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염소의 전쟁. 그리고 평화

한선현 조각展   2006_0107 ▶ 2006_0127

한선현_VACANZA_나무_92×126×13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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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107_토요일_05:00pm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30

익살맞은 상상은 진정한 해학에 도달할 것인가? ● "요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이 만화 아닌가요?"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중견작가의 푸념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류의 작품들이나 표현방식에 있어서 이미 순수미술의 영역 안에서 눈부시게 활약하는 만화의 기법들이 혼성된 미술계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일축해 버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만화이건 일기이건 일간지 가십거리처럼 내뱉어 버리면 그만인 듯 미술 작품들 속에는 현실에 대한 비꼼과 가벼운 장난질 같은 것이 난무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조금 더 나아가면 비꼬는 주체가 되는 미술 스스로를 비꼬는 '이중의 허탈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도 만나게 된다. 삶과 인간과 미술을 어떤 커다란 가치의 대상으로 숭배할 필요 없다는 생각들. 잔뜩 부풀어 오른 허풍과 허위를 풍선에 바람 빼듯이 짓밟아버리고픈 충동으로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의 가닥을 잡아 위안을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오시 마모루의 '이노센스')에 나왔던 대사, '이해는 바람에 근거 한다'를 떠올리며 생각해보게 된다. 작품 고유의 힘은 간데없고 어떤 희망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읽어내려는 관객의 애달픈 바람만 남는 것 같다.

한선현_지구는 둥글다_나무_지름 48cm_2005
한선현_신문보기_나무_25×30×10cm_2005

한선현의 작품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다. 염소를 주인공으로 한 은유법이 그렇다. 단순하면서도 맛깔스럽게 목재를 요리한 작가의 솜씨 또한 그러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서 염소는 인간의 삶을 산다. 신문을 읽고 술을 마시고 전쟁도 한다.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염소는 그 단순한 장면 하나로 많은 의미를 유추하도록 이끈다. 아슬아슬한 삶. 상대방을 만나면 싸워 이겨야만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삶. 외로운 삶 등 등.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염소는 게을러 보이기도 하고 지혜롭기보다 약삭빠르기만 한 것 같기도 하며 때론 귀엽고 때론 멍청해 보인다. 통합되는 정서는 웃음을 자아내는 익살과 따뜻함이다.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정서가 묻어있는 부분이다.

한선현_총과대포를 쏴대는 교양없는 염소들_나무_73×100×13cm_2005
한선현_탱크-매달리기_나무_38×48×10cm_2005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작품들임에도 하나하나의 작품은 서로간의 개연성에 있어 느슨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유일한 분단 상황인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받아들이기 싫더라도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주제는 인간의 삶에 본질적으로 내포되어있는 것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사랑과 분노와 같은 성질의 것이다. 한선현이 작품을 통해 내세우고 있는 주제는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안타깝게도 피상적인 접근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관찰한 삶의 표정들이 그렇고 전쟁의 표상들이 그렇다. 어렵게 포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 미술의 소재가 되는 삶의 속내들이지만 그 접근의 깊이는 작가 스스로 충분히 숙성시켜야하고 때로는 절실할 정도의 진지함이 요구된다. 한선현의 작품에 일상의 순간 포착과 폭력과 슬픔 또는 아이러니가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동과 숙연함 보다는 가벼운 웃음과 동의에 그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한선현_결투_나무_40×45×10cm_2005
한선현_우리는간다_나무_52×38×10cm_2005

이제 출발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한선현의 작품이 가진 특성과 관련하여 가능성을 내다보고 싶다. 그가 다루는 목재라는 매질은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장인적인 손길을 요구하는 까닭에 많은 작가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조각가 한선현'임을 내세우는 그에게 노련한 장인의 손맛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긍정적인 시선과 위트를 동반한 상상력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장점임에 틀림이 없다. 모순과 부조리함으로 점철되어있는 것이 인간 삶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전제한다면 부정적인 빈정거림이나 체념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삶에 대한 해석과 반응에는 여러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 그 중에서 조각가 한선현에게는 그만이 풀어갈 수 있는 숙제를 떠넘기고 싶어진다. 호쾌하고 진지한 유머. 진실한 의미의 해학을 품은 작업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다. 해학은 따뜻함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예술적인 가치이다. 삶과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동반되어질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며 거대한 주제에서 내려와서 자기 자신의 밑바닥으로부터 출발하는 세심한 시선은 또 다시 인간 총체를 다룰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이것은 그가 만들어 낸 한 조각의 해학으로 말미암아 삶을 대하는 따스하면서도 냉철한 도전을 얻어가고픈 마음을 실은 부탁과도 같다. ■ 신혜영

Vol.20060107b | 한선현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