교한 질감의 표현은 자연물이라는 사실성, 서정성 등과 같은 일반적인 가치에서 벗어난 사변적인 형상이었다. 이로써 작가는 비로소 선 경험과 의식의 다양한 변화, 기억의 편린 같은 관념적인 내용들을 화면 속에 수용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 셈이다. 의 행복한 산책에 필수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 김상철

Vol.20050914b | 임지예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