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혹은 아홉아닌

박소영 채색展   2005_1213 ▶︎ 2005_1224

박소영_아홉, 혹은 아홉아닌-꿈나무_설치, 장지에 줌치기법,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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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213_화요일_05:00pm

갤러리 PICI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2-22번지 Tel. 02_547_9569

"구체적 불확실성"의 꿈나무 ● 박소영의 관심은 끝없이 "사불상(四不像)"과 "구불상(九不像 : 박소영의 신조어)"-"아홉, 혹은 아홉 아닌"을 향해 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이토록 "불상(不像-닮지 않음)"에 잡아두는 것인가? 그의 작업을 보면서 나는 줄곧 그가 이끄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단서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 이번 전시에 내보이는 그의 작업은 매우 다양하고, 또 일부는 빛의 반사를 이용한 실험적 작업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구체적 불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다. "구체적 불확실성"이란 내가 그의 작업을 규정한 조어이며, 그의 역설적 화법 "아홉, 혹은 아홉 아닌"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단서이다.

박소영_아홉, 혹은 아홉아닌-꿈나무_수제 한지에 채색, 감물, 은세공_23×33cm_2004
박소영_아홉, 혹은 아홉아닌-꿈나무_수제 한지에 채색, 감물, 은세공_35×35cm_2005

박소영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창조적 영감의 원천을 "사불상"에서 찾고 있다. "사불상"은 실존하는 동물이다. 원산지는 중국으로 당나귀, 말, 소, 사슴의 특징을 동시에 닮아 사불상이라 한다. 몸통은 당나귀, 발굽은 소, 머리는 말, 뿔은 사슴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다고 한다. ● 그의 작업은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이미지, 즉 "사불상"에 근거하지만,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사불상"이라는 그 장난 같은 "이름"에 있다.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닮아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예술적 상상이 필요한 부분이며, 예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그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사불상"이라는 실재에서 벗어나 이것으로부터 확대된 이미지인 "구불상"을 이야기하게 된다. "구불상"이란 이미 현존하는 대상이 아니다. ● 이쯤해서 우리는 박소영이 말하는 "구불상"이란 존재에 대한 긍정과 동시에 부정을 통한 역설적 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하나의 '화법'에 불과함을 눈치 챌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마거사의 묵언( 言)이 문수(文殊)의 지혜로 가득 찬 수 없는 말보다 더 근원적인 본질을 드러낸다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박소영_아홉, 혹은 아홉아닌-금강룡_수제 한지에 채색, 감물, 은세공_23×33cm_2004
박소영_아홉, 혹은 아홉아닌-금강룡_수제 한지에 채색, 감물, 은세공_25×33cm_2005

우리가 그의 '화법'을 이해하자면, 그가 말하는 "아홉, 혹은 아홉 아닌"이라는 개념에 매이면 안 된다. 그 개념에 얽매이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미로를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가 창조하는 예술의 세계는 "아홉, 혹은 아홉 아닌"이라는 개념을 통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다만 이 개념은 그의 예술세계로 들어가는 계기만을 촉발 할뿐이며, 이 개념의 세계가 그의 예술세계를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사벌등안(捨伐登岸)"이라는 선종의 방법론을 연상하게 한다. ● 그의 이러한 방법론은 또 다른 예술창작의 비밀을 담고 있다. 그것은 예술창작 과정에 있어서 그가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작가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심미적 이미지(心象)와 그 표현은 매우 구체적이고 선명하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된다는 것이다. ● "구불상"은 "사불상"이 그러하듯 사슴이라는 구체적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어느 것 하나 닮아있지 않다. 그리고 이 닮아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예술가는 창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감상자는 작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사슴 아닌 사슴은 작가의 감흥에 따라 자유롭게 이미지를 변신한다. 사슴의 뿔은 불상 뒤편의 화염문(火焰紋)이 되고,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왕관이었다가,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사슴 아닌 사슴은 동해에 떠오르는 아침 해였다가, 연꽃으로 피고, 봉황이 되어 나른다. 사슴 아닌 사슴은 나무였다가 용이 되어 하늘을 나른다. "아홉 혹은 아홉 아닌", "구불상"은 작가의 꿈, 초월적 인격에 대한 염원 같은 것이다.

박소영_아홉, 혹은 아홉아닌-꿈나무_설치, 장지에 줌치기법,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5

작가는 이 구체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이미지로 변신하는 "구불상"을 은세공 조각으로 캐릭터처럼 만들어 작품에 튀어나오게 붙였다. 이 이미지는 빛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연출한다. 뒤에 비치는 그림자는 구체적으로 표현된 "구불상"의 캐릭터와 "구불상"이 노니는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 이미지의 "구불상"은 거칠고 모호한 대지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노닌다. 거칠고 모호한 대지는 인공의 가탁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의 세계 혹은 혼돈의 세계를 상징하며, 구체적 이미지의 "구불상"은 대상과 일체화된, 즉 "물화(物化)"의 과정을 거친 작가이거나, 관객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그 세계는 장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며, 심재(心齋)나 좌망(坐忘)의 방법론으로 도달하는 순수 자유가 실현되는 장소이다. 그 세계는 논리적 언어로 확정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므로 불확실하며, 그 세계에 들어가는 이미지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으로부터 촉발된다. ● 이러한 세계는 자오적(自娛的)인 세계이다. 박소영이 창조하는 세계는 누군가를 위한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과장되거나 장식화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순수할 수 있다. "구불상"을 통하여 진정으로 참된 자유의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창작세계를 유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김백균

Vol.20051213a | 박소영 채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