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여성으로 살기

정수 회화展   2005_1004 ▶︎ 2005_1014

정수_나의 생일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90×160cm_2003

초대일시_2005_1004_화요일_06:00pm

경희갤러리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1번지 경희대학교 내 Tel. 011_9281_9650

나는 畵家이자 女性이고 市民이다 ● '계집애'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나는 남성지배(우월)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길들여져 왔으며, 그 질서에의 예속을 강요당해왔다. 남성지배사회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기 존재'와 '자기주장'을 억누르고, 무조건적으로 '공손한' 자세와 주변과 '조화로운' 태도를 주입시켜왔다. 여성은 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해나가는 존재라기보다는, 흔히 어느 집단이나 구성원의 보조적 존재, 혹은 어느 공간의 장식적 존재, 남성 본위의 성적 쾌락의 대상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오늘의 현실은 조선시대의 윤리관과 대여성관의 한 부분을 이어받는 한편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도 여전히 여성 억압이라는 토대 위에 우리의 문화가 형성돼왔음을 깨닫게 한다. '나'라는 주체는 '여성'으로서 이러한 구조 안에 불평등을 반복적으로 겪고 있으며, 여성이기 때문에 폄훼를 당하는 일도 일상 속에서 흔히 경험하게 된다.

정수_소녀와 고양이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50×70cm_2002
정수_우리 교회로 오세요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300×130.3cm_2005
정수_비둘기와 나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300×130.3cm_2005

TV 등 메스컴과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실제 현실의 치열한 삶과 동떨어진 채 '남성지배사회가 생산해낸 상품들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만끽하는 부드러운 여성상'만을 부각시키고 유통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여성들의 부드러움을 강조한 선전들은 TV나 그 밖의 메스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여성들은 그럴듯한 외국어로 이름 지어진 유흥가 입구에 서서 행복한 웃음으로 행인들을 유혹하는가 하면, 또한 '우리교회'를 선전하기 위해서 몸에 장식을 걸치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광고를 한다. 또 다른 자본 속으로 들어오라고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사회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조작된 '여성상'을 도처에서 만나고 있다. 여러 형태로 난립해 있는 유흥업소와 성을 매매하는 퇴폐업소, 심지어는 자본과 결탁한 교회 등 종교집단에서도 보고 있다.

정수_어머니의 자녀_디지털 프린트_91×130.4cm_2005
정수_가족사진 아래에서_종이에 유채_44×34cm_2003
정수_네가 참견할 일이 아냐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95.5×390cm_2005

오늘날 남한의 사회구조에서 발견되는 불합리성은 비단 성적 불평등만이 아니다. 이에 더해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새롭게 불거진 계급 불평등과 비정상적인 외교에서 빚어진 국가간의 외교 불평등,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된 환경의 파괴 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계집애'로 태어나 성장하고,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나'는 나름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시로 각성하고 있으며, 직접/간접으로 충격과 상처를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각성과 충격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윤리적 제반 여건에서 발생하며, 그러한 체험은 내 작업의 기본 토대이자 출발점이 되고 있다. 내 작업은 내가 바라본 이 세상의 모습이자, 내가 꿈꾸는 세상이고, 때로는 그 '현실'과 '꿈' 사이의 갈등을 표현한다. '나'는 이 세상이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이행해 가는데 나의 작업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한 화가로서 작품을 통해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열망과 동시에, 한 시민으로서 바람직한 사회를 형성해가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 작품은 이러한 내 삶의 자취와 희망을 담고 있다. ■ 정수

Vol.20051010b | 정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