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게이트 이스트 개관

권오열 사진展   2005_1125 ▶︎ 2005_1211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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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23_수요일_05:00pm / 갤러리 오픈기념 바베큐파티

뉴게이트 이스트 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 66-3번지 Te.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2005년 11월 25일 개관하는 뉴게이트이스트(The Newgate-East) 는 서울시 종로구 명륜4가 66-3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트포럼뉴게이트(Artforum Newgate)의 제2전시장입니다. 대학로 대명거리와 소나무길 사이 안쪽 골목길에 위치한 The Newgate_East 는 약 70년도 더 된 한옥을 서까래와 기둥만 남기고 개조하여 전시장으로 만든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공간입니다. 낡고 쓰러져가는 한옥을 없애지 않고 그중 살릴만한 부분을 보존하여 전시공간으로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잊혀져 가는 한옥이 주는 독특한 공간감을 맛볼 수 있게 하려 합니다. 또한 대학로의 새로운 미술 활동의 거점을 만들어 활력을 제공하려는 취지가 있습니다. 2005년 8월 26일부터 철거와 개조공사에 들어갔습니다. 11월초면 전시장이 완성됩니다. ● 한옥으로부터 전시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사진작가 권오열씨가 뛰어난 감각과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기록하여「개관전 1부」에 권오열 사진작품전 "한옥에서 갤러리까지"로 선보입니다. ● 그리고는 12월 9일부터 평면과 입체작품들로「개관전 2-8부」가 2006년 3월까지 이어집니다. 릴레이로 이어지는 뉴게이트이스트 개관전에는 그동안 아트포럼뉴게이트를 통하여 전시를 했던 포럼작가들과 젊은작가들, 그리고 뉴게이트작가들을 포함하여 30여분의 작가들이 참여합니다. 현재 우리 미술계의 현장을 구성하는 최고 수준의 작가들로 전시가 구성될 예정이오니 많은 관람을 바랍니다. ● 대학로 지역의 엄청난 젊은 유동인구들을 미술작품 감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만든 뉴게이트이스트(The Newgate_East)에는 작은 라운지를 마련하여 전시를 관람하시고나서 커피 등 음료를 마시며 쉴 수 있습니다. 작은 중정에서 아담하지만 휴먼스케일인 우리 전통의 공간감을 경험하십시요. 이 공간은 이 지역 주민과 미술인들이 함께 가꾸고 키워나가야 할 소중한 전시공간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방문을 바랍니다. ■ 염혜정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철저한 객관, 냉정한 미니멀리스트 -권오열의 사진 ● 1 권오열은 너무나 분명한 사람이다. 그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진도 어떤 트릭이나 기교를 찾아볼 수는 없다. 그는 차가우리만큼 담담한 자세로 자기의 의지와 감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있는 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철저한 객관적 미니멀리스트이다. 그의 성격 또한 그렇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위해서는 그와 나와의 관계를 설명해야만 한다. 나는 그와 1994년부터 지금까지 쭉 동행해 왔다. 그는 나의 작품 사진을 찍고 나와 같이 내 작품세계를 이야기하고 나와 같이 많은 식사를 나누었으며,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의 연애시절의 에피소드와 드라마틱한 결혼과 아이들과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까지 그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곤 했다. 그 역시 내가 가는 곳에는 늘 있었다. 우리는 마치 믿을 수 있는 아주 쿨한 친구처럼 서로에게 부담없는 이상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우정이 이렇게 지속된 이유는 서로에게 최소한의 선을 유지해주는 것뿐이었다. 서로가 지켜줘야 할 마지막 선을 철저히 넘기지 않는다는 것, 최소한의 인격적 존중을 담보로 하여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해 줄 수 있는 친구로 발전해 왔다. 그가 나에게 보여준 인간적인 행동들은 내 작업실에 와서 바둑을 두거나 같이 식사를 하거나 같이 비디오를 보거나 살아가는 일들을 고민을 서로 얘기하고 들어주는 것들이다. 우리는 감정에 속아서 자기의 비밀을 털어 놓고 싶을 때가있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정말 다 들어줄 것만 같고 ,자기의 생각이나 충고 없이 그저 들어만 줄 것 같은 사람처럼 권오열은 마치 비밀일기장과도 같은 그런 태도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 역시도 나한테 속기는 마찬가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 사람을 만날지라도 전해도 좋을 얘기와 절대로 자기 영역이 아닌 얘기를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권오열이다. 권오열과 나는 서로에게 적응하며 지내왔던 것이다. 권오열은 어떻게 보면 너무 차갑고 딱딱할 수 도 있다. 그를 가까이서 보면 철저하게 프로페셔널이다. 작품 사진 한 컷 찍는데 정말 하루 종일을 소비하거나 혹은 일주일 내내 걸려도 못 찍을 수도 있다. 여느 상업적인 사진가의 태도와는 전혀 다르다. 아마 어떻게 보면 그런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은 그가 돈을 벌기위해서가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그 터무니없는 자존심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그것은 사진이 본래적인 사진이게끔 하는 증명적 정신성에 대한 철저한 신봉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 본다. 