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ia

김진성 회화展   2005_1221 ▶︎ 2005_1227

김진성_theori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05

초대일시_2005_1221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2층 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2층 Tel. 02_734_1333

바라봄 - "theoria" ● "theoria", "觀"! "觀"은 "見"이 아니다. '견'이 보여 지는 것을 보는 것이라면, '관'은 보여 지는 것 때문에 감추어져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보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보여 지는 것을 보는 나와, 그를 넘어 보이지 않음을 보려 하는 나는 같은 나일까? 만약 봄의 주체인 내가 둘이라면 마땅히 그에 따라 대상도 둘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봄에 있어서 하나의 주체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으로서의 대상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의 별개의 두 가지 대상이 존재하는 것일까?

김진성_theori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36cm_2005
김진성_theori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02×36cm_2005

나는 땅과 사람과 하늘을 본다. 나는 땅에서 과연 무엇을 보는 걸까? 땅이 생산하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 나는 사람에게서 과연 무엇을 보는 걸까? 그 사람들이 각자 보여주는 개성들과 이루어낸 업적, 그리고 나와의 관계! 나는 하늘에서 과연 무엇을 보는 걸까? 구름과 비행 물체! 결국 나는 땅과 사람, 그리고 하늘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땅과 사람과 하늘이라는 바탕 위에 남겨진 흔적만을 보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나는 문득 하늘과 사람, 그리고 땅의 그 자체로서의 眞實이 보고파진다.

김진성_theori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324cm_2005
김진성_theori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1×36cm_2005

對象의 진실을 보기 위해, 나는 보여 지는 것으로서의 象과 보여 지는 것을 너머서 상존하는 象을 각기 따로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중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에 귀속시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나는 그 둘을 간극 없이 동시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과연 그럴 수는 있는 걸까? 흠~! 이제 나는 대상에 따라 흔들리는 나를 가지고는 보여 지는 상으로부터 나 자신이 자유로워 질수 없음을 안다. 그럼 이제 내가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김진성_theori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60cm_2005
김진성_theoria_종이에 연필_20×36cm_2005

나는 나 자신을 '觀'하려 한다. 우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자. 바라보기 싫어 외면했던 나 자신의 모습조차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항상 아만과 편견, 그리고 독단으로 내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었던 대상들 역시 모든 것이 경이로웠던 初心으로 돌아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그러면 나는 보려는 나와 보여 지는 대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바라봄'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 김진성

Vol.20051220a | 김진성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