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계보학

박영근 회화展   2005_1001 ▶︎ 2005_1014

박영근_The Burdened One_캔버스에 유채_60×117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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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05_수요일_05:00pm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30

박영근의 이미지 계보학 읽기 ● 박영근은 오랫동안 붓 대신 고속 전동공구를 사용해 작업해 왔다. 캔버스 위의 물감을 전동 그라인더나 샌더로 갈아 나갔고, 결과적으로 화면은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곡선더미로 가득하다. 하나하나의 선은 기계의 규칙성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엉겨 붙어 이뤄낸 전체 화면은 지독히 혼돈스럽고, 그 혼돈 속에 이미지가 뭉개지고 부풀어 오른 체 모습을 드러낸다. 일견 이 기계적인 곡선이 박영근의 화면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것을 즐기는 듯 때로는 반복적인 곡선을 이용해 유려한 이미지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독창적인 제작기법과 때로는 병적일 만큼 아름다운 곡선들을 헤집고 그가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중심과제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박영근_Weighing on the scale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05
박영근_Sea Voyage_압축스펀지보드에 유채_82×130cm_2005
박영근_The cock_캔버스에 유채, 디지털 프린트_227×171cm_2005

이번 전시에서 박영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초기 작업에는 기계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화면 효과에 매료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은 일상적 이미지를 이용한 개념의 창출에 열중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이미지의 기술적 재현에 앞서 낯선 눈에 의한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찰, 그리고 그것들의 초현실적 재조합을 수행하려 한다. 결국 그는 이미지의 계보에 대한 해체와 재정립을 새로운 당면 목표로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 박영근은 어떤 과학이나 합리의 언술에 의해 주입된 인식에 반대한 체 철저히 자신만의 실증적 체험으로 사물을 재조명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자화상 연작을 시작으로 사과, 유성기, 코끼리, 도토리, 기차, 투구, 달팽이 등등 예측 불허의 사물들을 제시하는데, 이들은 거창한 철학적 개념보다는 화가 자신의 일상적 체험에 의해 균등하게 선택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자신이 컬렉션한 이미지 세계에 탐닉하기 보다는 그를 변칙적으로 접목시켜 이미지와 현실 세계 간의 긴장관계를 새롭게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가 '반(反)계보학적' 자세로 평등하게 선별한 이미지는 일견 무질서하게 난무하는 듯하지만, 그것들은 짝을 이루면서 새로운 메시지를 파생시킨다(주_사족(蛇足)을 붙이자면 결국 그가 추구하는 '계보학'은 역사적인 기원과 그것의 수직적 계보를 찾는다는 전통적 의미의 계보학이 아니라, 중심과 상식을 흩트려 놓고 그것을 통해 사회의 권력관계를 재조망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반-계보학 또는 푸코(Michel Foucault)의 해체적 계보학을 연상 시킨다고 할 수 있다.). ● 무질서하게 동떨어져 있는 이미지들이 조합하여 파생시키는 의미의 생성과정. 바로 이 점을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3단 캔버스 「이 세상의 모든 뚱뚱한 것, 이 세상의 모든 사라질 것, 이 세상의 모든 마른 것」에서 압축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세례자 요한, 기린, 갈비뼈, 칼, 오이를 결합하여 '마른 것'을 대변하고, '살찐 것' 쪽에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위장, 호박, 돼지가 그려져 있다. 이 둘 사이에 멸종된 동물들의 화석들이 자리한다. 일차적으로 신체에 주어지는 사회적인 압력을 이미지로 등가시켜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지만, 양극단은 각각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징물이기도 해 그 대칭점은 보다 확산된다. 사실 세례자 요한과 빌렌도르프의 등장은 대단히 흥미로운 대비라고 할 수 있다. 두 캔버스는 결국 원시와 문명, 빈부, 남성과 여성, 결핍과 과다, 원시신앙과 기독교 등으로 갈리는 대칭적 메시지를 담으며, 결국 그 둘 사이에 놓인 멸종 생물의 화석은 역사적 축을 이용한 '죽음에 대한 환기'이자 이미지를 통한 극한적 대립에 대한 암묵적 경고로 읽히게 되는 수 있다.

박영근_Ring a sound_캔버스에 유채_100×190cm_2005
박영근_The Hare and the Tortoise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50×130cm_2005
박영근_The Weapon_캔버스에 유채_131.5×105.5cm_2005

한편 박영근은 이번 전시에서 소리와 시간과 관계된 이미지들도 집중적으로 채집했다. 이는 상당부분 그의 작업방식 때문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라인더의 굉음과 그것이 이뤄내는 긴장된 속도감이 그를 일상의 영역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속도와 시간이 현대 이미지의 본성이라는 점에서 호소력은 더 강하다. 물론 소리와 시간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그의 방식도 다시 한번 반(反)계보학적이다. 기구, 범선, 기차 사이로 달팽이나 토끼와 거북이가 등장하며 이미지들의 생뚱맞은 근원을 상상하게 한다. ● 난수표처럼 예측 불허로 제시되는 박영근의 이미지에는 그가 인터넷 환경에서 얻은 체험이 주효했다. 박영근은 이미지의 접수 과정에서 인터넷 매체를 적극 이용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체험한 이미지가 타인에게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검색을 시작했는데, 결국 이를 통해 이미지 마다 수천수만의 상이한 체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재인식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미지에 동반하는 수많은 댓글은 의미의 분열적 증식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과 하나가 아담과 이브의 창세기부터와 만유인력법칙의 뉴턴, 그리고 비자금 사과상자의 메타포로 변모하는 상황을 보고 적지 아니 당혹했노라고 말한다. ● 결국 박영근은 폭주하는 현대의 시각 이미지 속에서 낯선 눈에 의한 새로운 관찰을 주문하고 있다. 나아가 이미지의 궁극적인 힘은 '조합'에 있다고 주장한다. 화면 속 일렁이는 이미지들이 부딪쳐 새로운 의미를 파생하는 순간을 담은 박영근의 최근작은 이미지의 고전적 기원과 권력적 혈통관계를 거부하고 이미지 간의 평등세계를 구현하려는 그만의 '이미지 계보학'이다. ■ 양정무

Vol.20051006a | 박영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