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곳을 찾다

최양희 회화展   2005_1109 ▶︎ 2005_1115

최양희_둘 곳을 찾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87×9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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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09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3층 제1특별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이상화된 자아와 부재중인 자아가 겹쳐 흐르는 시간 ● 2003년 '석사청구전'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마련한 뒤, 2년만의 전시이다. '첫 번째'라는 말은 '이전에 행해져 왔던 것들과 실질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한다. 새로움, 낯설음에 대한 탐구의 출발점이 '첫 번째'인 것이다. 이 비동일성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이 '첫 번 째'이므로, '첫 번'은 두 번, 세 번, 네 번... 등의 영속 속에 갇힌 서수가 아니라, 언제나 반복될 수 있는 단절의 기수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2005년의 전시는 최양희에게 또 다시 첫 번째 전시이다.

최양희 회화전_2005
최양희_0(zero)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00×60cm, 65.5×45.5×3_2005
최양희_그리다, 나무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00×60cm×2_2005

2003년 전시의 제목, 'you are a work itself'과 이번 전시 제목인 '둘 곳을 찾다'를 비교하면, 젊은 작가가 두 해 동안 여행하며 도착한 곳이 출발점과는 반대편 지점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실의 기만적인 미학적 변용을 하염없이 허용하던 곳, '당신'과 '작업'이 구별없이 동일성을 획득하던 곳으로부터, '(머리를, 마음을, 몸을) 둘 곳'과 '두고픈 욕망'이 분리되어 있는 장소에서 '두고(머무르다)'와 '찾다(떠나다)'를 번복하는 지금은 존재론적 변모의 성격을 미리 규정하는 시간이다. ● 젊은 작가 최양희는 졸업으로 상징되는 출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학생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떠나야하는 이 여행의 불가피성이 일종의 통과의례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통과의례에서 행해지는 이별, 기다림 등과 같은 의식들의 중요성은 여행자의 여정에 따라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깨닫는 것을 임무로 지닌 여행자는 여정 중에야 지나 온 것을 거슬러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 깨닫는 것은 현실적인 자아가 아니라, 현실에서 떨어져있고, 아직 다시 태어나지 않은 탈중심적인 자아이다. 안정적인 형식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자아는 바로 그 토대 속에 있는 불안정한 흔들리는 자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최양희가 두 해전 이미 여행을 준비하였다고 하더라도 존재론적 변모의 경험에 접근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저 접근에 필요한 준비를 거쳤을 뿐.

최양희_심다,나무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25.5×17.9cm×34_2005
최양희_둘 곳을 찾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45×53cm×4_2005
최양희_둘 곳을 찾다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45×53cm×6_2005

최양희는 밝은 빛처럼, 퍼지고 흐르는 폭죽처럼, 명랑한 소리처럼 또는 어깨를 덮던, 옆얼굴을 가리던 머리칼처럼 일시적이고 우발적이지만, 영원하고 불변적인 시간의 이중성을 그린다. 그 시간에 이상화된 자아와 부재중인 자아가 겹쳐 흐른다. 자아의 명증성에 대한 젊은 작가의 태도가 어디로 흐를지는 가늠할 수 없다. 이상화를 통하여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내고 기초를 굳건하게 다지는 것으로, 즉 타자에 의해 자아의 명증성을 보장받고자 할지, 아니면 이상화를 내적 확실성을 갉아먹는 타자로 상대화함으로써 어둠 속의 도약,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절망적인 바램을 이룰지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작업이라는 여행을 통해 자아의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새로운 첫 번째 전시에서 작가는 간결한 말로 표현되는 지혜, 무게 있는 의미를 듬뿍 실은 말수 적은 표현보다 텅 비어있는 무게의 침묵을 벗어나려는 노력에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 임정희

Vol.20051106b | 최양희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