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하며 흐르다

박영호 개인展   2006_0112 ▶︎ 2006_0118

박영호_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83×116cm_2005

초대일시_2006_0112_목요일_06:00pm

롯데갤러리 대전점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042_601_2827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위해 새롭게 부여된 작은 구멍과 스밈 ● 인간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 순간을 함께 하거나 한 생명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눈앞의 사건에 감정을 가지게 되면서 삶과 생명, 그리고 죽음의 문제는 인간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심각한 물음이 되어버렸다. 이후로 무수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그 물음은 생명을 부여받은 것에 대한 대가인양 누구에게나 한 뭉텅이 뒤얽힌 실타래로 던져진다. 언제인가부터 인간의 성찰과 이해를 담는 그릇 노릇을 시작한 예술이란 것도 결국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 그 문제를 풀어보려는 인간의 고민이 만들어낸 긴 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이 무엇을 담고 있는가와는 상관없이 결국은 탄생과 죽음, 혹은 삶에 대한 물음이 본질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박영호_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41×53cm_2005
박영호_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32×41cm_2005

박영호의 그림도 삶과 생명의 문제를 겨누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이래 그의 관심이 줄곧 일정한 탄착군을 만들고 있음을 작업의 이력이 확인시켜준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에 연속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꽃, 열매, 낙엽과 같은 소재이다. 이들은 생명의 가장 직접적인 산물이면서 동시에 탄생과 성장, 절정, 그리고 쇠락이라는 생명체가 겪는 불가피한 숙명의 가장 보편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 그가 이 상징물들을 통해 삶의 문제를 추적하는 방식은 이 땅에 생겨난 생명이 나고 생장해서 소멸하기까지 하나의 구체적 사물로서 부여받고 점유하는 물질성과 공간, 그리고 시간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화면은 생명체가 현실에서 점유하는/점유했던 공간이 되며, 화면에 표현된 것은 그 생명체가 부여받은 물질성/형상인 동시에, 나아가 물질과 형상이 현실에서 그 생명체가 부여받은 시간 동안의 변화하는 양상의 집적인 것이다. 종국적으로 현실에서 하나의 존재가 남겨 놓을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불가지의 피안이 결코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것이라면, 생명과 존재의 의미는 현실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는 탄생, 성장(변화),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찰나일지언정 그 생명체가 점유했던 공간과 시간, 그리고 변화의 추이는 개별자로서 그 생명이 존재했었음을 웅변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그리고 박영호는 명백히 존재했었던 그 생명체의 흔적을 화면에 집적하는 것이다. ● 그러고 보면 그가 현실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어버리고 만 듯 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미처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결정적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생명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생명체의 물리적, 현실적 조건을 통해 삶과 생명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영호_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128×190cm_2005
박영호_통과하며 흐르다_2005_부분

한 두 해 전까지 그의 작업은 대체로 이렇게 생명체가 현실에 남겨놓은(혹은 현실에 남아있는 생명체의 흔적을) 조형화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화면은 꽃잎이나 잎사귀, 생명체의 또 다른 기관(器官), 혹은 미생물 등의 형상이 등장하며, 그것이 선, 색, 형과 같은 회화의 요소들로 구성되는 양상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그의 작업들은 앞에서 이야기하였던 자신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의 실험에 기울어져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화가가 자신의 고유한 전달언어를 만들어낸다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박영호 역시 때로는 색면 위주로, 때로는 선 위주로, 또 때로는 구성을 위주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회화를 추구하는 한편으로 생명과 삶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추구한다. ● 그러한 그의 작업에서 매우 획기적인 변화가 생겨난 것은 최근 1~2년 사이의 작품들이다. 그는 바탕, 그러니까 종이에 작은 구멍을 뚫고 배면으로부터 물감을 밀어내는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밀려난 물감은 작은 물방울 형태로 화면에 응고시키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표현되는 화면은 대상을 형태와 윤곽으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조형적 (한계라면) 한계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그의 대상 표현은 평면화, 단순화된 실루엣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근자에는 색채를 배제한 투명한 재료를 흘려 굳힘으로써 색채에서도 해방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 여기에서 발견되는 의미는 먼저, 그가 원한다면 자신의 주제를 개념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그의 작업들은 제각각 하나의 개별적인 생명체를 대상으로 그 흔적을 표현한 개별자들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에 의해 표상된 생명, 그러니까 보다 보편적인 생명이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점으로 이어진 그림자, 혹은 잔상처럼 윤곽만으로 공간에 부유하듯 대상이 묘사됨으로서, 그의 화면은 구체적, 현실적 사물의 흔적묘사가 아니라 관념화된 생명체의 존재의 흔적이라는 해석의 가능성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생명이 현실에서 남겨놓는 개별적인 사물의 흔적이 아닌 생명일반의 흔적으로 개념화 하여 강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박영호_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73×100cm_2005
박영호_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72.7×90.9cm_2004

그가 만든 '구멍'의 존재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위의 개념화를 상보하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화면에 구멍을 뚫고 물감이 배면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은 전통적인 회화의 정의에서는 벗어나는 일이다. 현대회화에서 '바탕'이 가진 회화적 의미를 뒤집는 시도로 사용되어온 이러한 방식은 그의 작업에서도 조형적인 면 뿐 아니라 작품의 문맥을 강화하고 다변화하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 또한 화면의 전후가 통합된다는 것은 회화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추구와 더불어 주제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히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형적 시도와 자신의 회화이념을 밀고 나아가는데 있어서 다차원의 지평을 열 수 있게 한 계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작업을 보다 진지하고 폭넓게 실험함으로써 자신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객관화하는데 힘이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이를테면 그의 주제와 관련하여 존재의 문제나 (회화에 있어서의) 실재와 이미지, 주관과 객관 같은 이원적 이념의 통합, 혹은 파기로부터 조형을 위해 앞으로 그가 버리고 선택할 것들의 결과들,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문제들을 그가 어떻게 풀고 있고 풀어 나갈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가 그의 화면을 마주하면서 해야 할 일이다. 어찌 보면 그는 화가로서 매우 행복한 시점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지평에서 어느 곳을 먼저 답사할 것인지는 그의 뜻에 달려있다. 어느 곳이 되었던 그가 새로 발견한 것들을 함께 즐기기를 기다려 본다. ■ 박정구

Vol.20060113c | 박영호 개인展