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파트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정재호 회화展   2005_1201 ▶︎ 2005_1211

정재호_회현동 기념비_종이에 채색_259×194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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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블로그_nardoldol.egloos.com

초대일시_2005_1201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 Tel. 02_720_5114 www.kumhomuseum.com

오래된 아파트 ● 1978년, 내가 국민학교 1학년 이었을 때 우리집은 그때까지 살던 종암동의 월세방에서 새로지은 산 아래의 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비록 전세이기는 했지만 더 이상 주인집 개가 강아지를 물어 죽이는 일도 없었고 동갑내기였던 주인집 아들과의 싸움이후 사과를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집은 5층 꼭대기 층이었는데 전망이 아주 좋아서 바로 밑으로는 동네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2km 떨어진 내가 다니는 학교도 보였으며 멀리로는 이제 막 올라가고 있던 황금빛 63빌딩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국민학교 6학년까지 살았는데 그 시간동안의 나의 소년기는 나뭇가지처럼 얽혀있던 그 동네의 골목길들에게 바쳐졌다. 작년여름 다시 그 동네를 찾아갔다. 동네는 변하지 않은 부분과 변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큰길을 중심으로 하여 동네의 동쪽 사면은 산 아래에서부터 길음동과 접한 부분까지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고 왼쪽의 고려대 뒷산과 마주한 부분은 아래쪽부터 아파트가 확장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 골목길들을 다시 밟아 보리라던 희망은 부서졌지만, 다행히도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집의 현관문 앞에 섰을 때 나는 한동안 망연하여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유년기가 모두 그 문 안에 있었고 금방이라도 문이 열리고 소년이었던 내가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실 모든 것이 그 속에서 시작되었고 아직 그곳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작년 여름까지 나는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청운시민아파트를 들락거렸다. 철거예정이었던 그 아파트에서 나는 이미 떠난 사람들의 흔적과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의 절규를 마주했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나의 과거였고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현재였으며 또 그들의 미래이기도 했다. 청운시민아파트에 대한 작업 이후 나의 관심은 남아있는 다른 아파트들에게로 이어졌다. 내 기억속에 있었던 아파트들을 먼저 찾았고 지도를 보고 동사무소에 수소문을 하면서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의 아파트들을 찾아다녔다. 낙산아파트는 이미 철거되어 공원이 되었고 청운시민아파트, 한남맨션, 삼일아파트, 잠실주공아파트는 조사를 다니던 기간동안 사라져갔다. 그러나 아직도 건재한 많은 아파들 들이 남아있었는데, 회현시범아파트, 중산시범아파트, 대성맨션아파트, 대광맨션아파트, 수색아파트, 옥인시범아파트, 연희시범아파트, 금화시민아파트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이 재건축 추진 중이라서 언제 없어질지 모를 아파트들이긴 하지만 그 아파트들을 찾아다니면서 '오래된 아파트는 도시빈민들의 주거이며, 노후하여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시급히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어야 하는 도시의 흉물이다' 라는 일반의 인식에서 벗어나서 오래된 아파트가 가진 풍부한 의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은 곳들이 아직도 훌륭한 공동주거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지금은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공동체로서의 삶의 양식이 보존되고 있음을 목격하였으며, 비록 좁지만 인간과 자연에 대한 조화와 배려라는 건축의 이상이 담긴 아름다운 공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재호_대성맨숀 아파트_폼보드 종이에 채색_270×194cm_2005
정재호_천변(川邊)호텔-삼일아파트_종이에 목탄, 먹, 채색_194×259cm_2005

제인 야콥스(J.Jacobs)에 의하면 도시가 노후화되는 것은 도시의 건물이나 구조물이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도시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 지역이 노후화되어 간다고 한다. 이 말은 오래된 아파트들이 철거대상으로 내몰리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오래되어 사람이 살기에 위험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서울이라는 거대 자본주의 도시 구조 속에서 더 이상 경제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 늙은 아파트들은 관리가 부실해지고 이내 황폐해지게 된다. 경제적 의미에서는 야콥스의 견해대로 서민아파트들은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 이 도시의 부속들에 대해 멀찌감치 보고 흉물스럽다고 말하기 전에 그 앞을 바싹 다가서서, 그리고 그 안을 거닐면서 낡은 창틀과 어지러운 베란다와 스티로폼 화단으로 이루어진 그 공간을 직접 보고 그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 이 작은 책과 그림들은 1년여의 기간동안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들을 만나면서 모아두었던 사진과 글과 그림을 정리해본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를 미술이라는 제도 속으로 끌어 내 오면서 자칫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오독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조악한 사진과 졸필을 덧댄다.

