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몸으로 To the Nature with Body

전원길 개인展   2005_1217 ▶︎ 2006_0131

전원길_거북이와 소나무, 계룡산_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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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217_토요일_04:00pm

자연미술세미나_2005_1222_목요일_05:00pm 발제_전원길_'1980년대 野投 자연미술의 방법론적 특성과 확산-본인 작업을 중심으로' 질의자_김미경_김성호_이응우 / 진행_우무길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경기 안성시 미양면 계륵리 232-8번지 Tel. 031_673_0904 www.sonahmoo.com

자연미술 ● 적나라한 사적 경험을 거침없이 날려 보내는 이 시대의 많은 작가들의 작업과, 방향을 잃은 인간세상의 혼돈을 목쉬게 노래하는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간과 자연으로 하여금 제자리를 찾게 함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자연미술의 가치는 찾아질 것이다. 자연미술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틀 속에서 미술을 통한 인간성의 구현이라는 대전제를 향해나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태도가 한 사람 한사람의 삶 의 단면에 집중하며 미술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보편적 환경인 자연을 이야기하면서도 예기치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간다는데 자연미술의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원길_고추, 공주_1986

자연미술지대 ● 자연미술을 위해 자연현장 속으로 들어갈 때는 평상시와는 다른 정신상태가 된다. 소풍이나 채집, 산책을 위해 숲 속을 거닐면서 자연을 대하는 것 보다는 예술적 작업 의지가 예민해진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곳에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이러한 야투 사계절 연구회 분위기로 인해 오랫동안 다른 자연미술 작가들과 함께 작업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이자 서로의 작품에 대한 감상자였던 당시의 멤버들은 서로가 통하는 하나의 정신적 공간을 형성하여 그 안에서 서로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나갔다. 자연미술은 山川草木 뿐 아니라 자연생태작용의 환경이 되는 빛, 바람, 소리, 색깔, 그리고 자연 현상 속에 내재된 질서 모두와 관계하며, 자연은 인간의 접근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품에 참여한다.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기위해서는 실내작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즉 기술적, 감각적 손재간을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회화 제작 방식과 는 다르며 야외공간에 인위적 구조물을 들이밀면서 개념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야외설치와도 거리를 유지한다. 자연미술은 자연을 단지 대상과 재료로만 다루지 않으며, 자연을 정의하거나 해석하지도 아니한다. 자연현장에서 나무와 그림자, 풀, 돌, 파도 등을 통해 발생되는 아이디어는 자연과 나의 연결루트를 만들고 이런 연결 상태(방식)가 곧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즉 자연과 인간의 생각이 시각적 개념적 결합을 이루며 자연과 인간사이의 '미술상태美術狀態'가 된다. 이러한 결합 상태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하거나 자연재료를 가지고 설치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나타나는 양상과는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어느 한 쪽이 또 다른 한 쪽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두 가지의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하나로 존재하면서도 각각의 특질을 서로 훼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자연과 허심탄회한 독대의 시간을 가짐으로서 자연의 있음을 보고 동시에 나의 있음을 보려고 한다. 자연이 스스로 내어주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본성의 반응을 자연에 조응시켜야만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려낸 작품을 보게 된다. 자연의 내어줌과 나의 받아냄의 상태가 간결하고 담백한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의 본성적 교감을 실현한다. 자연미술 작업은 눈 보다는 마음과 정신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에 서구의 개념미술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개념미술이 현대미술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다 잘 이해되고 그 의미가 살아난다면 한국의 자연미술은 원소재源素材인 자연과 더 많이 관계한다. 80년대 자연현장에서의 작업들은 개념적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작업 자체가 그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에 자연미술에 접근하기 위한 선행학습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원래 심성이 자연과 쉽게 공조하기 때문에 사변적 해석을 통하지 않고도 직접 자연미술과 조우 할 수 있고, 자연미술의 간결한 표현 방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자신의 경험으로 치환置換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 미술이 직접적인 접점을 찾아냄으로서 당사자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미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자연의 현상現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쉽게 그 내용이 전달되어져 오는 특성으로 인하여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의욕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마음먹음이 비록 실행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적극적 동감의 표시이며 살아있는 예술적 감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원길_낙엽. 돌, 동경_2004

