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 Nature

송지인 개인展   2005_1118 ▶︎ 2005_1215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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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18_금요일_06: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 'NArT 2005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갤러리 정미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199-17 객석B/D 2층 Tel. 02_743_5378 www.gaeksuk.com

'Wonder Nature', 작가는 이것을 '이상한 자연'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이상한 자연'은 감탄하며 wonderful을 외치는 감각에 가깝다. ● 'Wonder Nature'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살고 있으며, 그것은 미지의 세계가 된다. 관객을 통해 끄집어내어지는 개체의 이야기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나 동경으로 만들어진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에 대한 설화처럼 상상력을 자극하고 스스로가 생명력을 부여 받아 우리들 개개인의 의식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 숨쉬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를 통해 바이러스처럼 우리자신을 변화시키고, 주변과 관계하며 새로운 소통의 장을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 송지인

송지인_홍발종묘(紅髮鍾猫)_혼합재료_100×90×80_2005

이제 작가는 콘크리트 미이라 같은 관 뚜껑을 힘들게 열고 걸어나와(1회 개인전, 『작은 틈새로 흐르는 '가둘 수 없는' 자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가득한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다(2회 개인전,『생각의 숲』)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보호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아득하지만 익숙한 상상의 풍경들 속으로 들어간다. 이 풍경들은 이상한 생물들로 가득하다. 낯설지만 두렵지 않은 돌연변이들이다.

송지인_삼두화수 (三頭花獸)_FRP_170×100×160_2005

「홍발종묘(紅髮鍾猫)」는 원래 살금살금 쥐를 잡으러 다니는 보통의 고양이와 달리, 눈에 띄는 붉은 머리와 큰 종들을 가득 달고 태어난 고양이의 이름이다. 홍발종묘가 아무도 몰래 어딘가로 가려고 시도하다가 관람객들에게 들켜 어색하게 씨익하고 웃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삼두화수(三頭花獸)」는 짐승의 몸과 세 개의 꽃머리가 달린 동물로, 각 머리마다 우울하고 밝으며 화만 내는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날개가 달렸지만 그것은 나뭇잎에 불과해 이 생물이 세 가지 분열적인 성격에 따라 행동할 때, 힘없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짧고 앙상한 다리로 긴 목을 흔들거리면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재미있고도 슬픈 풍경이 될 것이다. 「겸각마족(鉗脚馬族)」은 유니콘처럼 소라 모양의 뿔이 달린 여자아이의 상반신을 한 동물 두 마리가 한 쌍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들은 마주 보고 서서 서로 좋아하는 이성동물에 대해 속닥거리는 중이다. 물고기의 비늘 같은 머리 모양과 게의 집게발 같은 손 등은 바다생물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말처럼 보이는 하반신은 육지생물의 특징을 갖고 있다. 마치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형상을 한 인어를 역전시킨 듯한 모습은, 이들의 성격이 희생적이고 순종적인 사랑의 상징인 인어와는 정반대로 집게발처럼 싹뚝하고 뭐든 잘라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결단력있고, 욕심 많아 보이는 성격임을 추측케 한다. 따라서 이러한 성격을 지닌 두 겸갑마족 소녀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심상치 않은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하늘을 담당하는 거대한「홍예칠색마(虹霓七色馬)」는 얼룩말처럼 몸에 무지개색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비가 오면 사방을 날아다니며 자신의 무늬를 흩뿌린다. 이것이 바로 '이상한 자연' 속 하늘의 무지개를 만드는 것이다. 한편으로「번뇌조(煩惱鳥)」처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새도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새는 매일 번뇌하기만 하는 새이다. 점점 무거워지는 머리를 목으로는 지탱할 수 없어, 아예 목이 팔과 손으로 변해 턱을 괴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이것들 외에도 '이상한 자연'이라는 풍경 속에는 신기한 모습과 이야기를 가진 생물들이 살고 있다.

송지인_겸각마족(鉗脚馬族)_혼합재료_80×115×130_2005

최근 미술을 포함한 시각문화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이미지는 혼종적 괴물 또는 돌연변이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범람은 자기분열적인 공포감에 가깝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자각, 내가 바로 그렇게 두려워하던 괴물 같은 타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더 이상 타자를 통해 나를 정의내릴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결국 제일 두려워야 할 것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나'에 대한 집착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일종의 구원을 기다린다. 마치 어린 아이가 넘어지거나 다치는 그 어떤 순간에라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믿음직하고 따뜻한 존재인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이제 작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을 계속 창작하게 만드는 그 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온전히 즐거움과 행복만은 아닐지라도, 이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감각… 바로 그것일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겪은 듯하다고 말했다. 우연히 선물 받은 장난감 동물인형을 만지작거리다 이리저리 부분 부분을 잘라 다른 몸체에 붙여 돌연변이와 같은 생물을 만들고, 성격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면서 즐거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제각기 다른 상상을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송지인_홍예칠색마(虹霓七色馬)_FRP_260×100×200_2005

관람객들은 금세 작품들을 스쳐 지나가버릴 것이다. 반대로 그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내고 상상한다면 그 풍경은 살아숨쉬게 될 것이다. 관람객이라는 타자의 마음 속에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충분히(!) 그러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은 쓸쓸하다. 그래서인지 발랄한 색조의 매끈하게 다듬어진 모습을 가진 생물들은 쓸쓸해 보인다. '이상한 자연'이 주는 쓸쓸한 느낌은 어쩌면 운명적인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대의 마음 속에 들어가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듯이, 작가가 만들어낸 풍경은 그것을 알기에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들어가 살고싶은 장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서 송지인은 행복한 작가다. 그것이 사랑이든 만드는 즐거움이든, 한 번 행복감을 맛본 사람은 결코 그 순간의 충만함을 잊을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송지인의 이상한 동물들의 눈빛과 얼굴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 채지원

Vol.20051119e | 송지인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