정재호_리버사이드 호텔Ⅰ,-중산시범아파트_종이에 채색_182×454cm_2005
정재호_황색선이 있는 풍경-잠실주공아파트_종이에 목탄, 먹, 채색_130×192cm_2005

금화시민아파트와 냉천동 골목 ● 서대문 로터리에서 독립문으로 차를 달리면서 왼쪽 차창 밖을 보면 그리 높지 않은 산의 꼭대기에 버티고 있는 두 채의 아파트가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낡은 그 아파트는 왼쪽에 신축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산에서 한쪽으로 밀려나 있는 것에 반하여 마치 그 산을 소유하기라도 하듯 당당한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아파트를 바라보는 느낌은 오히려 내가 그 아파트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듯한 묘한 시선의 전도를 경험하게 된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로 향하는 길을 올랐다. 아파트를 향해 가면서 나는 서울에 '냉천동'이라는 동네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마을버스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도로 주변에는 강북의 여느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주하고 정리되지 않은 풍경이 가득하다. 그러나 길을 따라 10분정도 오르게 되면 도로를 경계로 하여 새로 신축한 고층아파트 단지로 구획된 오른쪽 면과 재개발 예정지인 왼쪽 면으로 극단적으로 나누어진다. 왼쪽의 골목길로 들어서 보았다. 좁은 골목길, 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을 피자배달 오토바이가 힘겹게 오르고 있고 그 앞으로는 꼬마들의 놀이가 한창이다. 아이들은 주어진 공간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놀이공간을 만들어낸다. 길이 경사지면 경사를 이용하여, 계단이면 계단을 이용하여 아이들은 그들만의 놀이를 진화시킨다. 피자배달부에게는 끔찍한 길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이 변화무쌍한 공간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냉천동의 골목길은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구별이 모호하다. 화분이 줄지어 있는 골목길은 행인에게는 꽃길이겠고 집주인에게는 집 앞의 마당일 것이다. 골목이 좁아지는 곳은 마치 어느 집 앞마당에 침입한 듯 하다가도 이내 길은 다시 넓어지고 막다른 골목의 대문 옆으로 난 숨어있는 길로 다시 이어진다. 그 골목길은 수많은 꺾임과 접힘을 통해 무수히 많은 균열과 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틈들은 마치 프렉탈 구조와도 비슷해서 좁은 공간속에 수없이 많은 접힌 공간들을 품고 있다. 그 공간들은 온전히 이 곳 주민들의 몫이다. 주민들은 이런 공간을 이용하여 화분을 올려놓고 그 속에 텃밭을 일구고 정원을 가꾼다.

정재호_냉천동기념비-금화시민아파트_종이에 채색_130×194cm_2005

금화아파트, 60년대 말 서울시의 시민아파트 계획에 의해 지어졌던 시민아파트중 가장 먼저 지어진 아파트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는 19동으로 850가구로 이루어진 대규모 단지였다고 한다. 당시 시민아파트는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 시에서 프레임을 만들어 주면 그 속 구조를 직접 입주민들이 채워넣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의 전면은 조금씩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가진 창문으로 채워져 있고 어떤곳은 벽면마저도 그냥 뚫려있는 경우조차 있다. 두 동중 한 동은 하늘색 페인트로 전면이 칠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늘색으로 칠해진 건물은 절대로 고급스런 이미지도, 하늘이 가진 어떤 관념도 갖지 못한다. 그 하늘색의 벽에 창문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걸려있다. 남루함의 극단까지 가는듯한 아파트의 모습은 한편으론 초월적이기까지 하다. 아파트를 올랐다. 바깥으로 크게 돌출되어 있는 계단실에는 주민들이 키우는 화분들이 놓여져 있다. 철지난 상추가 옆구리를 모두 덜어내고 공중으로 머리를 내민다. 서울의 하늘 위를 지나가는 바람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불어와 상추잎을 흔든다. 옥상의 바로 아래 층 열린 문 사이로 교인들의 찬송가 소리가 새 나오고 있었다. 옥상에 오르니 서울 도심부의 빌딩숲이 펼쳐지고 인왕산을 건너뛰어 신촌과 마포, 그리고 남산타워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끊김 없이 펼쳐진다. 35년동안 변해왔을 도시의 모습을 이 아파트는 산 위에서 묵묵히 목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 풍경을 보며 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정재호_청풍계(淸風溪)-청운동공원화프로젝트_종이에 목탄, 먹_194×259cm_2005
정재호_종로 기념비_종이에 채색_200×200cm_2005

