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날리다

정경희 회화展   2005_0921 ▶︎ 2005_0927

정경희_기억을 날리다_캔버스에 한지, 유채, 목탄, 연필_181.5×228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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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21_수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기억을 날리다 -between the memories and the stunning of it ● 플라톤은 우리의 의식을 동굴에 빗대어 설명한다. '국가 7권'의 도입부에서 등장하는 이 동굴의 비유에는 동굴에 묶여있는 죄수들이 등장하며, 어둠 속에서 죄수들은 어둠이 모든 것이며 참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누군가 횃불을 밝히면서 죄수들은 어둠이 참이 아니라, 그림자가 참다운 것이라 알게 된다. 급기야 한 죄수는 사슬을 끊고 햇빛을 처음 접하게 된다. 그 햇빛은 처음에는 눈을 멀게 하지만, 마침내 사물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이 동굴의 비유의 줄거리이다.

정경희_기억을 날리다_캔버스에 한지, 유채, 목탄, 연필_194×112cm_2005
정경희_기억을 날리다_캔버스에 한지, 유채, 목탄, 연필_194×112cm_2005

이 아름다운 비유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의 인물 스테판 데달루스(Stephen Dedalus)에 의해 단 여섯 단어로 멋들어지게 극화된다. "Horseness is the whatness of allhorse."바로 우리가 말(horse)에 대해 안다고 말했을 때, 그 앎이란 어떠한 말에 적용시켜도 물샐 틈 없이 보편적으로 들어맞아야 한다는 뜻이며,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이데아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마치 앞서 말한 죄수들 마냥 "하나의 그림에 붙들리게 마련이다(a picture held us captive.)"이 그림이란 외부세계의 그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림을 말한다. 즉 우리의 의식을 가리킨다. 세계를 인식시키고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며 타자와 소통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이 의식은, 그러나 애초에 커다란 문제점을 지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사람에 따라 천양지간의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여기서 의견차가 생기고 대립도 반목도 발생한다.

정경희_또 다른 상상_캔버스에 한지, 유채, 목탄, 연필_130×142cm_2005
정경희_what is this?_캔버스에 한지, 유채, 목탄, 연필_60.5×90.5cm_2004

정경희는 이데아에 해당하는 햇빛을 통찰하자고 제안하는 예술가는 물론 아니되, 적어도 우리 의식에 이러한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애쓰는 예술가이다. 하나의 산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어떤 이는 재산의 수단으로, 어떤 이는 다이어트의 방법으로, 또 어떤 이는 건강의 요건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어떻게 두 개의 정신이 하나의 사물을 알겠는가(how two minds can know one thing)"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때 정경희는 익숙한 대상을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경험으로 연출시킨다. 예컨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얼룩말이나 산양, 달팽이, 그리고 어린 아이는 너와 나를 비롯한 그 모두가 다 안다고 자부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앞서의 스테판 데달루스의 표현이나, 플라톤이 열망했던 햇빛을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경희는 각각 잠자리 날개로 나래 짓을 하는 달팽이며, 뒷모습을 보여주는 산양에, 어두컴컴한 무표정의 어린 아이를 보여준다. 그들은 전부 잠자리의 날개를 펼치며 우리가 모를 세상으로 유영이라도 할 듯 극적으로 긴장되어 있다. 우리는 정경희의 그림을 마주하며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가벼운 날개를 달았다고 해서 달팽이가 느림보라는 오명을 씻겠는가"와 같은 의아함에, "어두컴컴한 아이의 무표정이라니"라는 당황하며, "험준한 산맥을 등반할 산양이 아니라 뒷모습의 그것이라니"라는 낯선 풍경에, 우리는 그림의 표면에서 한층 깊은 세계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여행이란 몽환적인 날개가 짐짓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자들을 잠시나마 다른 세계로 날리는 그런 여행이다. 바로 우리의 의식과 기억과 편견에 아집을 기절시키는 여행이다.

정경희_느림보 상상_캔버스에 한지, 유채, 목탄, 연필_20×20cm_2005
정경희_느림보 상상_캔버스에 한지, 유채, 목탄, 연필_109×137cm_2004

정경희가 제안한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의식의 기절을 맛보게 되며, 급기야 하나 된 지점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아름다운 기절에서 깨어날 때는 그 누구라도 어김없이 익히 보고 들어서 안다고 생각하는 대상에게마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제 우리 모두가 "모든 말(horse)들의 특성"이나 "동굴의 햇빛"이 의미하는 바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경희의 그림은 결코 단순한 외부세계의 재현도, 초현실적인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철학적 우화이자, 우리로 하여금 단순한 사물이라도 따뜻한 시각으로 보듬게 만들고 마는 애정 어린 다그침이다. ■ 이진명

Vol.20050922c | 정경희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