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이환권 야외 조각展   2005_1001 ▶︎ 2005_1031

이환권_가연_섬유강화플라스틱_214×15.5×21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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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01_토요일_05:00pm

후원_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야외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399_1152 www.sejongpac.or.kr

이환권 - 좁아지는, 혹은 늘어나는 순간들 ● 조각은 중력을 내재적 속도(immanent velocity)로 바꾸는 예술이다. 조각의 목적이 중력을 극복하는데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극복은 단순히 조각에 많은 구멍을 내거나 운동의 환영을 재현해놓는 것만으로는 성취되지 않는다. 중력이 의미하는 물질로서의 기본적인 조건, 즉 응축된 에너지의 고정적 상태는 '조각적' 개입을 통해 다른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변형된 중력, 즉 내재적이고 다층적인 형태들로 전환하는 힘들이다. 물리학에서 에너지는 속도와 비례한다. 조각에 있어 중력은 내재적 에너지로 치환되며 속도는 이 에너지에 실체를 부여하는 관계항들 사이의 연결(correspondence)을 가로지른다.

이환권_강지_섬유강화플라스틱_224×19×17cm_2000
이환권_노숙자_섬유강화플라스틱_57.5×63×29cm_2005

이환권은 이 관계항들 가운데 우선 공간의 축 -주로 수직적인 축-에 간여한다. 작품들은 수직으로 길게 늘여진 3차원의 공간을 재현하고 있으며 이 공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 의해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일상적인 포즈 속에 고정되어 있는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처한 개별적 상황 속에서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이 포트레이트들에서는 심지어 먼 곳을 응시하는 이 조차 자신의 사적인 상념의 순간 안에 몰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베이컨이 묘사하는 투명한 장방형의 공간 - 가느다란 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육면체의 공간-은 이환권의 작품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수직으로 늘어난 공간, 갑자기 우리의 현실 속에 삽입된 변형된 시공간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이 취하는 자세는 응축된 절규 대신 모두가 스스로의 수직적 고립을 응시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수직적인 연장(extension)은 우선 불가능한 현실의 현현(顯現)에 대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몰고 온다. 그러나 더욱 뚜렷하게 경험되는 것은 이러한 수직적 연장이 일상적 공간 속에서 평면적인 환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환권의 조각은 자코메티의 그것처럼 수직으로 길게 늘여져 있지만, 후자의 작품들이 외부에서 안으로 깎아 들어간 폭력적 행위의 잔해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오히려 납작한 가상의 면 위에 맺혀있는 잔상처럼 보인다. 그것이 평면이 아니라는 것은 조각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관객의 시점에 따라 이미지도 따라서 회전하는 것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다. 평면적 환각은 조각의 재현적 범위가 극단적으로 좁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환권_대머리아저씨_섬유강화플라스틱_175×20×20cm_2005
이환권_뚱스_섬유강화플라스틱_150×300×32cm_2002

사물을 길게 늘이는,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극히 좁은 공간 속에 재현하는 이환권의 조각은,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TV에서 영화를 보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와이드스크린에서 촬영된 영화를 TV에서 방영할 때 시작과 끝 부분에서 원래의 화면 사이즈를 압축해서 보여주던 것이 그것이다. 모든 인물과 풍경들이 좁게 압축되어 있는 이 화면 속의 세계가 그에게 '다른' 잠재적 시공간의 암시를 촉발시켜 주었는지도 모른다. "인물이나 물체에서 볼 수 있는 압축된 공간이 아주 빠른 정신의 속도에서의 관찰자의 관측을 보여주는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라는 그의 언급을 보면 좁게 수직선들로 압축된 세계의 본령이 어디로 흐르는지 예감할 수 있다. 이환권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원근법적 변형(anamorphosis)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시 말해 좌표들의 동시적 연장만으로는 재현이 불충분한 시공간적 경험과 관련된다. 지각의 다양한 속도와 그것이 파생시키는 상대적 정지, 느림이야말로 그의 작품들이 지시하는 경험의 기본적 단위가 된다.

이환권_민형_섬유강화플라스틱_130×18×27cm_2000
이환권_소화전_섬유강화플라스틱_99.5×10×7cm 이환권_준석_섬유강화플라스틱_203×13×25cm

'순간적 지연'은 '순간'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조각의 지각을 파생시킨다. '순간'이 달라지는 것들의 기본적 단위로서 경험을 구축하는데 불가결한 점들을 만들어낸다면, '순간적 지연'은 모든 가능성들이 동시에 집적되는 빈 공간을 생산하기 위해 필연적 점들을 보류상태로 유지시킨다. 이환권의 조각은 아마도 이러한 양상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한다. 왜곡된 것과 정상적인 것은 사이에 알아볼 수 있는 공통점들을 공유하고 있지만 내재적 뒤틀림, 균열, 시간적 좁아짐, 평면화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다른 어떤 것의 등가물인 듯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급작스런 감속의 경험과 더불어 그것을 둘러싼 공간이 팽창과 지각 불가능한 것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겪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간단한 관계지만 강렬한 것을 생산한다. ● 리얼리즘 조각이 그 스스로를 변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것이 정당화하는 내재적 변화의 장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얼리즘 조각은 그것이 지니는 재현의 형식성으로 인해 가장 빨리 내재성의 면을 드러낼 수 있는 탁월함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환권의 조각이 단순히 리얼리즘의 여러 가지 요구들에 함몰되지 않고 정확한 배치의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의 조각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문제들의 높이는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노동과 집중과 반복과 발견이 좀 더 깊은 곳에서 그 높이를 정제해내기를 바란다. ■ 유진상

Vol.20051001a | 이환권 야외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