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뮤지엄 프로젝트

2005 아르코미술관 독립신진큐레이터 공모展   2005_1126 ▶︎ 2005_1210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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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26_토요일_06:00pm

참여작가_김자움_옥정호

책임기획_2004 아르코미술관 CTP

아르코미술관 소갤러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2

90년대 미술을 해석하기 위한 접근들이 있었고 그것은 글 쓰기라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집합적인 담론의 영역으로 환원될 만한 것이다. 담론적인 영향력을 배제하더라도 우리는 90년대 미술의 급진성이라고 부를만한 것의 대부분이 제도적인 움직임 아래에서 이뤄졌다고 상상할 수 있다. 대안공간의 등장, 체계적인 미술사 교육의 시작, 이론적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대안적 교육 틀의 등장처럼 미술관의 양적, 질적 성장과 더불어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일련의 제도적인 변화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을 미술계의 모더니티(보들레르적인 미적경험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 양식 전반을 지칭하는)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옥정호_화장하기_2005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미술관 제도의 문제를 도마 위에 놓기로 했다. 물론 우리는 정치적인 올바름을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미술 영역에서 대안적인 제도가 필요성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대신 미술관 제도를 하나의 발화 조건, 최소한의 소통의 조건으로 보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미술관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 제도를 삶의 양식과 부단하게 상호 작용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수정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 특히 현대 미술을 매개로 미술관이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교육되는 방식들(미술관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는)이 스스로의 권위적인 체계 안에서 자리를 잡는 역설적인 과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화이트 큐브의 해체, 급진적인 작품의 등장, 작가의 죽음과 관련된 담론적 행위,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믿음 등과 연계되는 제도적 움직임을 가정할 수 있다.

옥정호_술마시기_2005
옥정호_모기잡기_2005
옥정호_달리기
옥정호_담배피기_2005_2005

우리가 쉽게 내릴 수 있는 해석은 미술관이 현실과 가상 사이의 접합 지점이며 사이 공간에 위치한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 제도는 실재한다. 우리는 미술관과 미술비평, 미술계 인사들, 인적 물적 네트워크, 정부와 미술관 사이의 관계, 사립 갤러리와 인적 네트워크 등등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술계는 아주 많은 인적/물질적 네트워크의 결과물이며 그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나가며 이것을 관리해왔다. 필요한 것은 자신을 주체로 인식하는 미술계 내부의 구성 요소, 이를테면 아티스트, 큐레이터, 정부 관계자, 관람객들이 자신들을 위해 고안된 판본 행동을 쫓아가는 행위와 미술계 제도의 상징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재분절화를 이끌 수 있는 행위를 전략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 이에 페이크 뮤지엄 프로젝트는 미술관 계보를 그려보고자 했다. 아르코 미술관이라는 공립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제도적 권력 내에서 하나의 허구적이고 가상적인 미술관을 상연하면서 권력이 가진 긴장을 짚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가는 옥정호와 디자이너와 작가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을 해온 김자움이 참여했다.

옥정호_아우라 도우미_2005

옥정호는 그간 작업에서 남한 사회와 자신의 신체를 배경으로 윤리적인 문제들을 제기해왔다. 자신의 신체를 하나의 상징으로 전락시키면서 동시에 신체적인 것이 가지는 약호화되지 못하는 메시지들, 잔여적이며 풍성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번 작업에서 옥정호가 만들어낸 이미지들, 바스키아, 잭슨 폴록, 고흐, 장승업과 같은 소위 작가들은 사실상 상품 자본의 논리에 의해 부식된 얕은 이미지로 소비된다. 그들을 재현하며 옥정호는 화장하기(masquerade) 전략을 통해 작가의 피상적인 속성을 노출시킨다. 이중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이미지는 거리낌 없는 아우라걸들이 자신의 모습을 관람객에게 노출시키는 작품이다. 디카의 보급으로 우리는 어디서나 '포즈'를 볼 수 있다. 아우라걸들의 '포즈'는 하나의 정지 프레임, 즉 생기를 뺏겨버린 작가의 사회적 위치가 시각적으로 전이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옥정호의 장점은 이것을 긍정적으로 전유하는 능력에 있다. 그녀들은 단순히 보여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그(녀)들의 시선을 돌려주며 그들을 당당하게 지배한다. 과도한 여성성의 이미지로 치환된 옥정호의 전략이 일견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순 있지만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김자움_society of extra_2005
김자움_system of differential positions_2005
김자움_artworks and exchange_2005
김자움_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_2005

김자움의 작업은 미술관을 만들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페이크 뮤지엄은 가상의 미술관이지만 보름 동안은 엄연하게 실재하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김자움은 페이크 뮤지엄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미지와 텍스트 조합으로 상연할 것이다. 또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김자움은 미술관 정체성이라는 문제틀 안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작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권력이 스며들어 있는 미술관의 속성을 페이크뮤지엄이라는 극도의 허구성과 가상성의 장치를 경유해 고찰한다. ● 전시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미술계의 허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 한 작가는 그 허구성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 당시 우리는 이 허구성이 "실재한다고" 스스로에게 신뢰를 부여하는 미술계 자체의 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전시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포스트민중이라는 개념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혹은 현재 미술계에서 유일하게 논의가 가능한 개념이라면, 이것이 남한 사회의 퇴행성에 의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 조건을 부인하고 자신이 생산되었던 흔적을 감출 것인가? 즉 실재에 대한 물신으로써 '실재'를 감출 것인가? 미술 제도가 권위를 획득해나간 방식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일까? 이번 전시가 이것에 대한 적절한 언급이 되었으면 한다. ■ 아르코미술관

Vol.20051126e | 페이크뮤지엄 프로젝트-2005 아르코미술관 독립신진큐레이터 공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