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處

강미선 개인展   2005_1201 ▶︎ 2005_1222

강미선_도자소묘1_도판에 안료_32×32cm_2005

초대일시_2005_1201_목요일_05:00pm

포스코미술관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 포스코센타 서관 2층 Tel. 02_3457_1665

處 處 _ 인연 ● 예술이 생활과 다르지 않고 생활이 예술과 다르지 않은, '삶을 닮은 예술 (lifelike arts)'을 지향하는 작가 강미선이 세상의 구석 구석, 눈길닿는 모든 곳을 의미하는 '處處'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열두번째 개인전을 준비했다. ● 생활 이야기 강미선의 이름 석자는 어느덧 우리들의 뇌리에 '종이작업', '일상'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자 예술가이도 한 그녀는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자연에 순응적인 작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그려내기 위해 종이를 택했다. 직접 종이를 만들거나 혹은 두겹 세겹 배접의 과정을 통해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약간의 부족함, 틈새를 채워간다. 자연상태 그대로의 것에 새로운 것, 내 것을 가필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속에 살짝 비워진 그 틈을 메우는 것이 자기 작업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기가 막히게 단순하다. 무엇하나 넘치는 구석이 없다. 오랜 시간 수고스러운 노고를 통해 다듬어진 종이 위에 일기일획(一氣 一劃)의 심정을 품은 가장 단순하고 깊이있는 몇 가닥의 선으로 사물들의 형상이 살아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종이작업중 '나의 방'이 눈길을 끈다. 꽃가지. 나뭇잎, 배, 편지, 소반, 풍경, 항아리, 가방 등 우리들의 눈이 쉽게 가 닿는 그곳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조각조각 퍼즐처럼 맞춰져 고스란히 작가의 일상으로 남는다. 각각 10점의 화면은 마치 상관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또 때로는 알아채기 힘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내게도 너무 친숙한 모든 사물들의 은근한 소근거림 속에서 내 일상과 다르지 않은 예술가의 일상이 반갑다.

강미선_나의 방1 부분_한지에 먹_98×1260cm_2005
강미선_나의 방2_한지에 먹_65×1460cm_2005

도자소묘 ● 작가 강미선은 우직한 사람이다. 탐구열이 강렬한 그녀는 한번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하면 누구도 말릴 재간이 없다. 세상에 대한 습관적인 기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면, 불혹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움을 향해 불타오르는 그녀의 못말리는 열정도 십분 이해가 된다. 이제 작가는 20여년간 소중한 아껴웠던 흙과의 인연을 세상에 처음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도자기 소묘'로 이름붙여진 도판(陶版) 작업이 그것이다. 종이작업으로 단련된 종이와 먹, 그리고 모필을 다루는 그녀의 솜씨가 이제 흙과 불의 예술로까지 연장되었다. 먹과 물의 미세한 어울림, 이를 녹녹치 않게 받아들이는 종이의 모습은 불과 시간이 뿜어내는 자연 멋대로의 운용을 그냥 담담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흙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마 속에 던져진 미완의 작품들을 완성시키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예측할 수 없는 불의 기운을 최상의 조건으로 맞추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 후 참으로 길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불과 흙, 시간 그리고 안료의 완벽한 조화는 자연이 빚어주는 아름다움이다. '도자소묘' 작업을 통해 기다림과 체념이라는 덕목을 철저하게 배울 수 있었다는 작가는 인간 능력으로는 도저히 통제하고 제어할 수 없는, 하지만'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자연이 주는 뜻밖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었다. 도판 위에 오롯이 드러나는 그녀만의 그릇들은 지극히 감각적이다. 종이작업이든 도판 작업이든 최소한의 선과 색으로만 묘사되는 그녀의 사물들은 대상의 불필요한 요소들이 과감히 제거된 후 남겨진 압축적인 결과물이다. 마지막 순간 햇빛에 드러난 작품이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끝없이 파고드는 예술가적 열정은 어쩜 단순함을 선호하는 그녀의 심성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삶과 예술은 단순함으로 더욱 빛이 난다.

강미선_천자문_목판, 한지에 먹_39×122cm_2005

인연 화가들은 자신과 닮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자기 같은 그림들을 그려낸다. '인연'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 강미선, 그녀의 그림들 역시 세상과 맺은 인연의 기록들이다. 살림을 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하나쯤 탐을 낼 법한 제대로 된 명품 그릇세트 한벌 마련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고집. 매일 씻고 만지며 때로는 맛있는 반찬을, 때로는 따뜻한 차를 담아내는 접시 하나, 컵 하나가 그녀에게는 그저 '그릇'만이 아니다. 세상 어느 구석을 떠돌다가 제 품으로 들어온 작지만 소중한 인연이기에 그녀의 그릇들에는 나름의 개인사와 추억이 있다. 늘 비워져 있지만 동시에 늘 채워져 있는 그릇들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물들의 가치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그림에는 무엇하나 넘치거나 과하지 않고, 딱 좋을만큼만담아내는 단정한 풍요가 있다. ■ 김윤희

Vol.20051202a | 강미선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