그의 성격또한 철저하게 사진을 닮아있다. 인간이 본래적 인간이게끔 하는 순수성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에게서 순수의 투명함을 보았다. 순수와 투명함이라는 것, 그것은 어린애와 같은 그런 철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린 아이들은 얼마나 본능적인가? 어린아이는 이기적이기도하고 때론 탐욕스럽기 까지 하다. 우리는 그것을 순수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순수는 그 순수 자체가 스스로를 현신하면서 세상의 담론과 만나고 세상의 반응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굴절과 흡수를 거듭하면서 획득한 요소들을 다 포함한 거대한 현상물이라 볼 수도 있다. 나는 결단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종합적 현상을 몸체로 가지는 상황 속에서 다시 본래의 위치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순수라는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 나의 순수에 대한 개념이다.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는 여러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순수일 것이다. 권오열은 그런 경우의 수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고 그의 작품 또한 감히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2 권오열은 매우 특이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철이 없다고 오해도 받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정의롭기까지 하다. 그는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다. 노견을 달리는 차를 권오열 혼자서 막고 실랑이를 벌이는가 하면, 선생님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터무니없는 곳에 고집을 피기도 한다. 그는 세상사는 테크닉이 없다. 쉽게 넘어갈 일이나, 그저 고개한번 숙이면 될 일인데도 요지부동이다.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출세의 지름길이 되는 많은 대소간의 관계가 있을 터인데 그에게는 그러한 출세의 가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이가 많은 대가이든 학생이든 그에게는 그저 한명의 작가일 뿐이다. 또 자기는 사진을 찍어주는 냉담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그런 그가 좋다. 그는 대가와 싸우기도 하고 비틀어지기도 하고 또 어린 학생들의 작품에 자기 모든 것을 동원해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물론 대가의 작품이나 학생의 작품 사진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나 열정이나 결과물은 정말로 동일하다. 그는 결코 인물사진을 찍지 않는다. 아마도 사진에 자기의 감정이 개입되는 것이 극도로 싫어서일 것이다. 인물이 작품이 되는 경우라면 그는 너무도 크리어하게 찍는다. 명암의 트릭이나 필터의 조작을 싫어한다. 증명적 리얼리티가 그에게는 중요하고 그의 사진에서 인간적 동정심을 기대하다가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가 십상이다. 그는 냉정한 이상한 사람이다.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3 그에게도 숨기기 어려운 감정이 조금씩 노출되기도 하는데 보통은 눈치를 챌 수가 없다. 일전에 나의 작업을 도와주면서 내가 개인전을 만드는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방식으로 나의 익산시 생활을 찍은 적이 있다. 그와 나는 저작권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은 없지만 돌이키면 아마도 그는 내가 모델이 되어 움직이는 피사체의 일상을 전시하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아둔하게도 나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작품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드디어 그가 그렇게 숨겨왔던 감정을 세상에 드러내 보인다. 한옥의 탐구자와 함께 한옥이 갤러리로 변해가는 여정을 다큐멘타리로 발표한다. 아마도 구도의 트릭은 없을 것이고, 필터의 조작도 없을 것이고 더구나 연출의 형태는 더더욱 없으리라. 그러나 그가 가진 매력이 사진에 그대로 배여 있을 것이다. 작품과 작가의 생활태도가 일치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그가 보여주는 철저한 객관성은 사진이 가진 오만함과 위증의 의심을 한 번에 날려 보낼 것이다. 보이지 않으나 존재함을 느낄 수 있는 작가의 태도는 우리가 종교에서도 지고의 선으로 생각지 않았던가? 사진자체가 스스로 존재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포토그라프의 존재 없이 처음부터 있어왔던 사진의 서늘함, 그가 이 조용한 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 느낌을 전해주리라 기대한다. 내가 작가로서 가지지 못한 그의 장점 중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그의 단호함이다. 나는 그에게서 칼날과 같은 날카로운 예리함을 느낀다. 그는 매우 순수하고 분명한 사람이어서 무섭다. 그가 찍은 사진은 담론의 도움 없이 사진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어서 더 두려운 것이다. ■ 권여현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카메라 셔터와 같이 명쾌한 작가, 권오열 ● 힘겨운 삶의 무게들로 암담하여 좌절감에 빠져있을 때에도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권오열은 그 중에서도 젊고 기분 좋은 사람이다. 