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한 주체 Unspecific Subject

책임기획_김주원   2005_0923 ▶︎ 2005_1004

곽윤주_Lost in Desire series_디지털 프린트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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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23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_곽윤주_박인혜_윤덕노_이지영_이현영_홍경택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chohungmuseum.co.kr

'불특정한 주체Unspecific Subject', 그 여섯 개의 시선 ●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는 그야말로 중심의 상실일 것이다. 그것은 근대 철학의 전제였던 단일하고 일관된 신념체계로서의 자율적인 '주체(subject)의 죽음'이라는 현대사회의 화두이기도 하다. 주체의 죽음은 확고한 규범으로 고정된 주체를 그것의 가변적인 위치들(places)로 대치하였으며, 특정 주체의 명료한 언어는 익명의 중얼거림(murmuring)으로 바뀌게 되었다. 「불특정한 주체」전은 이러한 중심으로서의 주체와 주체의 죽음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풍경에 관한 전시로서, 이에 대한 곽윤주·박인혜·윤덕노·이지영·이현영·홍경택 등 여섯 명의 작가들의 각기 다른 시선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 중심으로서의 주체에 대한 의문은, 완벽한 거울 이미지에 불완전한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영원한 소외의 조건으로서의 무의식의 차원을 주시했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에게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는데, 문화 사회학자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주체의 죽음의 문화적 징후로서 패스티쉬(pastiche)와 분열증을 주목했다.

곽윤주_Lost in Desire series_디지털 프린트_2004

'사진은 기억을 담는 거울'이라는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의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곽윤주(1977- )의 사진작업 「Lost in Desire」 시리즈는 현대인의 내적 기억의 거울로서 읽힌다. 영화 세트장 같은 환각적인 공간 속의 작가 자신, 혹은 등을 돌린 소녀는 깊게 패인 상처를 노출한 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허망한 공간을 응시한다. 그가 잃어버린 욕망 「Lost in Desire」은 놓쳐버린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꿈과 행동, 사랑과 증오, 부정과 변형의 실체를 갖지 않는 내적 기억의 변주이다. 결핍이자 동시에 생산이며 파괴이자 시도이다. 인간에게 욕망은 채우기 불가능한 구멍 난 물통, 즉 계속해서 채우는데도 여전히 비어 있는 물통이라 했던가. 이렇게 일관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코기토적 주체의 탈중심화가 진행되는 그의 작업은 일탈한 불연속적인 기표들에 대한 분열증의 냄새가 흘러나온다.

이지영_labyrinth_캔버스에 유채_90×90cm_2005

특정한 물체라기보다 물체성을 주목하는 이지영(1969- )은 표면적으로 미니멀리스트의 오브제와 일견 유사하다. 그러나 롤러로 물감을 밀어내는 몸을 매개로 한 '감각'의 반복 행위, 그로 인해 생겨난 텍스츄어와 얇은 두께의 레이어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이며 모호한 암시들을 교차시킴으로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경험되는 특정한 물체 그 자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사물의 껍질을 더듬는 익명의 시선 같지만 오히려 사물의 내부, 그 그물망을 꿰뚫어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유도한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물질과 정신, 객관과 주관이라는 상반된 것들이 만나는 양면적 또는 모호한 물체(equivocal object)가 되는 것이다.

박인혜_Flow_캔버스에 유채_가변크기_2005

자신의 그려놓은 추상화된 픙경(그림)을 절단하고 조립하여, 일상의 사물과 같은 '상자'를 제작하고 있는 박인혜(1968- )는 주체를 비워내는 방식으로서 복제가 용이한 사각형을 규칙적으로 배열한다. 단면으로 잘리거나 극도로 축소된 그의 풍경(그림)은 박인혜의 신체적 개입에 의해 재구성되고 탈자연화 된다. 결국 박인혜의 특정한 물체로서의 상자들은 자신의 몸 밖에 있지만 그의 신체적 껍질을 침투한 몸 안의 풍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홍경택_서재2_캔버스에 유채_220.7×181.5cm_2003
홍경택_해골1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1994

홍경택(1968- )은 주체가 비어있는 듯한 기표들의 반복을 목격할 수 있는 경우로서 '하나 뒤에 또 하나(one thing after another)'라는 유명한 도날드 저드의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자신이 유달리 집착하는 특정한 물체들인 캔·컵·필기구·음식물·책·해골 등을 깊이 없는 캔디칼라의 매끈한 플라스틱으로 미니어처화 하여 잔뜩 쌓아 놓고, 물체 본래의 속성을 빼앗은 채 자신의 잠재의식으로 불러들이는 것에서 비롯된다. 일종의 패스티쉬적 증후로 읽혀지는 그의 회화는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뮬라크럼의 세계에서 표류하고 반복을 거듭하는 사물들의 껍질을 벗겨 자신과의 소통을 꽤하는 일종의 제스추어이다.

이현영_인형의 집_천, 솜, 핀_가변크기_2005

아직은 이름 없는 인형, 그래서 주체가 되지 못한 700여개의 인형을 만들고 그들의 「인형의 집」을 지은 이현영(1965- )은 그간 일상의 자취와 단편들에 세심한 시선을 주어왔다. 섬뜩할 정도로 주술적 성격이 강하게 베어 있는 그의 유사 신체의 유사인간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머뭇거림으로 배회하게 되며 자신이 원하는 존재나 그 역할의 대용물, 대치물로서 선택하게 된다. 반복적인 인형 짓는 행위와 표정없는 동일한 모양의 물체들이라는 이중적 성격의 그의 작업은 주체의 혼돈과 분열증적 집착을 드러낸다.

윤덕노_날개-반지_정은 스테인리스 스틸 스프링_15.5×2.5×8cm

윤덕노(1973- )의 「날개-반지」는 몸에 착용되는 장신구이다. 그러나 장식으로서의 기능과 더불어 신체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오브제'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어느 누구의 특정한 물체인 '반지'이지만 섬세하고 연약한 관절과 날개를 가진 생명체로서의 두 얼굴을 지닌 「날개-반지」는 구속과 자유라는 낯섦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욕망의 상징이다. ■ 김주원

Vol.20051002b | 불특정한 주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