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한 드로잉

조정화 사진展-19세 이하 관람 불가   2005_1005 ▶︎ 2005_1011

조정화_drawing 04-11_컬러프린트_170×195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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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05_수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예진흥원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com

슬픈 하드코어 이미지들, 낙서들 ●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여럿 있겠지만 추려보면 음식, 물, 그리고 '화장실 가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화장실 없는 곳은 상상 할 수 없다. 그곳은 단순한 배설을 떠나서 공공장소에서 자신만의 여유나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는 일종의 해방구이기도하다. 제도와 특정 공간, 타자와의 불편하고 힘든 만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공간이자 모든 일탈과 몽상, 금기의 위반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그곳에서 사람들은 '전시'된 이미지와 낙서를 감상하고 제작행위에 가담하기도 한다.

조정화_drawing 04-01_컬러프린트_140×195cm_2004
조정화_drawing 04-03_컬러프린트_50×120cm_2004
조정화_drawing 04-07_컬러프린트_50×125cm_2004

문명은 인간 배설물의 처리 방식에 엄격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 다시 말해 화장실의 발전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니까 배설물을 통제 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배설물을 피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던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네 화장실 풍경도 우여곡절의 역사적 과정을 노정해왔다. 엉성한 나무와 커다란 독으로 이루어진 전통화장실과 오강에서 재래식 화장실과 수세식, 비데 등으로의 변화와 함께 그 화장실을 둘러싼 삶의 풍경 역시 많은 변화를 겪어왔을 것이다. 화장실은 준비하고 겨누고 쏜다는 의미에서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그곳은 또한 성기를 노출하고 실질적인 부분 나체 상태에 들어가는 공간이기에 프라이버시가 요구되면서도 한편으로 개인전용이 아닌 경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공공성이 공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감성이 가장 민감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다. 실제로 화장실 사용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라 후각(냄새), 청각(옆에서 나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촉각(좌변기의 느낌), 그리고 미각(양치와 가글)까지도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신경이 예민해지고 그만큼 차별 및 불평등의 문제가 첨예해지는 공간에 다름아니기도 하다. 그렇기에 공중 화장실에서는 좌변기에 앉기를 피하는 형편이라 적어도 공공건물에서는 재래식 변기가 선호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쭈그려 앉아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도 남이 엉덩이를 갖다 댄 곳에 앉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성기를 노출할 때 우선적으로 달려드는 상상력과 함께 지금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일을 잠시 외면하고 싶을 때, 바로 그 순간 낙서와 음화를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 문득 이는 지도 모르겠다.

조정화_drawing 04-62_컬러프린트_140×190cm_2004

조정화는 2년여의 시간동안 공중화장실을 찾아다니며 그 벽에 그려진 음화나 낙서들을 사진기로 촬영했다. 좀 별난 취향이란 생각도 들고 여자로서 온갖 화장실을 둘러보고 다녔을 일이 무척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우연히 발견한 화장실 낙서가 흥미로워서 이를 사진에 담아두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전시를 치룰 만큼 모였다. 조정화의 사진은 우리가 이미 오랜 세월동안 보았고 익숙하게 접했던 여러 낙서와 음화를 다시 보여준다. 지금까지 심심찮게 화장실에서 만났던 모든 장면이 죄다 수록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낙서 역시 시대에 따른 변화를 보이겠지만 불변한 것은, 여전한 포즈와 한결같은 문구를 지닌 음화들이다. 사람들은 혼자 무료하게 있을 때, 특히 완벽한 개인적 공간에 홀로 존재할 때 온갖 발칙한 상상력을 분출함과 동시에 이를 적극 시각화하는 것 같다. 우선적으로 성적 호기심과 억눌린 욕망이 그럴 것이다. 거칠고 쌘 문구를 지닌 낙서와 자신이 보았던 포르노그래피를 따라 그려 보이는 서툴고 조야한 솜씨들은 본능적인 이미지와 문장의 원초적 욕망을 천연덕스럽게 증거 한다. 더러 데생력이 있는 친구들도 눈에 띄고 스토리를 지닌 것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성기적 성에 맺혀진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것들이다. 사실 화장실마다 낙서와 음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88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치루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캠페인에 따라 최근 지어진 화장실의 인테리어는 낙서나 음화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조악한 이발소 그림이 작은 액자에 끼워져 변기 위마다 설치되어 있고 온갖 플라스틱 조화와 흘리지 말고 더럽히지 말라는 경구들이 줄을 이어 부착되어있다. 위생과 청결의 강조야 당연하지만 다소 지나칠 정도의 조잡한 치장과 표어들의 강박적 도배는 무척이나 기이하고 희화적인 풍경을 제공한다. 20세기 초 문명과 개화의 이름으로, 서양의학을 앞세워 재래식 화장실과 똥을 죄악시하던 장면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래서 작가는 낙서와 음화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오래되고 허름한 건물이나 학교 근처, 또는 독서실이 딸린 건물, 낡은 버스터미널 등의 화장실에 가야 건질만한 낙서가 있다. 젊은 층,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곳 주변에 비교적 많이 있다는 얘기다.

