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유리이야기-인연-엇갈림

강희경 유리회화展   2005_1021 ▶︎ 2005_1027

강희경_엇갈림_유리에 샌딩_φ 3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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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21_금요일_05:30pm

도지호 축하 퍼포먼스_2005_1021_금요일_05:30pm

부천 문예전시관 경기 부천시 심곡2동 496번지 부천역사 지하상가 1층 Tel. 032_320_2393

다중 참여와 소통의 장(場)과 창(窓) ●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수정궁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앞으로 철과 유리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팩스튼(J. Paxton)의 선지적 기념비는 정확하게 적중하였다. 우리의 시대는 유리에 의한, 유리의 도시환경과 생활환경에 놓여 있다. 하지만 유리 회화는 우리 문화환경에서 그리 친숙한 장르가 아니다. 유리의 세계에 살면서도 유리를 조형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미술이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고 시도해 왔지만, 유리조형에 대해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진전이 없다. 우리 도시환경을 미적으로 꾸미기 위해 미술장식품을 설치해야 하는 법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건축환경과 현실에 부합하는 유리가 어찌 된 일인지 조형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 것이 의아할 뿐이다. 물론 거의 천년에 가까운 스테인드글래스 전통을 가진 유럽과 비교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불안정한 사회 환경과 질서를 감안할 때 보존성 면에서도 일말의 우려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유리가 우리 생활과 너무나 밀접한 현실, 그리고 그 어떤 재료와 비교하여도 견고하고 매력적인 재료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더 성장된 유리조형에 대한 기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리라.

강희경_사랑의 꽃_유리에 샌딩_30×30cm_2005
강희경_회포를 풀다_유리에 샌딩_φ 30cm_2005

유리작가 강희경이 부천시가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반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렇다고 작가가 유리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선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작가의 매체나 매재(媒材)는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니 말이다. 어떤 매체나 재료를 선택했든 그 조형 자체의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재료와 작가의 표현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는가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유형의 조형을 한 줄로 세워놓듯이 판단하고 등위를 결정할 수 있는 경우란 또한 없다. 어느 시대든 시대 특유의 미감과 감정구조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양식이라는 것이 그 결정체이다. 하지만 그 밑바닥을 면밀히 살펴보면, 재료와 같이 사소해 보이는 물리적 조건들이 큰 비중을 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 작가의 작품 내용들은 거의 화폭을 유리로 대신한 것이라 보면 정확할 것이다. 단 차이가 있다면 투명한 캔버스라는 점이다. 투명한 캔버스라 함은 빛과의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본질로 하는 조건이다. 바로 이 투명성(transparency)은 너무나 큰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투명성을 근간으로 한 작업은 우리 미술문화에 요구되는 새로운 코드에 대한 아주 신뢰할 만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중적인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평면의 경우 작품의 표현 자체에 대해 양방향으로의 소통과 참여가 가능하며, 우연한 참여자들이나 환경의 변화는 작품에 다양한 변수로 차입된다. 안과 밖의 구분을 교란시키는 해체주의적 습성을 넘어, 주체와 객체의 다중적 전도와 역할의 변환이 부드럽고 다양하게 경험될 수 있는 장이 바로 작가의 작품세계이다.

강희경_위로_유리에 샌딩_φ 30cm_2005
강희경_이별_유리에 샌딩_φ 3cm_2005

투명한 소재를 샌딩으로 마모시켜 점진적 불투명성이 곧 그림이 되게 하는 제작 방식은 작가의 담백한 그림 이미지들과도 잘 어울린다. 작가는 소박한 일상의 모습들을 낙서하듯 자연스럽게, 그려나가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기발한 해학과 풍자가 엿보인다. 작가의 해학은 유리회화의 우연적 배경들이 작품으로 들어와 예기치 않은 이미지와 색을 연출함으로써 발생하는 문맥과 어울려 더 번득인다. 더러 안료를 직접 유리에 채색하거나 색유리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가급적 색을 절제하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화면의 어디엔가 투명한 부분을 통해 배경의 풍경 자체가 곧 그림의 것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우연적 환경을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적절한 투명성의 조절, 즉 농담의 조절은 상당히 섬세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본래 한국화를 전공하였던 작가의 이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작가는 이밖에도 조명을 이용한 작품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비교적 작지만 다채로운 색상과 이미지들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여기서도 예의 기발한 작가의 감각이 번득인다. 특히 우리 생활 공간 안에서 기능성을 결합한 회화로도 각광을 받을 만하다.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래스의 방식이나 안료에 의한 직접적인 페인팅 등 다양한 화면들과, 아울러 여러 피스들이 공간을 해석하고 연출하는 방식의 작업에서 폭넓은 작가의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강희경_엇갈림_유리에 샌딩_90×110cm_2005
강희경_조명박스위에 유리_설치장면_2005

오늘날 작가가 작품으로 탈바꿈시켜야 할 대상은 무한대로 널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도시의 건물들이 안과 밖의 경계를 없애고자 하여 가능한 한 유리창을 넓히고 있다. 지금까지 작가는 독일에서부터 많은 작업을 해 왔지만 그것은 작가가 꿈꾸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한 워밍업에 불과하다. 우리 주위에도 유리로 외장이 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건축 설계 당시부터 전체의 유리를 캔버스 삼아 도상을 완성하여 건물 전체가 안과 밖의 자유로운 내러티브의 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작가의 작품은 여기 저기 궁색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이동성보다 건축물의 창으로 고정될 때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고정이 곧 이동이기에 말이다. 실제로 작가의 작품들을 볼 때 그런 경험을 상상해내고, 아울러 거대한 작품의 창의 꿈을 꾸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번 부천시 올해의 작가상이 작가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발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이재언

Vol.20051024b | 강희경 유리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