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적 향기-진채

책임기획_김미령   2006_0111 ▶︎ 2006_0124

이창민_문방책가도_지본채색_90×17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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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111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1. 묻혀진 것들에 대하여 - 세필(細筆)을 들면서 ● 누구나 옷장 속에 고이고이 모셔둔 물품이 있을 것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젓이 방안에 꺼내 놓기는 왠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이 느껴지는 그러한 물품들... 이러한 물품들은 대개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더욱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종국엔 생각 없이 혹은 홧김에 버리게 되거나 아니면 남에 의해서 버려지게 되는 운명에 처할 물품일 것이다.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나를 봐달라고 유혹하는 이 시대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게 느끼게 되는 것일 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현명한 미감을 원하는 문화인이라면 "옛 것의 의미를 넓고 깊게 두드려야 새 것의 참의미를 알 수 있다.(溫故而知新)"라는 경구를 다시 새겨야 하지 않을까 한다. ● 오늘 다시 옷장 속에 가두어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물품에 손을 대어 본다. 손때만 가득히 묻혀둔 옷장 속 물품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아직은 부족한 세필(細筆)로 조금씩 조금씩 털어 보고자 한다.

정해진_군학도_견본채색_53×141cm

2. 전통 채색화 ● 채색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융성했던 때는 귀족문화와 불교가 국교로 자리 잡고 있었던 고려시대로 보고 있다. 당시는 문화의식이 놓은 귀족들에 의하여 예술이 장려되었고, 불교는 극락세계의 장엄 화려한 표현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화려한 색깔로 묘사하는 화법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통일신라시대 역시 채색화가 융성했던 시기이다. ● 채색화의 이러한 유구한 전통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과 이를 몸소 실천하던 문신, 사대부들의 가치관에 의하여 암흑기를 맞게 되었으나. 조정과 왕실 그리고 일부 사찰을 장식하던 벽화나 병풍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고 해방을 맞이하면서 채색화는 왜색이라는 왜곡된 평가로 인하여 어떤 이는 민족적 양심에서 어떤 이는 기회주의적으로 채색화의 길을 포기하고 수묵화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 전통 채색화는 근대기 오랜 시간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게 되었다.

김경은_일월오봉병_견본채색_162.6×337.3cm

이렇듯 사장되었던 전통 채색화에 관한 관심과 연구는 1977년 조자용씨 외 사람들에 의하여 일본 5개 도시 순회 전시와 함께 다시금 빛을 보게 되었고, 금년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있던 "민화야 놀자"전으로 근 30여년의 먼지를 덜어내게 되었다. ● 이번 전시에서는 수복강녕(壽福康寧), 초복벽사(招福?邪)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기(祈)와 장식적인 요소와 쓰임(用)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조선시대 전통진채 중 「일월도」, 「십장생과 군학도」, 「책가도」를 선보임으로써, 화려한 색채로 우리 조상들의 거주공간을 장식하고 공간창출을 했던 그 때 그 공간으로 인도하고자 하며, 아울러 이러한 전통 색채에 대한 미감을 통해 조심스럽게 한국의 전통 색상(황(黃),청(靑),백(白),적(赤),흑(黑):오방색)의 철학적 의미와 미적인 의미의 연관성을 묻고자 한다. ■ 김미령

Vol.20060112c | 영속적 향기-진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