조정화_drawing 05-01_컬러프린트_170×175cm_2005

화장실이란 폐쇄된 공간에 성폭력에 가까운 교접행위가 잔뜩 그려져 있다. 누군가 일을 치루면서 그렸을 것이다. 벽에 그려진, 새겨진 이미지와 글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지닌 성에 대한 보편적인 욕망, 배설, 욕구를 만났다. 간혹 반정부구호나 장기이식 등과 관련된 것들도 만나지만 대부분 성에 대한 노골적인 용어들, 그리고 성행위 장면을 과장되게 그린 것들이다. 알다시피 성에 관해 공식적으로는 침묵함으로써 우리의 욕망을 왜곡시켰던 것이 과거의 방식이라면 성에 대해 수다스럽게 말함으로써 유리의 욕망을 일방화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현재의 지배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 화장실 낙서는 이전 같은 전성기에서 벗어나있다. 인터넷과 영상에서 너무 실감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접하는데 뭐가 아쉬워서 냄새나는 화장실에 들어와 낙서를 하고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자신의 성기를 덜렁 노출하고 있다보면(그래서 남자들이 대부분 낙서의 주범들이다)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게 결국 성이기게 그 여전한 흔적을 만나는 것이리라. ● 이 화장실 낙서나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시대적 변화상도 읽을 수 있고 정치적, 사회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연구대상도 기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호학적 접근도 불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조정화가 보여주는 음화와 낙서들은 그런 분석 이전에 우리시대 일반인들이 지닌(대부분 남성들) 이 간절하고 측은한, 충족되지 못한 성욕과 너무 많이 본 포르노그래피의 환상에 시달리는 측은하고 불쌍한 동물성에 대한 자조에 가까워 보인다. 이 낙서와 음화를 생산한 자들은 자신이 접한 온갖 포르노이미지를 떠올려 그려 보이는가 하면 그 이미지에 중독 되어 환영에 시달리는 자신의 환상과 욕망을 방출하고 있다. 급하게 그려지고 써 갈긴 글들은 성행위 자체를 자꾸 반복한다. 삽입과 배설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그림들은 제법 그럴듯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자발성에 기대 그려진 조악한 그림들이다.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묘사와 간단한 문장으로 충격을 전달하는 문구들은 오로지 낙서로만 표출될 것들이다. 대부분은 남자들이 한 낙서다. 남성 자신의 성기를 극대화해서 그려놓거나 발기된 모습들을 묘사한 것은 부풀어 오른 남근적 욕망의 극대를 보여준다.

조정화_drawing 비디오 설치_2004

이 이미지들은 관자의 말초신경 자극에 궁극적 관심이 있다. 직접적으로 말해보면 하드 코어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 성행위 자체에만 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곧바로 인터코스(삽입성교)로 들어가는 것은 명백한 남근 우월주의와 가부장제 사화에서 종족 번식을 위한 남성 중심의 성행위를 그대로 묘사(반영)하고 있으며 단도직입적 삽입성교에서 행위의 중심은 성기(남근)이며, 그것은 상호 교감의 차원이 아니라 일방적 시혜(남성)를 남성이 베푸는 것이고, 이때 여성의 역할은 오로지 지극히 수동적인 수혜(피해)자이 위치로 제한된다. 여기서 삽입성교는 애정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남성은 탁월한 능력(발기여부)를 가지고 있고, 성욕이 일었는지 아닌지를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는 그러한 식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화장실 낙서는 남성중심의 성행위를 과장되게 재현한다. 사실 모든 응시의 시선은 권력을 내포하고 있다. 화장실 낙서에서 보듯 여성의 대상화, 즉 여성이 보여 진다는 것은 결국 관음적인 남성 관자의 시선이다. 이를 보는 관자 역시 은밀하고 음란한 심리상태를 기초로 한 관음주의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화장실 낙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낙서와 음화는 관음주의나 성욕을 부추키기 보다는 그런 성적 배설의 욕구가 우리 사회나 일상에서 얼마나 억압되고 굴절되어 있는가, 그리고 성에 대한 과도한 망상과 보편적인 남근적 시각을 새삼 서늘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조정화가 보여주는 너무 음란하고 너무 직설적인 성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무구들이 역설적으로 내겐 너무 슬퍼 보인다. ■ 박영택

Vol.20051005a | 조정화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