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윤기언 수묵채색展   2005_1109 ▶︎ 2005_1115

윤기언_길 앞에 서다_한지에 수묵채색_137×172cm_2005

초대일시_2005_1109_수요일_05:00pm

갤러리 한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4 B1 Tel. 02_737_8825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피천득 옮김 ● 점심 식사 메뉴의 결정에서부터 배우자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가. 프로스트는 이를 '두 갈래 길'에 비유하였지만 실제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이보다 더 많은 갈래로 뻗어있다. 보통 소소한 일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버리기 일쑤지만 잠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전혀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음에 놀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화가 윤기언의 고민이다.

윤기언_길 앞에 서다_한지에 수묵_70×141cm_2005
윤기언_길 앞에 서다_한지에 수묵채색_178×124cm_2005
윤기언_길 앞에 서다_한지에 수묵_65×48cm_2005

작가는 꽉 막힌 사각의 화폭에 갇혀 표정을 찌푸리고 있다.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꿈틀거리는 화면 속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두 명의 자신이 서로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윤기언의 평범하지 않은 자화상.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매 순간 나는 혼란에 빠집니다." 그는 이렇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리 정확한 근거에 의한 예측도 실제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고, 상대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아쉬움은 지나고 나면 더욱 커지게 되는데, 이런 모든 것을 하찮게 넘기지 못하는 그의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작품에 표현한 것이다. 고민하고, 놀라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들. 이와 더불어 작품에서 발산하는 묘한 색채는 작가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채색의 요소는 매우 크나 이는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하다. 또한 화면에 나타난 색은 하나의 색상으로 단정할 수 없는 모호함이 있는데, 이런 소박하고 미묘한 색채의 기운은 작가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윤기언_길 앞에 서다_한지에 수묵채색_130×190cm_2005
윤기언_길 앞에 서다_한지에 수묵_126×110cm_2005
윤기언_길 앞에 서다_한지에 수묵채색_126×110cm_2005

하지만 윤기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그의 불안과 혼란만은 아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여러 번의 아교포수와 반복되는 채색의 과정에는 수차례의 붓질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자신의 혼돈을 제3의 입장에서 관조하게 되는데, 이는 그에게 있어 일종의 수행과 같은 것이다. "결국 이 작품들은 내가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얘기입니다"라며 웃을 수 있는 윤기언의 여유로움은 분명 수행적 작업을 통해 자신을 통찰하는 긍정적 삶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자신의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화가들은 많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성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항상 타인과 경쟁하며 뒤쳐지지 않기에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철학적 사유는 각고의 노력과 천성적 낙천이 있지 않고서는 이루기 힘들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여유로움과 긍정의 삶' 이라는 덕목을 실천하고 있는 윤기언에게 마음 속 깊은 응원을 보내며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 고홍규

Vol.20051109a | 윤기언 수묵채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