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y inside on a wet day

아트포럼 뉴게이트 젊은작가발굴 2005_이지송 회화展   2005_1122 ▶︎ 2005_1203 / 일,공휴일 휴관

이지송_mousse cake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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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22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6:00pm / 일,공휴일 휴관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렌즈로 바라본 일상의 회화 ● 이지송의 캔버스들은 일상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인물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화면 속의 흩어져 있는 물건들과 화가, 즉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몰두해 있는 인물들, 하찮은 일상, 화면이 주는 움직임이 정지된 듯한 느낌 등은 그의 회화를 마치 우연히 포착된 스냅 사진의 한 장면처럼 보이게 한다. 특히 그의 숙련된 붓질의 사실주의적 기법을 통해서 위의 특징이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지송_hesitate_캔버스에 유채_40×80cm_2005

이지송이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회화 작품들은 실제로 화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우연히 발견된 것들이 아니라 화가가 소품들을 배치하여 만들어 낸 '연출'된 것들이다. 그림 속의 상황들은 사소하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출되어 실제보다도 더 일상처럼 보인다.

이지송_tedious play_캔버스에 유채_145×145cm_2005

이지송의 회화의 이러한 특징들은 연출된 상황을 우연히 발견한 장면처럼 사진을 찍는 제프 월(Jeff Wall)의 사진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후자의 사진이 영화의 현실 같은 장면들이 허구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전자는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닌 회화를 통해서 사실 같은 사진의 허구성과 사진 매체의 순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교한 세부 묘사를 통해서 태어난 그의 회화 작품에서는 사진의 우연성과 순간성이 사라졌다. 사진의 장면이 한 순간의 죽음으로 지각되는 것과는 달리 그의 회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에 묘사된 장면을 연속되는 하나의 상황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서, 예를 들어 그의 「mousse cake」(2005)에서 관객은 크림이 가득한 무스 케이크 한 조각을 깨물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볼 때 그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연상함으로써 케이크의 맛과 등장인물의 힘겨움까지도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사진이 가진 순간을 포착하고 실제 상황이라고 믿게 하는 기록적인 특성을 전복시키면서 회화와 사진의 각각의 매체적 속성을 강조한다.

이지송_absent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송의 회화 작품은 사진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그가 사진을 보고 그림으로써 그의 회화에는 카메라 렌즈의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선이 들어 있다. 이에 따라 화가의 특징을 드러내는 붓 자국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그의 화면에서는 작가의 감정적 개입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된다. 등장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컴퓨터, 휴대용 전화기, 일회용 컵, 담배 등이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들이고, 작업실, 사무실, 침실과 같은 장소 역시 우리들의 일상적인 공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로 채워진 화면이 싸늘하고 낯설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그의 회화에서 관객은 작품 속의 인물들과 시선이 마주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공간이나 그들이 몰두하고 있는 상황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지송_choice_캔버스에 유채_53×60.6cm_2003

이지송은 『dry inside on a wet day』라는 전시 제목 가운데 외부 세계를 'wet'으로 표현함으로써 실내와 내부 세계의 'dry'함을 강조하여 드러내고자 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내부와 실내의 건조함을 등장인물의 시선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거나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 인물들은 자신들만의 상념에 빠져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 속의 어떠한 존재와도 소통할 수 없는 막막함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등을 돌린 채 텅 빈 사무실에서 꺼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행위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인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는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 고립된 상황이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작품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 사이의 소외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느끼게 되는 소통의 부재와 단절감은 그들이 속한 공간 속에서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한 개인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wet함과 dry함 사이의 단절감일 수도 있다. 그의 화면 속의 인물과 인물, 인물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느껴지는 권태와도 같은 건조함은 외부 세계와 감정과 사고를 교류하지 않는 사람들로 채워진 현실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매끈하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건조한 사진이 아니라 물감의 '촉촉함'이 남아있는 그의 회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거리감이 아니라 감정이입을 유도하게 된다.

이지송_the smoker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03

사진은 오늘날 너무나 일반화되어 모든 사람들을 '작가'처럼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아마추어의 사진과 전문가의 그것의 차이는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이나'미학적'인 장면을 선택하는 눈, 또는 사진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가 특유의 '미학적'기준 등일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사진으로 사소한 일상 장면을 포착한 이지송의 시선은 전문가적이며, 그의 탁월한 묘사 능력 또한 전문가적인 것이다. 그가 렌즈를 통해 바라본 현실에 대한 거리는 그의 감정이 절제된 붓 자국 덕으로 화가의 주관성에 의해 상쇄되지 않았다.

이지송_a delicate situation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송의 회화는 1920년대 현실을 엔지니어처럼 복사하고자 했던 신즉물주의 예술가들의 차가움에 비하면 'wet'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점에서 그 일상의 실제적 삶 속에서 진리의 객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é cs)의 말처럼 이지송의 작품은 진실을 바라보는 일상이 된다.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하찮아' 보이는 일상 상황들을 통해서 우리는 일상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소통 부재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들 앞에서 현실과 새로운 관계의 끈을 잇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 박선영

Vol.20051114c | 이지송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