갑작스레 날아오는 초대전시 공문 등으로 뒤숭숭하고 짜증까지 나있을 때라도 전화 한 통화로 그 울적한 기분을 확 바꿔주는 사람이 바로 권오열이다. 어느 때라도 어디서라도 반드시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 그것도 한 옥타브 높은 밝은 소리로 "네! 선생님. 권오열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하고 물어오는 젊고 싱싱한 목소리는 세상에서 빛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또 하나 있는데 예화방의 이우석 사장이다. 나는 내 가족에게 늘 말한다. 눈감지 않아도 등쳐먹거나 배은망덕한 사람들도 많은데 요즈음 세상에 이런 이들 몇 사람이 이 어지러운 나라를 제대로 돌게 한다고. 한 사람은 작업 전후의 모든 일을 맡아 마련해주고 한 사람은 끝난 작품들을 필요할 때마다 정확한 시간에 슬라이드로 기록해준다. 두 사람 다 바쁘고 복잡한 중에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늘 긍정적인 대답으로 승낙해 준다. 작업상 항상 만나야 할 이들은 내게 최상의 만족을 주며 내가 복이 많음을 실감케 해준다. 15년 전 즈음 청년으로 만났던 권오열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항상 변함없이 싱그럽고 풋풋한 푸른 사과알 같다.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권오열의 섬광처럼 번뜩이는 그 속도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복잡하고 난삽한 일들도 그 앞에서는 단순 명료하게 정리되어 버린다. 그 찰나의 분별과 반응은 마치 카메라의 셔터 같다고나 할까. 그 둘은 참으로 닮아있다. 권오열이 사진기를 닮아가는 것인지, 사진기가 그를 쫓아가는 것인지 그 둘은 마치 하나와도 같다. 셔터 스피드가 1/125초에서 1/60, 1/30, 1/15초로 느려지면 영상은 흔들린다. 하기야 알만한 일이라면 시간을 끈다고 더욱 명쾌해 지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가 그림의 핵심을 깨닫는 시간도 눈 깜짝할 사이가 아닌가? ●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미술에 있어서 시간성의 절대적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깨닫는 것 같다. 젊어서는 그저 멋있어 보이던 치열한 존재자로서의 의식을 이제는 다가오는 생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더욱 실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털같이 많은 나날들에서 오는 나른했던 젊은 시절의 방황의 실존감이라기 보다는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직시할 수 있는 직관이랄까… 미술에 있어서 표현의 동기는 심리적이든 종교적이든 사물적이든, 어쨌든 소재로부터 시작된다. '나'라고 하는 그물망을 통해서 드러난 표현은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자아의 터널을 통과한 다분히 주관화된 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때 발휘되는 자기화의 작업이란 총체적으로 작가의 의식 체계를 거침으로서 소재 그 자체도 아니고 작가 정신만도 아닌 어정쩡한 환영으로 귀결된다. 그 어정쩡한 사이 의식들 그것이 바로 예술 속에서의 리얼리티 아니겠는가? 보는 이들은 이 만남의 사이 인식을 두고 또 하나의 관조자적 자아를 창출해낸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진수이며 그 망망하고 무한한 사이 공간 속에서 지고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권오열_디지털프린트_20×30cm_2005_2005

대학시절 임응식 선생님께 사진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그 하나는 기록성이며, 보도성과 함께 조형성이 높을수록 높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11월 25일 New Gate East 갤러리에서 열리는 권오열의 다큐멘트 사진전은 정말 특별상을 주고 싶을 만큼의 내용을 지닌다. 100여년 동안 전통 한옥의 구조를 지니며,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 중에서도 건재해오던 한 역사의 공간은 그 수치와 비애의 무게를 견디다 못 해 사그라져 간다. 그리고 이제 그 힘겨운 무게를 털어버리고 벽과 천장 그리고 지붕까지 현대적 재료와 공법 그리고 기술로서 새 단장 되었다. 권오열은 시시각각으로 변신되어 가는 그 과정을 3개월 간 400장도 넘는 스틸 사진으로 찍어 그 찰나의 현상을 영구화 시켰다. 그것은 프로세스 아트 그 자체이며 시퀀스 아트일 수밖에. 한국 특유의 조형적 아름다움, 그것도 100년이라는 시간이 내재된 곳곳, 그리고 쉼 없이 진행되는 시간을 자신이 선택한 앵글로 어느 한 시점에서 광선까지 더불어 포착한 이 작업이야말로 실존의 예술 사진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12월 9일까지 15일간 진행되는 이 전시회는 보도적 기능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창작예술의 공개 형식이 아니겠는가? 나는 모처럼 임응식 은사님의 그 다감하셨던 미소와 예리한 표현의 결단력을 권오열의 전시를 통해 다시 대하는 듯하여 마음 뿌듯하고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이렇게 척박한 정치 경제의 상황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이면서도 차원 높은 문화 공간을 Art Forum New Gate 갤러리와 함께 New Gate East 갤러리를 하나 더 개관해준 염혜정님께도 감사와 찬사를 드리고 싶다. 아무쪼록 넉넉하고 품위 있는 그리고 살아 있는 예술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전시되어 서울의 아니 한국의 문화적 명소가 되기 바란다. ■ 하동철

Vol.20051125b | 권오열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