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노이 다이어그램 - 진화공간

책임기획_황인   2005_1010 ▶︎ 2005_1020

김주현_복잡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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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10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주현_김진영_박상현_박종규_신성희_신한철_이형주_홍명섭_홍승혜_Scott Snibbe 참여공학자 김동욱_김덕수_김정민/원정인_류중현/이병훈/박노훈_조영송_조철형_Bahman Kalantari_Christopher Gold_Craig S. Kaplan_Dinesh Manocha_Janet Hansen_Jos Leys_Jose Andres Diaz Severiano_Kokichi Sugihara_Marina Gavrilova_Stefan Hiller_Vladimir Voloshin

기획_황인_김덕수_Sugihara_Kokichi

2005_1010 ▶︎ 2005_1020

아트파크 서울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Tel. 02_733_8500 www.iartpark.com

2005_1010 ▶︎ 2005_1013

Voronoi Diagram Research Center 서울 성동구 행당동 17한양대학교 17 Tel. 02_2220_0472 voronoi.hanyang.ac.kr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100년 '우크라이나'의 수학자 보르노이(Georgy Voronoi)에 의해 만들어졌다. 자연계의 현상과 공간의 구조를 설명해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다이어그램으로 프랙탈 이론, 카오스 이론 보다 훨씬 먼저 나왔으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들보다 휠씬 늦은 최근, 몇 년전 부터이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CAD, CAM 등의 파일 압축 혹은 마이크로 테크놀러지에 있어 분자구조의 수학적 연산 등에 응용될 뿐 아니라 이를 확장하면 프랙탈 이론처럼 가시적인 자연현상 및 비가시적인 사회현상을 설명해주는 도구로 진화할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또한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매우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미술과도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이용한 조형작업들은 미국 등지에서 최근 많이 행해지고 있으나 본격적인 공학자들의 심포지엄에 맞추어 예술가들과의 국제적인 학제간(學際間) 전시가 이루어지는 것은 국내외를 통털어 이번이 처음이다. 미술가들의 조각, 드로잉, 동영상 프로젝트 작업과 공학자들의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이용한 작품의 출력인화물, 동영상 등의 프로젝트 작업이 전시된다.

신성희_Lab/차원묶기
홍승혜_유기적 기하학
신한철_껍질

동양의 고전인 천자문의 시작에는 우주(宇宙)라는 단어가 맨먼저 나온다. 이때 우(宇)는 공간의 집을 말하고 주(宙)는 시간의 집을 뜻한다. 다시말해 이 우주는 공간과 시간의 축으로 짜여져 있다는 말이 된다. 공간과 시간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옷감의 씨줄(weft)과 날줄(warp)처럼 엮어져 있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그다음에 보면 우주(宇宙)는 홍황(洪荒)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공간은 너무 넓고 시간은 거칠다는 뜻이다. 너무 넓고 거칠면서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이를 연속적으로 인식가능한 것으로 붙잡아매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준의 제시와 압축의 과정이 필요하다. 기하학은 여기서 탄생한다. 그리고 유클리트와 데카르트는 이 방면의 천재들이었다.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미술가들은 그동안 무한한 공간을 유한한 것으로 포작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대상을 압축하여 화면 속에 잡아가둔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3차원을 2차원 공간에 옮기는 일이므로 압축과 더불어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최초로 회화를 발명했을 때 이미 기하학적인 사유의 과정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하학의 중요한 요소이며 동시에 미술의 유익한 도구이기도 한 점, 선, 평면 등은 자연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의적으로 만들어 낸 관념의 산물인 것이다. 미술에 있어 재현(再現)의 역사에는 항상 관념의 개입과 공간의 왜곡이 있어왔다. 그런데 이런 관념의 조작과 공간의 왜곡 과정을 추적하고 일반화하는 중에 대상의 본질이 훨씬 더 확연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반복되는 왜곡에는 어떤 근본적인 원리 같은 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원리를 찾아 공간의 본질을 끈질기게 규명하여 마침내 근대미술의 극적인 계기를 이끌어준 세잔느도 있다.

홍명섭_running railroad_캔버스에 라인테입_각 150×150cm_2004
박상현_texte tanzen
박종규_Layer of two dimension & three dimension_스크린에 실크_60×70cm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은 아주 간단한 기하학적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고대인들이 자신과 남의 땅 영역을 가르기 위해 경계선을 긋기 위해 했던 고심과 비슷하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금을 긋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양보와 조화, 그리고 균형을 찾는 방법이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속에는 있다. 이런 감각은 본능적으로 화면의 조화를 꾀하려는 미술가의 작업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번 전시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전시다. 그러나 사실은 이종집단간의(interpopulational) 전시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 실제로 공학과 미술은 그 결과물의 도출 과정과 방법론에 있어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표현과 구현, 작품과 제품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만이 존재할 분이다. 사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이 둘 사이에 장르간의 경계가 아직 모호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공학자와 미술가 사이에는 사유의 전개와 표현방식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수학이나 공학에 비해서 미술은 신체 및 재료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공간을 다루더라도 수학자가 비물질적인 관념을 기반으로 계통진화적인 전개와 발전을 보여 주고 있다면 미술가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신체와 재료를 개입시켜 개체진화적인 태도로 개인화시키며 이를 개성이라고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기하학은 원래 재료학을 배척한다. 관념이란 항상 재료의 반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가에게는 이 둘을 동시에 다루어야만 하는 운명 같은 것이 있다. 다소 무리가 다르지만 학제간의 전시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란 똑같은 키워드를 놓고도 수학자/공학자가 보는 입장과 미술가가 보는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스코트 스니베_보로노이 인터액션
Marina Gavrilova
류중현/이병훈/박노훈