단순논리 ● 돌아 보건데 나의 자연미술작업들에는 자연과 나의 몸 혹은 드로잉이 서로 개념적, 언어적, 시각적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의미를 유발시키는 작업이 많았다. 나는 이러한 작업을 '단순논리'에 의한 작업이라 부르는데, 자연과 작업행위가 투명하게 겹쳐있거나 너무나 일반적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쉽게 보는 사람에게 다가며 이해하는 각도에 따라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자연과 몸의 촉각적 접촉의 순간에 만남과 일체화의 개념적 의미가 발생한다. 만남의 순간에 작품은 불꽃처럼 살아나고 다른 곳으로 몸을 옮기는 순간 사라진다. 간략한 드로잉을 동반한 작업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작업에 있어서 드로잉은 자연과 몸의 접점에서만 그 역할과 의미가 살아난다. 여기서 몸은 나의 의지의 상징적 대용물이면서도 자연의 어떤 것과의 적절한 만남을 위한 재료가 된다. 자연과 내가 중간 매개물 없이 직접 몸으로 만나고 표현하는 방식은 자연과 나의 체온이 직접 맞닿는 생생한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일상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비일상적 상상력이 그 중심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뇌리 속에 자리를 잡는다. 생태적 생명성을 가진 자연과 피가 흐르는 몸의 체온이 인간의 미적 아이디어를 통하여 만난다는 측면에서 몸을 이용한 자연미술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질서가 생생하게 작용하고 있는 자연을 몸의 접촉과 드로잉 등을 통해서 그대로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자연 속에 내재된 신성神性을 기꺼워하는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명료하게 작업 속에 반영함으로서 자연과 인간과 예술의 조화로운 긴장 관계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여타의 현장 작업들과 구분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원길_풀잎, 계룡산_1989

하나되기 ● 자연이란 이 세상에서 테두리 쳐진 어떤 신성한 구역으로 분류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공물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자연을 특수 영역화 하였다. 본시 자연은 인간의 삶의 현장이기 때문에 자연을 떠난 인간을 상상 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영역과 자연을 구분하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연이라는 말 속에 순수성과 신비감 등의 부가되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본래 모습을 오히려 보지 못한다. 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에 떠오르는 것으로 작업한다. 자연을 바라보되 그 외양에 빠져들지 않고 다른 것과의 관계성에 주목하길 좋아한다. 자연이 다른 것과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동안 그것은 보이는 것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며 하나의 의미형식으로서 나의 작업 속에서 작용한다. 자연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는 동안 사람은 자연을 볼 수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막 뒤편으로 들어가야만 사람에게 내어주는 자연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만약에 자연의 내재된 실체와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작가)은 남들이 열어 보인 전례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80년대 나의 자연미술 작업들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자연과 나의 손 혹은 몸이 만난 작업, 자연물로만 된 작업, 간단한 드로잉이나 색이 가미된 작업 등이다. 어떤 방식이든지간에 모두 한 가지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되기'이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고 자연과 자연이 미술을 통해 일체화 되는 방식을 표현한 것들이다. 자연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접근 과정을 통해 '하나되기'를 시각적 개념적으로 추구한다.

전원길_호박잎, 2005

1. 달리보기 ● 등산이나 야유회 혹은 정원을 가꿀 때의 자연과 작업현장에서의 자연은 다르다. 그 경계가 분명하여 작동하는 뇌의 종류가 다른 듯도 하다. 평상시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물들과 장면들이 그림을 그릴 때의 조형적 요소들처럼 살아나고 마치 감상의 대상이던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그 속의 갖가지 것들을 직접 대하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연미술 현장에서 그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는 그 경계를 이해 할 수 없다. 자연이 내어주는 아이디어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까지의 시간은 순간이다. 이 과정은 나와 자연의 일종의 영적 대화이며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자연과 나의 작업의지가 만난다. 나의 정직성이 유지되는 한 자연은 미술작업에로의 초대를 사양한 적이 없다. 2. 다가가기 ● 세상에서 예술적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사람뿐이다. 자연의 방문자로서 나는 예술적 영감을 받아 줄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머릿속 생각들을 여기 저기 놓아보고 자연과 나의 반응을 살핀다. 나는 자연에 몸으로 다가간다. 나의 예술적 의지가 작용하는 순간에 자연과 몸은 미술 안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나와 자연은 서로를 의미 있는 상태로 만든다. 서있는 나무에 팔을 대고 선을 긋는다든지, 고추밭에 빨간 고추를 손바닥에 그린 것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젖은 모래와 마른모래를 이용하여 내 다리에 손자국 을 남긴 작업들은 이러한 관계를 잘 보여 준다고 생각된다. 3. 함께하기 ● 자연미술에 있어서 자연은 표현 대상이 아니라 작업의 주체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연으로부터 떠나는 순간 사라지는 작품이 허다하다. 자연물과 자연현상, 그리고 현장의 상황 등이 작업의 중심에서 작용 할 때 좋은 작업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연 그 자체의 현상을 미술화 하려는 일련의 시도들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과 몸 그리고 명료한 나의 의식의 참여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4. 생각하기 ● 자연과 나, 그리고 작품사이에 발생하는 의미에 관해서 '생각하기'는 작업 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서의 작업들은 의미부여의 과정을 뛰어넘어 순간적으로 비약飛躍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난 후 나와 작업사이에는 채워야 할 거리가 남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와 원인에 의해서 움직여 가고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또 하나의 파생체가 된 작품이 제자리를 잡고 완성되기 위해서는 감상자는 물론이고 작업의 당사자인 나에게 있어서도 생각하기 과정이 필요하다. 1980년대 나와 한국의 자연미술가들은 자연과의 단도직입적인 대면을 통해 작업하였고 때로는 아주 작은 풀잎을 대상으로 작품을 이끌어 내었다. 그것은 자연과의 명상적 만남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지 않고도 미술작품이 되는 서구의 실험적 방법론들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학습된 사실이 있겠으나, 우리들은 자연으로 들어가면서 선행된 학습경험들을 버리고 자연이 던져주는 것을 받아서 작업하려고 하였다. 나는 자연미술을 통해서 모든 것을 내가 주도하기보다는 자연을 작업에 적극 참여시키는 방식을 알았고, 자연의 다양한 양상들과 인간의 생각이 일정한 관계를 맺어나감으로서 의미 있는 '미술상태'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현장작업의 방법론은 실내 캔버스 작업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전원길_바닥, 금강_1982

