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up of yellow fish

현종광 회화展   2005_1014 ▶︎ 2005_1027

현종광_make up of yellow fish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 채색_50.8×40.64cm의 타원×4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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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14_금요일_06:00pm

space HaaM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7-2호 렉서스빌딩 3층 Tel. 02_3475_9126 www.lexusprime.com

沒我의 境地에서 完成한 『make up of yellow fish』시리즈_현종광의 근작전에 즈음하여 ● 1. 導入 ○ 현종광의 화풍의 출발점은 포스트모던 양식의 한가운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의 특징을 살펴보면 귀금속이나 장신구의 모티브를 화면에 부착한 뒤에 긋기와 바르기 등의 회화성이 강한 표현이 주류를 이루는데, 그것은 조광석이 설명한 것처럼 "가짜와 진짜의 논쟁" 혹은 "reality 와 false의 문제"를 심오하게 엮어내면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작가는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키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양식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어떤 형식으로 현상화할 것인지를 끈질기게 고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정형화된 미술사적인 방법론을 택하지 않고, 미지의 길을 택하여, 단순히 자신의 것으로 확인 될 수 없는 무엇으로 향하게 되는데, 실재로는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형식성과 이념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러던 차에 작가는 어설프게 강한 묘사보다는 끈질기고 집요한 표현의 방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며, 그리되 비표현에 근접하는 방식을 추구해 나가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구체적인 양식의 대명사로 보여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안을 비우고 새로운 도전의 자세로 나아가는 진로를 모색하는 진정한 보헤미안의 기질을 보여주려 하였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형상과 비형상 혹은 비표현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추구해 나아가는 기법이나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고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고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약간의 변화를 가세하여, 선묘가 가미된 펜화와 같은 날카로운 반복적 패턴을 작품의 주된 모티브로 삼기 시작하였다. 김종근의 그의 작품에 대하여 "물고기의 색깔도 분위기도 생동감 있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가 꼼꼼하게 그려내는 것도 오직 물고기의 비늘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마치 추상회화나 기하학의 유형에서 연상되듯 사실성을 배제한다."고 평한 바 있다. 이러한 방식은 화면을 70%이상 차지하게 되는 거대한 비늘을 끈질기게 그리는 것이라고 단순히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것을 조금 자세히 설명한다면 전체의 중심이 되는 면적을 무작위적으로 표현하는 단순기법을 통해 비구상의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기도 하다. ● 이처럼 작가는 한가지의 양식을 어떤 이유에서건 고집하거나 자신의 그것으로 소화시켜서 완성하고자 하는 야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지나친 생각일지는 모르나, 보다 거대한 완성을 꿈꾸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방황과 모색에 의해서 작가가 험한 사색의 통로로 선정한 것은 허상으로서의 물고기 비늘이었다. 『make up of yellow fish』시리즈에서의 그것은 거대하게 확대되어 나열형으로 그려지는 데, 그것이 그려진 전체적인 윤곽에 의하면, 실재로서의 물고기가 아니라 사유의 대상으로서의 물고기 혹은 인식을 넘어선 개념적인 물고기로 변해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 등장하는 전체는 실제적인 물고기의 배열자체가 아니라 동일한 반복형의 비늘로 확대되어 화면의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로 화해 있기 때문이다.

현종광_make up of yellow fish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 채색_50.8×40.64cm의 타원_2005

2. 패턴그리기와 沒我 ● 이러한 방식들은 하나의 단조로운 문양의 나열로 보일 수도 있으며, 물고기의 비늘과 같은 일정한 패턴형식으로 이루어져 회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보일 수도 있거니와 여성의 다리에서 일정한 부위를 약간 가리는 스타킹처럼 보일 수도 있고, 중동의 여인들이 사용하는 차도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되 자신을 비우는 방식은 몰아(沒我)의 경지로서 절제와 비움의 미학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작가는 단순히 어떤 일정한 마티에르가 조성된 화면을 구축하고, 그 위에 질료를 사용하여 특정한 회화공간이 되게 하며, 그 위에 날카로운 선묘를 긋는 행위를 지속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단조로운 선의 나열형식 혹은 긋기의 패러다임에 고착된 자아 비우기의 방식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패턴은 자신을 완전히 비우는 지점까지 나아가지만 그것이 단순히 자아를 비우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어떤 특정한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 시점에서 가급적 부담을 덜어버리고 작가가 도달하고자 한 그곳은 어디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매우 어렵다. 작가는 일견 완성되어버린 듯한 바탕을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완벽한 그리기나 드로잉은 그 자체로서 완성이며, 더 이상의 여백이 들어설 땅이 없기 때문이다. 현종광의 근작 『make up yellow of fish』시리즈는 단순한 그리기로서의 회화가 아니며, 복잡한 묘사하기의 회화도 아니다. 그것은 그리되 지우는 것이며, 다시 긋되 그린 것이 비운 것이 되는 미묘한 역설적 분위기가 있다.

