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의식의 순간들

조강신 개인展   2005_1123 ▶︎ 2005_1129

조강신_F-1_혼합재료_70×144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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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오픈_2005_1123_수요일

갤러리 시선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0번지 Tel. 02_732_6621 www.gallerysisun.com

드러나는 의식의 순간들 ● 시간의 흐름 속에 퇴색하여 어느새 빛바랜 사진첩을 펼치는 것처럼 한지위에 프린트된 그림들과 그 위에 파편처럼 조각난 단색의 오브제들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마치 어린시절 조막만한 손으로 꼭꼭 눌러쓰던 일기장의 배경 화면과 같아 이미 종이의 질감과 하나인 것처럼 스며들어 있다. 오 헨리의 소설 속의 마지막 잎새와 같이 그림 위에 붙어 있는 단색의 오브제와 사각의 박스 안에 어린 소녀가 등을 지고 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는 그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강신_untitled_혼합재료_54×27cm_2003
조강신_F-2_혼합재료_78×46.5cm_2004

가장 최근의 작업인「fragmentary memory 1,2, 이하 약칭FM」의 파편화된 오브제와 사각박스의 그림이미지들은 그의 작품들을 거슬러 올라가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소녀가 손에 들고 있는 들꽃은 작가의 첫 개인전에서 아크릴이나 안료에 보조제를 첨가해 드리핑 기법을 통해 그리고자 했던 꽃의 이미지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 작업들에서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 피력했듯이 유기적이고 추상화된 꽃의 형태를 통해 "죽음을 덮고 있는 땅에 꽃을 피우고 있는 생명력을 보았고, 막연한 경이함과 두려움을 그리고 나 자신의 숨결을", 자연의 원형질적인 세계를 조형화하고자 했다. ● 그 이미지들은「그곳으로의 몰입,1992」에서 보듯이 무의식적인 기법을 통해 씨앗 속에서 생장해 나올 식물 전체의 힘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내재하고 있는 원형적인 색채와 율동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했으나, 루돌프 스타이너가 「어떻게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 1905」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그 세계는 자각적인 의식을 통해서만이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 시기의 작품들인「Untitled, 1992, 1993」나, 「Tableau Vivant, 1993」이나, 그 밖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무의식속에서 찾은 그 율동의 세계는 유기적이기보다는 인위적인 형태를 띠며 색채는 조화롭고 맑기 보다는 격렬하며 둔탁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 3년 후의 작품인「무제, 1996」의 작품은 꽃의 이미지를 통한 원형질적인 세계의 탐색은 격자 모양의 사각의 틀 속의 색과 선들을 통해 그 이전의 작품들보다는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여전히 격자안의 색채의 대비와 선의 율동에서 보듯이 색들의 충돌로 인한 심리적인 긴장감의 유발과 여전히 둔탁한 선의 율동을 보여주고 있다. 3년이 지나서 작가는「무제」, 「무제-shape, 1999」에서 보듯이 펄프로 캐스팅한 둥그런 모양의 보라색의 원과 발자국 모양을 형상화한 노란 한지의 오브제의 작품을 내놓았다.

조강신_untitled1_혼합재료_37×75cm_2002

삶이 그를 성숙시켰는가. 그 공백기의 시간은 창작활동에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지만 그 작품들의 오브제들은 미니멀리즘과 같이 그 그림들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작품이 설치된 주위의 자연의 배경을 바라보도록 유도함으로써 성숙된 작가의 시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오브제를 둘러싼 자연의 모습은 그 원형을 드러내기 보다는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의 현상만 드러낼 뿐이었다. 그렇기에 오브제 작업은「무제-shapeII, 2000」, 「무제,2002」에서 보듯이 물성을 드러내는 질감의 변화나 단색조적인 색채의 변화를 통해 원형을 드러내거나, 종이로 만든 오브제 안에 자연의 이미지를 담아 그 원형을 찾고자 했다. ● 「F-1, 2004」나, 「공, 2005」이나, 그 밖의 작품들은 용기로 된 오브제로 그 내용물을 감싸며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변화를 꾀하고 있다. 「F-1」의 작품에서 보듯이 오브제로 된 용기는 작가가 이야기했듯이 신제품을 감싸는 것으로서 그 안의 내용물인 꼴라주한 사진 이미지들이 아직 때 묻지 않은 것임을 상징화하고 있다. 즉, 사진 속의 이미지들은 이제 그의 작품에서 원형적인 형태의 탐구가 자연현상이 아니라 등장인물로 탈바꿈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도 시간과 공간이 다른 여러 장의 사진이미지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꼴라주함로써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을 막스 에른스트나 슈비터즈의 그림들과 같이 강하게 연상시킴으로써 그 의식 현상을 다루고 있다. ● 이렇듯 자연 현상의 탐구에서 인물의 의식의 탐구로의 등장 화면의 변화는 시각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원형의 이미지인 자연의 현상의 근원을 무의식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식의 자각 속에서 찾아야 함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전회는「공, 2005」이나 「FM 1,2」, 그리고「hidden memory, 3,4,5,6」의 등장인물을에서 공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의식현상의 변화의 저변은 무엇인가. 그 원인은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의 등장인물은 딸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그 이미지는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고 작가는 대화에서 언급한 바 있다.

조강신_pieces_혼합재료_80×171cm_2005
조강신_fragmentary memory1_혼합재료_91×63cm_2005 조강신_fragmentary memory2_혼합재료_91×63cm_2005

너무 이른 나이에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어쩌면 안톤 슈낙의『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글귀의 내용들을 숱하게 떠올리며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의 시간들을 회상하였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아들(딸)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 때 아버지(어머니)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 그리고 딸아이가 가슴앓이 하는 모습과 그 감성의 변화를 통해 작가는 그 자신의 어린시절의 경험과 그 순간들 속에 맞이했던 부모의 심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여태 찾아 헤매던 그 원형의 세계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의식의 자각을 통해 발견될 수도 있다고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때 쯤 눈꺼풀을 벗는 숭어나, 또는 마치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보냈던 과수원에서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면서 느꼈던 의식의 순간들처럼 말이다.

조강신_hiden memory_혼합재료_143×504cm_2005

등장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그림일지라도「FM, 1,2」나 「hidden memory, 3,4,5,6」의 오브제의 질감과 색채들은「F-1」,「공」의 작품들과는 달리 그 의식의 흐름이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사진이미지를 감싸며 과거의 의식이 현재와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원형적인 것을 가리고 있는 듯한「F-1」의 오브제의 용기들은「FM, 1,2」에서 파편화되어 등장인물의 부분만을 가리며 이제는 그 과거의 감춰진 의식들이 하나 둘 드러나는 오브제로 상징화되며, 한지와 함께 일체화된 사진이미지들은 이제는 하나 둘 드러나며 과거의 기억처럼 침잠하는 의식현상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FM, 2」의 색채와 질감은「F-1」의 생생한 이미지와는 달리 오랜 시간이 흐른 사진첩을 보는 듯한 인상을 자아냄으로써 애태우며 찾던 지난 시간의 감춰진 현상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무의식적인 현상들을 의식하면서 응시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 강산이 한번도 더 지나 갖게 되는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찾아 헤맨 그 현상들의 원형들이 외부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의식의 자각 속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 조관용

Vol.20051125e | 조강신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