안과 밖에서 ● 그동안 나는 80년대에 자연현장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였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주로 캔버스에 작업을 했다. 최근 몇 년간은 평면과 자연공간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자연미술은 자연현장에 나의 몸과 의식이 자연과 직접 만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고, 90년대 평면 회화작업들은 작업의 주체인 나 혹은 인간의 존재의 형식을 회화적 형식으로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1997년 이후 작업들은 작업의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자연미술의 일련의 맥락과 괘를 같이 하면서 그 연관성을 직접 찾을 수 있는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작업한 호박잎 시리이즈는 그러한 결과를 잘 반영한다. 1989년 봄 계룡산 어느 수풀 속에서 행한 이 작업은 돌 위에 자라난 쑥의 잎을 근처에서 발견한 돌로 찧어 그 형상을 바위위에 남긴 것이었는데, 화면에 풀잎을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묻혀 나가는 나의 캔버스 작업과 낙엽위에 작은 돌들을 올려놓는 작업은 서로 관련 맺고 있다. 상당기간 별개로 이루어진 작업들이지만 시간의 흐름 밖 통시적通時的 미술공간에서 만나고 다시 나의 현재 시간 속에서 작용하며 이제는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는다. 1986년 공주의 한 고추밭에서 행한 작업은 10년을 넘긴 후에야 사물의 색채를 옮겨오는 작업으로 풀려져 나왔다. 1987년 공주 신원사에서 낙엽을 따라 선을 그었던 작업은 캔버스를 대지로 삼아 움직이며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를 작은 색 덩어리로 이어가는 작업과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생각과 행함이 나의 기억 속에서 얼마만큼 살아서 다음 작업에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업의 결과들 속에서 나의 의식이 연결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랍다. 자연과 만나는 자연미술의 방식은 간결하지만 직관적이어서 때로 나를 넘어 높이 도약한다. 반면에 회화 작업은 나의 몸 감각을 훈련시키고 시감각의 흐름을 받아주면서 작업 자체의 지속적인 진화를 통해 발전한다. 나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방식은 자연성을 작업에 받아들이는 개념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나 분명한 서로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실내외를 들고 나는 작업을 통하여 이종 교배에 의한 새로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각각의 영역에서의 작업개념이 캔버스와 자연공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마치 벌레와 미생물을 통해 숙성되는 흙과 같이 비옥한 창의적 생산성을 소유할 수 있다.

전원길_배, 공주 봉황산_1986

그 동안 나의 작업들은 그것이 캔버스에서 이루어지든 자연공간에서 행해지든 나름대로의 작업논리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제작태도는 어느 것도 허투루 되어지는 것이 없는 자연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 되기'의 지속적 변주를 시도하고 있는 나는 공간과 평면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의 장을 마련한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감추고 있는 것은 없다. 자연은 언제나 열려있지만 나는 언제나 그 문 앞에 서 있을 뿐이다. 자연에서의 나의 작업은 나를 앞서나가 자연과 만나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에 대하여 피상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한번이라도 진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 세상에 내리신 아름다움을 온전히 마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는 내 앞을 가리고 선 욕심들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 전원길

Vol.20051225a | 전원길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