여기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전시가 가능한 것은,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 공간의 본질을 설명해주는 훌륭한 도구라고 했을 때, 그 원리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 내부에 이미 깃들어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신성희(Shin, Sung-Hy)의 작업은 입체와 평면을 오간다. 그는 평면에서 입체를 향하기 위해 평면의 캔버스를 찢어서 실처럼 묶는 작업을 하는데 이때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그리드(Grid)인 육각형 공간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가 만든 벌집(honeycomb)에도 육면체는 나타나는데 놀랍게도 표면을 종이지도를 붙여 처리했다. 지도는 땅을 뜻하는데 실제로 땅의 균열과 안정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육각형의 그리드는 자주 나타나고 있다. 박종규(Park, Jong-Kyu) 역시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관계를 포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가 보다 진전된 형태로 그의 경우는 지지체(Support)는 표면(Surface)으로 진화하고 표면(Surface) 대신 입체가 얹힌 형국이 된다. 신한철(Shin, Han-Chul)의 작업에는 러시아의 목각인형 마트로시카(Matryoshka)처럼 하나의 큰 구체(球體) 안에 여러개의 작은 구체를 겹쳐 넣는 일인데 그 적절한 크기와 숫자를 결정하는 일은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쓰면 쉽게 해결될 문제이다. 홍승혜(Hong, Seung-Hye)는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 시리즈의 작업을 하는데 이는 관념으로 존재하는 기하학적인 구조를 자연계 속에 되돌려 놓고 이들이 번식하고 증식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단위구조의 반복과 연속성을 취하고 있다.

김동욱
김덕수
Stefan Hiller

김주현(Kim, Joohyun)의 경우 공간을 생명체처럼 진화시키는 작업이다. 카를 심즈(Karl Sims)의 싱킹 머신(Thinking Machine) 작업과 유사한 데가 있다. 심즈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공간을 설정해놓고 인공생명체를 진화시키는 것을 택하고 있다면 김주현은 정육면체의 그리드의 결합과 확장을 통해 공간을 증식/진화시키고 있다. 홍명섭(Hong, Myung-Seop)의 경우는 상식적인 공간에다 메타적인 개념을 불어넣어 공간의 변이를 꾀한다. 그의 작업은 Meta/Ana/Para-Morphose의 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취하고 있다. 박상현(Park, Sang-Hyun)은 보통 점(point)으로 표시되는 Voronoi Site 대신에 언어텍스트를 넣어 다른 언어와의 결합하거나 반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Voronoi Region을 다루고 있다. 이형주(Lee. Hyung-Joo/she)의 작업도 이와 유사하다. 그녀는 언어 텍스트를 쓴다는 점에선 박상현과 유사하나 박상현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작업을 한다면 이형주는 전시장 천정에서 늘어뜨린 구슬을 꿴 실 사이로 걸어가는 관객의 신체가 직접 그 경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진영(Kim, Jin-Yung)은 철이나 시멘트 등 밀도가 높은 재료를 써서 엄격한 기학학적 구조의 조각을 하는 작가이다. 컴퓨터 안에서 드로잉을 했을 때 조각작업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반복적인 구조를 이번에 보일 것이다. Scott Snibbe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의 툴(tool)을 이용하여 관객참여형 인터액티브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모션캡쳐(motion capture) 기법을 써서 관객의 몸을 하나의 voronoi site로 보고 여러명의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전시장 바닥의 voronoi region이 변하는 작업이다.

Christopher Gold
Bahman Kalantari
Craig S. Kaplan

우리에게 공간이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자연공간과 관념적인 공간을 적당히 블랜딩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100년전에 등장하였지만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이는 컴퓨터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이제까지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관념공간을 인간과는 다른 능력인 탁월한 반복적 작업능력을 지닌 컴퓨터가 발견하고 진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또다시 자연공간을 새롭고 정밀하게 이해하는데 응용되고 있다. 물질성이 희박한 컴퓨터 내부에서 진행되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과 컴퓨터의 내부와 외부를 드나들며 언제나 신체성과 물질성을 동반하기 마련인 작가들의 그것과는 사뭇 양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전시의 의의를 여기에 두고자 한다. ■ 황인

Vol.20051016a |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 진화공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