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김인순 회화展   2005_1125 ▶︎ 2005_1205 / 11월 28일 휴관

김인순_숨 쉬는 언덕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94×39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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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25_금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4전시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Tel. 02_580_1518 www.sac.or.kr

흙으로 회귀하는 물기담긴 풍경들 - 중심을 구축하지 않으면서 풀어놓는 생명력을 만나며 ● 김인순에게 있어 80년대, 90년대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 등 변혁을 위한 사회운동은 자신의 작업 에너지를 끌어내는 원천이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부르짖던 1987년 6월의 거리, 여성노동자들이 위장폐업과 해직에 맞서 농성을 벌이던 사업장, 맞벌이하는 저소득 부부의 아이들이 맡겨진 탁아소 등은 김인순이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구하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길어올린 기억의 두레박에는 '어머니'-작가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딸들의 어머니-가 모든 상처를 들쑤시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신의 자아와 접촉할 수 없도록 둘러쳐진 금기의 벽을 거두어내면서 동시에 김인순은 시대의 불모성과 그 자각이 불러내는 분노를 경험하였다. ● 인간존재가 조건에 결박당해 있다고 파악하고 있던 이 시기 김인순의 사회적 인식은 그의 그림에서 세계와 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없애 버렸다. 표현에서 과격하거나 직설적인 경향을 보인 것은, 작가가 덧대거나 덜어낸다고 해서 세상에 달라질 것 없다는 무력감과 무관하지 않고, 그 무력함의 부끄러움이 '일어서는 삶''여성농민''어부의 아내''울릉도아줌마'(1993년작)에서처럼 삶에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껴안는 성숙한 사랑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까닭일 것이다. ● 국가나 민족,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과 같은 크고 중요한 사건들을 맥락을 지어 서술적으로 묘사하고, 미래를 위한 전망을 보여 주는 정형화된 틀 속에서는 미술의 목표가 개념적이고 구조적이다. 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의미와 가치를 경험할 수 없는 화면에서는 모든 사회현실이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위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미래의 밝은 전망은 역설적이게도 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사회현실에 대한 불안하고 조급한 방어처럼 느껴진다.

김인순_그들의 꿈은 어디로 가나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94×392cm_2005
김인순_긴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63×130cm_2005

열정적인 작업 에너지를 토대로 격정적인 성격을 띠면서 사회적 내용을 담아내었던 80년대, 90년대 김인순의 리얼리즘 그림들은 대체로 다양한 세계로 향할 호기심과 기운을 고무시키고 지지하기보다는, 일치된 세계의 외양과 의도를 직관적 지식으로 전달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삶이 사실들로 재현됨으로써 삶의 내면적 측면이 간과되기도 하고, 개인은 '어머니'나 '여성노동자' 등의 균일한 경험의 집단으로 동일시되면서 단조로와지기도 하였다. 부릅뜬 눈으로 마주한 현실, 또는 이상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현실은 건너뛰기, 비껴가기, 맴돌기, 돌아가기 등의 행위로 터득할 수 있는 시각의 자유나 통찰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듯 했고, 이미지가 현실의 사물과는 또 다른 강도의 실재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듯 했다. 작품 속 현실은 통렬했지만 동시에 경직되어 있어서 세계는 종종 물질적으로 응고된, 일원화된 모습으로 보여졌다. ● 2005년이 지나는 길목에서 만난 김인순의 그림들은 사뭇 달라져 있다. 공동체적 기반에 의해 규정된, 시대에 대한 항의나 공격적인 주장처럼 외부로 향했던 열정적 에너지는 이제 작가 자신을 맑은 기운이 생성되는 제 관계 속에서 다시금 위치시키려고 하는 자신의 욕망을 향하고 있다. ● '느린 걸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오랜만에 개인전을 준비한 김인순의 작품들은 내적인 생명력의 유희가 작가의 의도를 넘고 시대의 의미를 넘어 생명력을 풀어놓고 있다. 이는 작가와 관람자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는 조화로운 결합이 있는 그림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굳건한 중심을 구축하지 않으면서 화면의 상이한 요소가 제각각 깨어 투명한 놀이를 벌이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작가는 그림의 세계를 진행형의 유동성 속에서 유희하도록 놔둠으로써 객체로 표상되는 뿌리, 잎, 풀, 빛, 나무, 흙, 언덕 등은 관계맺되, 속박되지 않고 미끄러져 흐른다. 물질적으로 응고된, 일원화된 세계 속에서의 객체가 아닌 것이다. ● 밤을 지낸 풀들이 젖은 공기로 밀려가고, 그 공기에 햇살이 교섭하며 빨려들어, 마른 공기가 되고 깨어나는 명랑 아침이 되어 되돌아오고('흙의 노래, 2005'), 땅 속에 묻혀있지 못하고 폭우에 쓸려 드러나 마른 흙들과 엉겨붙어 있는 뿌리의 부분은 땅 속에 잠겨있는 뿌리의 습기를 축축하게 전해주면서 튀어나온 부분과 잠겨있는 부분 사이 중간쯤에서 뿌리 형상의 전체적 촉감이 살아나는가 하면('긴 이야기', 2005), 군락을 이루어 핀 얼레지꽃은 오랜 시간 쌓여 있던 낙엽과 잔설과 함께 자리를 잡아 서술의 가능성을 비틀고 시간의 단일성을 깨트리며 혼재된 봄의 자리를 보여준다('화야산 봄 길목', 2005). ● 무한한 세계의 미적인 측면을 반영하는 자연은 근원적인 생명의지를 맹목적이고 억제가 불가능하고 채울 길 없는 충동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밤과 낮, 여기와 저기가 섞여있는 시ㆍ공간의 총체적 인식이 작가의 복합화된 감수성으로부터 이전의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생명 이미지를 다원적 세계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인순_축축함의 의미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97.5×130.3cm_2005
김인순_땅의 노래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30.3×194cm_2005

