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비밀

현정아展 / HYUNJUNGAH / 玄程雅 / printing.installation   2005_1021 ▶︎ 2005_1030

현정아_세포-생명_유리병설치_각 16×9×9cm_2005_부분

초대일시_2005_1021_금요일_06:00pm

스타일 큐브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121 2층 Tel. 02_323_4155

병 속에 담긴 시간의 아카이브 ● 초등학교 시절, 하나씩 하나씩 내용물을 담고 종류별로 이름표가 붙고 나란히 줄지어 벽장 속을 가득 메운 유리병들이 있던 실험실은 우리에게 경이로움과 환상의 공간이었다. 물고기, 딱정벌레, 토끼,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형체들 등이 들어있는 유리병들은 그때 그 모습으로 그렇게 그 안에 정지해 있었다. 수집, 보존, 분류를 통해 아카이브를 재현한 현정아의 전시 공간은 우리에게 실험실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가졌던 '과학자'의 꿈을 떠올리며 그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병에는 세포들,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 빛 바랜 사진, 누군가의 품에서 떨어진 장난감 등이 고유의 사연을 간직한 채 병 속에 시간과 함께 박제되어 있다. 그리고 시간이 쌓이듯 병들도 층을 이루며 수직구조체로 설치되어 있다. ● 이러한 구조가 유도하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코 끝 알싸한 냄새와 함께 떠오르는 어린 시절 실험실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복제'와 영화 '아일랜드'에서의 복제인간의 현실화, 상품화 등 이 시대의 화두로서 현실로 훌쩍 뛰어 넘어선다.

현정아_세포-생명_유리병설치_각 16×9×9cm_2005

판도라상자가 된 전시장 ● '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이라는 종교계의 경고처럼 현대과학은 건드려서도, 열고 들어다 보아서도 안 되는 부분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학 기술에 대한 인간의 열정과 새로운 목표를 향한 도전,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된 새로운 희망과 다른 한편의 실패는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은 동시에 켜켜이 수직으로 쌓아 올린 현정아의 작업이 갖는 구조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그는 차곡차곡 안정된 듯 하면서도 쓰러져 산산이 깨져 버릴 수도 있을 듯한 구조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인간이 이 시간에 처한 많은 사회적 표본들이 만드는 구조의 그 경이로움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개별 시간과 이야기들이 표본이 되어 봉해진 병들은 정사각형의 상자에 담겨지기도 한다. 내부를 볼 수 있는 상자의 한 부분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은 설치작업 앞에 선 관람자는 그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품 주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관찰한다.

현정아_세포_에칭, 석판, 유리병 6개_2003
현정아_세포_에칭, 애쿼틴트, 유리병 11개_2003
현정아_세포_에칭, 애쿼틴트_2003~2004

판도라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듯이 현대과학은 과거에 종교적, 사회적으로 금기시 했던 많은 영역의 뚜껑을 열어 보이고 있다. 판도라가 호기심의 대가로 치러야 했던 것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현재의 새로움을 손에 넣은 대신 인문학적 상상력, 낭만적인 상상, 환상에 대한 많은 부분을 놓아 버렸다. 아폴로가 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달나라의 옥토끼와 계수나무를 잃어 버렸다. 작가는 과학에 의해 너무나 독점화 되어 가는 이 시대의 삭막함을 그 도덕성의 문제를 경고한다. 작가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시장은 열어 보기 전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판도라 상자이다. 『판도라의 상자展』을 열고 있는 전시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관람객들은 이 시간 판도라가 된다.

현정아_생명&저장_나무상자, 유리병설치_각 20×20×20cm_2004
현정아_생명&저장_나무상자, 유리병설치_각 20×20×20cm_2004
현정아_생명&저장_나무상자, 유리병설치_각 20×20×20cm, 각 16×9×9cm_2005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 ● 판도라가 세상으로 모든 부정한 것들을 날려버리고 상자의 바닥에서 발견한 것은 희망이었다. 희망이 있기에 증오도, 분노도, 좌절까지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인 세포, 이는 작지만 생명의 시작이자 미래에 대한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 작가 현정아는 생명의 작은 단위인 세포를 병 속에 담아 희망이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그는 희망이라는 세포가 무한 복제하여 새로운 희망의 개체가 되기를, 이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을 복원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정확한 수치와 실험의 사실적 기록을 너머 우리의 삶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창조적 원천의 환상을 희망한다. 희망세포의 무한 복제를 말이다. 이를 대변하듯 그의 세포가 복수 생산성을 띄는 판화로 제작되어 벽면에 걸린다. 복제를 경고하기 위한 복제, 이는 우연일까? 아님 의도일까? 이 수수께끼의 게임에 당신을 초대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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