현종광_make up of yellow fish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 채색_162×130cm_2005
현종광_make up of yellow fish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 채색_162×130cm_2005

3. 白描의 현대화 ● 금번의 개인전에 준비된 작품들은 일견 비경제의 논리로 점철된 회화와 펜화의 사이에 있으며, 철저히 그린 회화작품의 막다른 골목과도 같은 비장한 심리가 내재되기 시작할 무렵 제작되었다. 작품들 하나하나는 작가의 무작위적인 선묘로 이루어졌으나, 서구적인 드로잉이나 펜화의 표현에서 찾기 힘든 미묘한 심오함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전술한 바처럼 몰아의 경지에서 이룩되는 토톨로지의 방법을 한국의 전통적인 백묘(白描)와 절묘하게 잇대어 표현하는 방식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수백 년 전에 우리의 선조들이 단순한 선을 통해서 묘사행위를 했던 백묘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것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중시하였다. 금번의 작품들이 갖는 중심적인 사상이 자신을 비우는 것에 있다면, 백묘는 이러한 이념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양식에 가장 적절한 선행연구가 되고 있다.

현종광_make up of yellow fish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 채색_53×40.9cm_2005
현종광_make up of yellow fish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 채색_53×40.9cm_2005_부분

4. 세필 붓과 잉크 ● 작가가 주의 깊게 살피고 있는 바는, 세상의 다원적인 변화를 조금 무시하고서라도, 민족적인 정서에 포커스를 맞추어 자신이 처해있는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험로위에 자신을 세울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동기에서 부드럽고 섬세한 세필과 섬세한 펜에서 우러나오는 작은 분량의 잉크로서 전체화면을 그려 나아가는 것은 매우 고되며 동시에 한가하게 보일수도 있다. 나아가 우둔하거나 지나치게 우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섬세하게 그리는 길을 결코 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고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관조하는 구도자처럼 꾸벅꾸벅 나아가는 길을 택하였다. 기존화면의 색상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는 펜의 흔적은 무작위의 시간 죽이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시간을 아까와 하지 않는다. 그것은 화폭에 자신의 에너지를 서서히 옮겨 나아가는 전위(轉位) 혹은 이체(異體)이며, 탈아(脫我)의 상태에까지 몰고 가는 것이기도 하여, 대담함에 있어서는 마치 바위에 계란치기 혹은 마구잡이식 돌격행위 이상으로 볼 수도 있다. ● 현종광이 이룩한 현재의 회화는 지난 10여 년간 고심해온 여러 방식의 귀결점이 아니라, 차라리 미완(未完)의 대기(大器)와 같은 어떤 모색의 과정 혹은 중간지점에 서서 고뇌하는 방랑객의 마음에서 비롯된 상념의 갈래이기도 하며, "묘사를 넘어선 묘사" 혹은 "표현을 넘어선 비표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은 자신의 사유가 물질로 흔적화한 유형으로서, 다른 각도에서관찰해보면, 마치 자신의 양식에 대한 자책과 반성의 결과처럼 보인다. 이러한 여정이 완성체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작가가 보다 새로운 양식을 구축하기 위한 여정에 서 있으면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에 대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보다 출중한 양식을 개척하려는 자세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시각을 평소에 지니고 있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회화를 갈구하는 구도자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절제와 인내의 시각언어를 표출하고자하는 시도의 과정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_2005_10 ■ 박기웅

Vol.20051019b | 현종광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