이번 전시작품들은 한결같이 물기가 묻어있다. 풀밭이거나 뿌리이거나, 언덕이거나 물기를 품고있다. 스며들어 보이지 않으나 끊임없이 유동하는 물은 고요한 흔들림과 느린 변화를 동반한다. 때로는 꽃으로 피기도 하고 물안개로 퍼지기도 하지만, 물길은 흙속에서 경계와 구별을 허무는 징표로 남는다. 이는 작가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솟구쳐 오르는 일치의 열망과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뚫지 않고서도, 외치지 않고서도, 열고, 듣는다. 흙 속에서 열고 흙 속에서 듣는다. 이 쪽에서 저쪽을 가리키지 않고, '지금'을 '이미'와 '아직'에 연장하지 않는, 초월의 허구성을 인지하는 지점인 흙 속에 물길은 있다. 그래서 물기 묻은 풍경들이 떠다니지 않고 흙으로 회귀한다. ● 작가가 오랜 기간 몰두하였던 '뿌리' 연작들에서 볼 수 없었던 물기가 이번에 전시되는 뿌리 작업에서 느껴지는 것은 흙과 뿌리가 미끄러지며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인데, 이 미끄러짐, 즉 물기있음의 유연함과 우발성이 서로를 생기있게 만들고 그림 전체에 투명성을 실현시킨다. '멈춰 선 봄'이나 '길 한 켠에는'에서도 이전에 작가가 보여 주었던 사회적 참여의 단호함과는 다른, 삶의 터전의 힘겨움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라고 말하는, 이웃의 삶에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 작가의 세계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작가의 현실인식이 둔화되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삶에의 의지가 한결 따스하게, 이웃과 나를 가르지 않고서도 질기게 확인된다.

김인순_마른 풀은 새 풀을 밀어 올리고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80.5×100cm_2005
김인순_살아있는 것은 변하고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0.4×72.7cm_2005

'느린 걸음으로'의 작품들은 작가 김인순이 서울에서 산과 강을 끼고 있는 양평으로 거주지를 옮긴 7년간의 생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곳에서 김인순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생활세계를 지키는 존재자들의 존재양태를 조용하고 일상적인 교류를 통하여 천천히, 매우 느리게 실감한 것 같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그 세계에 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신뢰가 화면을 움직였다. 인물이 사라지고 자연물이 들어선 화면은 밝고 다채로운 색채와 자유분방하면서 온화한 붓질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색채에 반응하는 작가의 감수성이 예민해졌고, 그런 색채의 서정이 작업에서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색채가 서로 울림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형태는 고정된 윤곽을 풀고 있다. 때로는 깊이 대신 선택한 표면이 일정 방향이 아닌 화폭 전체로 퍼지고 있어서('숨 쉬는 언덕','아침산책') 작가가 대상에 대한 저항감을 느끼거나 대립하지 않고 슬그머니, 가벼이 대상에 삼투되거나 대상을 삼투시킨다. 물질적으로 응고된 현실에 대한 머무름이 없었다면, 색채와 형태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겹쳐지는 공통의 생명감이 하나의 전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하나인 전체라는 이미지는 여럿의 부분 뒤쪽에 또는 저 밑에 산다. 물질의 유형화에 몰두했던 작가는 기분을 고양시키고 방어를 풀어 자유로운 시각과 정신적 통찰의 즐거움을 얻고 있다. 60대의 화가로부터 유용과 공리의 지평 넘어 비교나 구별을 생성시키지 않는 삶의 근원적인 긍정성을 만나는 일은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으로 묵직한 위안이 된다. ■ 임정희

Vol.20051125a | 김인순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