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lastic surgery

전은숙 회화展   2005_0929 ▶︎ 2005_1005

전은숙_클럽싸브에서_캔버스에 유채_129.5×161.5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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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29_목요일_06:00pm

성균갤러리 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 53번지 성균관대학교 경영관 1층 Tel. 02_760_0114 www.skku.ac.kr

만약 당신의 욕망이 고상하고 세련된 형태를 띠고 있다면, 안됐지만 그것은 가짜이다. 필요에 따라 마음 편하게 꺼내 보일 수 있도록 기망한 욕망이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내장 깊숙이 숨겨둔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은 놀랄 만큼 속물적이고 천박하며 비계가 잔뜩 낀 고깃덩어리처럼 미끄덩거릴 것이다. 그것은 (오직 내가 나라는 하찮은 근거만으로) 자신이 더 아름답고, 더 특별하며, 더 주목받을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그렇게 나를 치장하여 실제의 내가 아닌 어느 지점으로 옮겨놓으려는 욕망에 주목해서, 전은숙의 최근 작업들은 자신과, 자신이 욕망하는 또 다른 자신 사이의 어느 지점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전은숙_노란테이블이있는커피집_캔버스에 유채_96.5×161.5cm_2005
전은숙_침대에서셀카_캔버스에 유채_31×31cm_2005

미끄러질 듯, 전은숙의 화면은 기름을 잔뜩 발라 비릿한 소녀의 입술처럼 번들거린다. 그 기름기는 바로 전은숙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나를 욕망한다는 것은 나를 나보다 잘난 나, 그래서 결국 내가 아닌 나로 만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작가본인이 이름 붙이듯 그것은 스스로에게 가하는 성형수술이며, 눈 뜬 채 꿈꾸는 행위,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자신이 실제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욕망은 스스로를 타자로 바꾼다. 전은숙은 그것의(자신이 타자로 전환되는 지점의) 시작을 폴라로이드, 스티커, 디지털카메라, 핸드폰카메라 같은 즉석사진에서 찾는다. 제목에서부터 그 시작점을 숨기지 않는 「누워서 한 컷」에서 피부가 뭉개지고 코와 입술의 윤곽이 구별되지 않을 만큼 희미해진 인물은 작가 자신이고, 또한 작가가 꿈꾸는(욕망하는) 전은숙이며, 동시에 자신의 표피를 마음껏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소비자본주의의 헛헛한 자신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분열적인 자아가 뻔뻔하게 드러나는 「나&나2」에서 어렴풋이 웃고 있는 것은 전은숙도 전은숙이 욕망하는 전은숙도 아니다. 무서워라, 거기서 웃는 것은 그저 욕망뿐이다.

전은숙_누워서 한컷_캔버스에 유채_97×193.5cm_2005
전은숙_눈뜨고 꿈꾸기_캔버스에 유채_145.5×89.4cm_2005

자신을 욕망하는 욕망, 사람들은 그 은밀하고 우스꽝스러운 욕구를 스티커사진이나 디지털 카메라, 핸드폰 카메라와 포토샵으로 간단히 충족시킨다. 즉석사진의 용도와 목적은 명백하다. 그것들은 오직 당신을 실제보다 더 하얗고 더 날씬하고 더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길거리 어디에나 널린 스티커 기계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와 핸드폰카메라들, 쉽게 다룰 수 있는 포토샵, 자신을 치장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무수히 많다. 그것들은 당신과 당신의 세계를 빠닥빠닥한 포장지로 뒤집어 덮어 버린다. 그러나,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은숙은 소비사회가 보여주는 욕망의 비진정성, 난잡한 공갈 반짝거림을 고발하거나 비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은숙은 삶과 삶의 깊이가 주는 울림을 거부하고 오직 표피만을 치장하는 욕망의 흉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욕망을 필요로 하고 그 욕망 속에서 위안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욕망하지만 그 욕망을 변명하거나 다시 욕망(왜곡)하지는 않는다.

전은숙_야시시커튼_캔버스에 유채_45×52.8cm_2005
전은숙_뽀샤시 풍경_캔버스에 유채_45×52.8cm_2005
전은숙_빤딱빤딱 금커튼_캔버스에 유채_72.3×60.5cm_2005

욕망에 중독되어, 욕망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면서, 다시 그 욕망을 의심하고 반성하는 전은숙의 태도는 위태위태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확실한 것은 전은숙의 작업을 디지털이미지의 무분별한 베낌에서 극복시키는 지점이 욕망의 가치판단을 배제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반성적인 사유를 유지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작가가 복잡한 욕망의 근원지를 즉석사진기 같이 비정신적인 물체에 전가하는 가난한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작가는 욕망이 유희가 되어 요동치는 과정「클럽 샤브에서」에 주목하고, 일상의 표피에만 적용되는 아름다움「야시시커튼, 도판4. 뽀샤시풍경, 도판5. 빤딱빤딱금커튼」을 관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삶에 대해 발언하고자하는 또 다른 욕망을 찾아다닌다. 풍선껌을 부풀리듯 팬시하게 꾸며놓았지만, 실상은 가장 어둡고 후미진 우리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작가의 무표정이 미덥다. 나는 그저 욕망의 결을 따라 동동 떠다니는 몽롱하고도 무시무시한 이 여행 중에 젊은 작가가 쉽게 지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민은주

Vol.20050926d | 전은숙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