寂寥- 물위의 無爲

지요상 수묵展   2005_1018 ▶︎ 2005_1031 / 일요일 휴관

지요상_寂寥- 물위의 無爲_화선지에 수묵_213×150cm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Vol.20040224a | 지요상 수묵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1018_화요일_05: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291 www.forumnewgate.co.kr

지요상의 적요(寂寥) 연작에 대해 ● 색채 없이 칠흑같이 어두운 먹색의 화면, 배경 없이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잠긴 얼굴, 치밀하게 파들어 간 세부묘사, 그리고 물에 비춰져 상하로 이분된 형상, 이것이 최근 지요상 적요(寂寥) 연작의 전형적인 양식상 특징이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고, 전통적인 재료인 지필묵을 고수하고 있으나, 그의 인물상들은 한국 인물화의 전통에서 볼 때 매우 이색적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초상화부터 김은호 같은 근대 초기의 인물화들은 철저하게 그려지는 대상중심의 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양식도 대부분 북종화 전통의 화려한 채색과 섬세한 묘사로 일관되었다. 남종화에 전통을 둔 산수화는 실경산수나 추상화로 이어지며 한국현대미술의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나 인물화는 현대기에 한국화 내부에서 뚜렷한 양식이나 흐름을 보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요상_寂寥- 물위의 無爲_화선지에 수묵_213×150cm_2005

지요상의 작품은 채색을 일체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종화의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고, 동시에 전통 서양화법에서 보이는 섬세한 묘사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종화의 전통 역시 벗어나 있다. 그는 정신성을 추구하는 남종화와 사실성을 추구하는 북종화의 전통의 혼합하여 그 중앙에서 자신의 양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작품을 더욱 개성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배경을 거의 생략하여 형상을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매우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인물상들은 어느 특정인을 연상시키지 않는데, 이점은 그의 작품이 초상화의 혐의와 전통 인물화에서 벗어나는 지점이다. 그의 인물상들은 공통적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뒷모습, 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어 깊은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일관된다. 이러한 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인간의 생리적 욕망, 또는 감정이나 의지로부터 발생되는 정신적 고통과 속박을 벗어나 정신적인 자유, 즉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도자의 형상을 표현이며, 이러한 표현은 도사사상이나 불가사상에 기인한다."라고 말한다. 즉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수도자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영원성"이고, 이는 바로 '물아일치'의 경지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작품에서 보이는 그의 인물상들은 득도한 편안하고 관조적 미소가 아니라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고뇌하는 인간상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그의 말과 달리 해탈의 상태가 아니라 번민의 상태처럼 보이는데, 이점은 오히려 다행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는 주제가 너무 관념적이어서 현실성을 상실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의식중에 현대의 급속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자신의 자화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발달된 현대문명 속에 정신적으로 갈등하는 현대인의 초상으로 읽혀진다.

지요상_寂寥- 물위의 無爲_화선지에 수묵_197×130cm_2005

오늘날 인물화가 나아갈 길은 관념적인 인물상이 아니라 현대의 문화변동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인간의 심리적 특징을 포착하여 양식화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개념 속에는 이러한 방향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의 또 다른 양식상 중요한 특징인 화면을 상하와 양분하여 물속에 비친 얼굴을 투영하는 양식은 무슨 의도일까? 그는 "수면 위에 어떠한 현상이나 글을 쓰는 행위는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함으로써 무위(無爲)의 상황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그것은 도(道)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함으로써 어떠한 정의도 내릴 수 없어 결국 무위가 된다. 이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에 대한 개인적 견해이며 해석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도(道)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노자의 개념을 빌려 온 것인데, "물 위에는 어떠한 형상도 남겨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인식할 수는 있어도 표현할 수는 없다"는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그가 새벽에 어느 섬에서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착안했고, 여기서 그는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꿈이라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생각했고, 그것이 최근 '도가도비상도' 개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요상_寂寥- 물위의 無爲_화선지에 수묵_207×140cm_2005

그가 말하는 '무위'나 '도가도비상도' 또는 '물아일치의 경지'는 동양의 매우 중요한 철학 전통이고, 포스트모던 시대에 중요한 시사를 던지는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을 너무 직접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들 개념간의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주제들이 생동감이 있고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담론과 자신의 체험 속에서 현대의 언어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러한 거대서사를 자신의 삶 속에서 소소한 작은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개념적인 면에서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한다면 그는 화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지니고 있고, 양식적으로는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 최광진

Vol.20051028b | 지요상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