청운동 공원화 프로젝트 ● 아파트는 늙는다.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시민아파트들은 이제 '도시의 흉물'로 일반에게 통용될 만큼 그야말로 낡아있고 '안전진단 결과 붕괴위험이 있으니 허가 없이 출입할 경우 .... 에 의거 처벌하겠음' 이라는 경고장은 그 낡은 건물을 떠나야 하는 공적, 사적 이유를 제공해준다. 철거계획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떠난 집은 벽이 갈라지고 물이 스며들고 잡초가 자란다. 서민들에게 안정된 주거를 제공한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지어진 시민아파트들. 서울의 야산마다 전시라도 하듯 올려 세워졌던 시민아파트들은 이제 늙어버렸고 그 집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청운시민아파트를 들락거렸다. 전시에 쓸 오브제를 주워 몰래 차에 싣다가 2층 복도에 나와 있던 아주머니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다그치던 아주머니는 어느새 자신들이 처한 사정을 나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30대 아주머니가 된 그분에게는 청운아파트란 단지 사는 주거일 뿐만 아니라 삶의 기억들이 빼곡히 기입된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재건축이 불가능한 아파트에서 그곳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계속 이곳에 살 수 있도록 아파트 아래쪽에 빌라를 지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1년이 지난 후 몹시 덥던 7월의 어느 날 나는 아파트가 있어야 할 자하문 터널 위의 산위에 주황색 포크레인 몇 대가 부지런히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불안하지만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았던 아파트는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고 터널의 입구는 서울의 여느 터널과 다르지 않은 풍경으로 되돌려졌다. 낙산아파트가 있던 자리가 낙산공원이 되었듯이 청운아파트가 있던 자리도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고 서울시는 사직공원에서 인왕산 허리를 가로질러 청운동에 이르는 공원띠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30여 년 전 시민아파트 건설과 함께 서울의 산등선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이제 산을 내려와서 흩어져 버렸고 낡은 것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이 도시의 계획과 더불어 사람들을 밖으로 밖으로 밀려난다. ● 낙산공원에 올라 보았다.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공원부지의 형태를 통해 어렴풋이 이 곳에 서있었을 아파트를 가늠해 본다. 공원의 가운데에 있는 전시관에는 낙산아파트의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점이 걸려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낙산의 역사는 6.25 이후 무허가 판자촌으로 덮였다가 낙산아파트가 세워지고 그것이 헐리면서 낙산의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는 짤막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 기록은 낙산아파트를 실패한 역사로 기록하고 있었고, 이 산이 공원화되어 모든 시민들에게 돌려졌음을 홍보하고 있었다. 낙산의 정상에 오르니 강북 시내의 풍경이 펼쳐진다. 새까맣게 뒤덮은 빌딩과 주택들 사이사이로 흰색 아파트들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 풍경은 한때 낙산아파트가 보는 풍경이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낙산아파트를 보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 청운아파트가 있던 자리를 찾아가 보았다. 아파트가 사라진 곳은 생각보다 휠씬 좁은 곳이다. 석축위로 남아있는 초소 건물로 건물들의 위치를 추정해 본다.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는 35년동안 안고 있었을 암벽이 드러나 있었다. 청운동 일대는 옛날부터 청풍계(淸風溪) 라 하여 문인 묵객들의 거닐면서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복개되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청운시민아파트 아래에 있는 골짜기 일대로 추정된다. 이 계곡이 청계천의 발원지라는 사실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겸제 정선은 [인왕제색도]와 함께 [청풍계]라는 그림을 통해 이곳의 풍광을 서늘한 필치로 예찬했다. 이제 이곳에 공원이 조성되면 겸제의 그림에서와 같이 비온 뒤 구름이 걷히고 깨끗한 고급 빌라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쾌적한 동네로 거듭날 것이다. 낙산의 경우처럼 풍경은 되돌려질 것이고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서 사람들은 인왕산을 오르고 여가를 즐기며 서울의 가운데에 이렇게 멋진 자연환경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것이다. ■ 정재호

Vol.20051201b | 정재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