鮮의 線

김선 회화展   2005_0921 ▶︎ 2005_0927

김선_무제_캔버스에 연필 드로잉, 아크릴채색_50×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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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21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선과 점, 그리기와 지우기, 끝없는 그림:김선의 회화, 그 인식론적 거리와 자취에 대하여 ● 김선의 작업은 선선하다.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아마 그에게는 그림 그리는 일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림과 자신의 관계를 성찰하는 자세가 있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종의 인식론적 거리라고 할까.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감지하고, 세계를 감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이란 오브제를 놓고 그 형상성과 씨름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선을 긋는 순간, 점을 놓는 순간, 그 선과 점이 전체 화면에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몸으로 느끼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왜 그리는가.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계를 사유하기 위해? 그림 그리는 일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느끼기 위해? 결국 이 모두를 공유하며, 다시 사유하는 방식의 인식론적 여정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선을 그리고, 점을 내려놓는 작업 자체가 몸이고, 지각이며, 사유방식인 것이다.

김선_무제_캔버스에 연필 드로잉, 아크릴채색_60×73cm
김선_무제_캔버스에 연필 드로잉, 아크릴채색_60×73cm

아주 오랜 만에 갖게 된 이번 개인전에서 김선은 선과 점을 말한다. 이전의 작업에 비하면 화면은 훨씬 미니멀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또 훨씬 고요하다. 텅 빈 여백이 더 깊은 내면의 세계를 잠재하고 있으며, 그 안에 특별한 색을 주지 않아 아주 정제된 느낌을 발한다. 그래서 훨씬 평온하다. 또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명료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훨씬 근원적이다. 점과 선, 그리고 화면의 공간, 그 구조가 김선이 맞닥뜨리는 회화의 틀이자 체계이다. 자신의 삶이 포괄하는 범위를 그는 이렇게 단순화시켰다. 그 단순함은 곧 화가가 삶을 살아가면서, 그 세월의 복잡함에 역비례하여 주어지는 깨달음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깨달음 속에 열의 의미가 담기는 것처럼, 그래서 복잡한 조형 언어를 지워가는 방식으로 단순성을 말하는, 그렇게 김선은 다시 회화와 만난다. 감당하기 어려운 열정을 잠재운 채, 선선하게, 이제 자신의 인생에 대해 그런 것처럼....

김선_무제_캔버스에 연필 드로잉, 아크릴채색_181×228cm
김선_무제_캔버스에 연필 드로잉, 아크릴채색_70×70cm

김선의 작업은 화면을 구획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먼저 선을 그린다. 선은 굵은 흑연으로, 혹은 가는 연필로 그려진다. 그 재료의 성격으로 인해 선은 충분히 자유롭게, 거침없이 그려질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선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놔두는 것과 같다. 선의 자유자재함, 혹은 자동기술적인 움직임과 그로 인한 무의식적인 흐름이 선의 몸과 마음을 드러내듯, 그래서 춤추는 모습처럼 비쳐지게 된다. 또는 순간의 시간을 담아낸 것처럼 그 자취는 길지 않다. 움직임이 빠르고 날렵해서 그림자처럼, 여운처럼, 잔영처럼 그 흔적만이 남는다. 혹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바람처럼, 그 숨결처럼, 짧고 명쾌하다.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릴 듯한 선을 통해 그는 무엇을 보는가. 시간을? 향기를? 소리를? 무의식의 흐름을? 혹은 자신을? 자신의 움직이는 손과 팔놀림과 동작이 만들어내는 몸의 원리를 보는 것일까. 그리고 선 사이로 투명한 느낌이 살아나는 아크릴로 찍어 내린 점들이 놓여진다. 선이 순간의 결과이고, 그래서 주어지는 시간의 개념이라면, 점은 지속의 의미이고, 그래서 점유된 장소 혹은 공간의 개념이다. 선은 빠른 몸놀림을 보이는 동적인 것이라면, 점은 묵직한 접점을 찾는 정적인 것이다. 선은 끝없는 출현과 사라짐의 동작이라면, 점은 고정된 공간이고, 그래서 정착의 개념이 된다. 그 둘은 한 화면에 공생하면서, 때로는 충돌하는 듯 엇비켜 가면서, 전체 화면을 리듬감 있게, 그리고 균형 있게 구도를 잡아가고 있다. 점들은 캔버스에 아크릴로 새겨지거나, 한지에 수채물감이나 먹으로 살며시 번져가는 방식으로 새겨진다. 그 모두가 선의 활동과 더불어 자연의 원리로 채워져 있다. 선과 점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주고받는 언어이자, 몸이며, 직관으로 드러난다. 직관으로 구성된 공간, 선과 점이 리듬을 따라 선선하고 넉넉한 호흡의 기운으로 그렇게 그려지는 것이다.

김선_무제_한지에 연필 드로잉, 채색_95×180cm
김선_무제_한지에 연필 드로잉, 채색_70×100cm

이처럼 선과 점으로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김선은 무엇을 찾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끝없는 그림'을 그려가는지도 모른다. 완결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여전히 진행되는 그림과 생각의 관계를 되묻고 답하고, 또 묻고 답하는 과정을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이 질문이라면, 그것은 결코 끝을 볼 수 없는 결론과도 같은 것이다. 오히려 화가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 화면과 자신이 분리되기도 하고, 또는 하나가 되기도 하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동일한 반복, 그래서 기계적이고도 무의미한 반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실존적 질문과도 같다. 마치 삶이 완결 없는 과정 그 자체라는 말처럼, 그의 그림은 완결을 목표하지 않는 과정으로 열린 끝없는 질문이다. 김선이 그래서 더욱 자연에 다가가듯이, 그리고 그의 세월이 생각의 번잡함을 지워가듯이, 그리기와 지우기의 반복이 그의 그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 박신의

Vol.20050922b | 김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